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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6

반드시 메모한 청장관 이덕무, 박지원이 정리한 그의 행적 연암집 제3권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형암炯菴 행장行狀우리 정종 공정대왕定宗恭靖大王 열다섯째 아들 무림군茂林君 시호諡號 소이공昭夷公은 휘가 선생善生이다. 그로부터 10세를 내려와, 휘 정형廷衡은 감찰로서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으며, 휘 상함尙馠을 낳았다.상함공이 휘 필익必益을 낳으니 강계 부사江界府使요, 부사공이 휘 성호聖浩를 낳으니 이 분이 형암의 선친이다. 모친은 반남 박씨潘南朴氏로 토산 현감兎山縣監 휘 사렴師濂의 따님이요, 금평위錦平尉로서 시호가 효정공孝靖公인 휘 필성弼成의 손녀이다.형암은 휘가 덕무德懋요 자는 무관懋官이니, 형암은 그의 호다. 영종英宗 신유년(1741, 영조 17)에 태어났는데, 나면서부터 뛰어난 자질을 지녔고 성품이 단정하고 엄격하였다.세 살 때 이웃에 사는 창기娼妓가 엽전 한 푼을 가.. 2025. 1. 18.
절친 담헌 홍대용 죽음에 연암 박지원이 쓴다 연암집 제2권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홍덕보洪德保 묘지명 덕보德保[홍대용洪大容]가 죽은 지 3일 후에 문객門客 중에 연사年使[동지사]를 따라 중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행길은 응당 삼하三河를 거치게 되어 있었다.삼하에는 덕보의 친구 손유의孫有義란 사람이 있는데 호를 용주蓉洲라 하였다.몇 년 전에 내가 북경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용주를 방문했다가 만나지 못해, 편지를 남겨 덕보가 남쪽 지방으로 원이 되어 나간 사실을 자세히 서술하고 덕보가 보낸 토산물 두어 종류를 남기어 성의를 전달하고 돌아왔다.용주가 그 편지를 떼어 보았다면 응당 내가 덕보의 벗인 줄을 알았을 것이다.그래서 그 문객에게 부탁하여 다음과 같이 부고를 전하게 했다.“건륭乾隆 계묘년(1783) 모월 모일 조선 사람 박지원은 머리를 조아리며.. 2025. 1. 18.
“연암 박지원가家 소장 필사본의 가치와 위상” 학술대회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실학박물관과 한국실학학회와 공동으로 “연암 박지원가家 소장 필사본의 가치와 위상- 와 을 중심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 일 시 : 2023년 9월 8일(금) 13:00 ~ 18:00 ▪ 장 소 :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국제관 101호 ▪ 발 표 : 1. 초고본 계열의 이본 연구 정재철(단국대) 2. 연암 의 의미와 가치 박철상(한국문헌문화연구소) 3. 교감과 여러 異本의 평어에 대한 고찰 분석-散文을 중심으로 김윤조(계명대)·황동권(계명대)·김종민(성균관대) 4. 필사본 의 편찬 과정 김문식(단국대) 5. 실학박물관 소장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필사본 저작류의 개황과 가치 권진옥(단국대) 2023. 8. 18.
짝째기 신발 소동, 한쪽은 가죽신 다른 쪽은 짚신을 신은 백호 임제 어제 내가 저와 같은 낭패가 있었으니 저와 비슷한 일을 읊은 연암이 인용한 백호 임제 일화가 있는 모양이라 다만 백호와 내가 다른 점은 전자가 술주정뱅이요 그 어간에 저지른 일이지만 나는 정신이 멀쩡했다는 데 있다. 김주부 선생이 소개했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 燕巖集 卷7, ○別集 潘南朴趾源美齋著 鍾北小選 ○序 蜋丸集序 林白湖將乘馬。僕夫進曰。夫子醉矣。隻履鞾鞋。白湖叱曰。由道而右者。謂我履鞾。由道而左者。謂我履鞋。我何病哉。由是論之。天下之易見者莫如足。而所見者不同。則鞾鞋難辨矣。故眞正之見。固在於是非之中。 말똥구리의 말똥덩이와 여의주(蜋丸集序)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말을 타려고 하자 종놈이 나서며 말하기를, “나으리께서 취하셨군요.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짚신을 신으셨으니.” 하.. 2022. 12. 17.
서간문이 폭로한 연암 박지원의 내면 2005.06.02 05:01:27 (1) 궁상맞은 늙은이에서 자상한 아버지ㆍ할아버지 박제가ㆍ유득공에 대한 애정어린 비평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난해 가을 내 화포 두루마기를 유득공에게 빌려 주었다. 이번 수군(水軍) 조련 (훈련) 때 마땅히 철릭 아래에 받쳐 입어야겠으니 즉시 찾아와 보내주는 것이 어떠하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득공에게 보내준 두루마기 돌려받아 달라 부탁하는 주인공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다. 이때 그의 나이 61세(1797). 당시 그는 면천군수였다. 환갑이 된 노인네가, 명색이 그것도 군수나 되는 사람이 궁상맞게 제자격인 유득공(柳得恭.1749-1807)에게 빌려준 두루마리를 돌려받겠다고 나서고 있다. 더 웃기는 건 그것을 돌려받으려는.. 2020. 11. 16.
서자들의 두목 연암 박지원 연암 박지원...조선후기 영정조 시대 재야 문단의 영수지만, 실은 노론 적통에 재산 졸라리 많은 부자요 권력자였다. 뭐, 과거로 출사하는 길을 포기하고, 그러면서도 안의현감인지는 잘해 잡수시면서, 박제가 놀러 오니 안의현에서 관리하는 기생 중에서도 가장 앳된 애를 골라다 수청 들게 해 주는가 했으니, 이런 식으로 수하엔 말 잘 들을 수밖에 없는 또릿한 똘마니들 몇몇 거느리고 재야를 호령했거니와, 박제가 말고도 유득공도 있었다. 나이도 젤로 많고, 그 자신은 적통이지만, 똘마니들은 다 서출이라, 대장 노릇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럼에도 저이를 높이쳐야 하는 까닭은 그 속내가 무엇이었건, 그래도 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인간 대접했다는 점이다. 뭐 이런 동호회 그룹을 요새는 백탑 근처에서 많이 놀았.. 201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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