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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원3

백병원의 전신: 우에무라 외과 1925년에는 경성에 있는 우에무라植村 외과 광고가 있다. 우에무라는 경성의전병원의 외과 과장으로 백인제 선생 스승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당시에는 자기 병원을 따로 갖고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우에무라 교수는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자신이 따로 운영하던 우에무라 병원植村病院을 인수할 사람을 물색했는데당시 경성의전 외과의국에서 가장 특출한 재능을 보인던 선생에게 자신의 병원을 넘겨주었다. 이 백인제 병원이나중에 조선 굴지의 백병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 [편집자주] *** 저 병원 설립자 식촌준이植村俊二에 대해서는 국사편찬위원회 인명 사전 제공 서비스가 있다. 이에 의하면 1935년 현재 59세이며, 1876년 9월 15일생이이다. 愛知縣 海部郡 八關村이 원적.. 2025. 9. 15.
일제시대의 지식인: [18] 백인제와 [19] 장기려 백인제(1899~?) 장기려(1911~1995) 두 분은 해방전 이미 의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고 해방이후에도 한국의학의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다. 이 분들은 사제지간으로 외과 전공이다. 따라서 프로필도 비슷하다. 한국의학계는 해방 이전 크게 경성제대 의학부, 경성의전, 세브란스의전에서 조선인 의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백인제 장기려 두 분은 이 중 경성의전 졸업자를 대표한다. 백병원 설립자로 유명한 백인제 선생 프로필은 오산학교 졸업 (1915)-- 경성의전 (1916-1921)-- 조선총독부의원 근무 (1921-1923)-- 경성의전 외과학교실 교수 (1927-1941)-- 동경제대 의학박사 (1928)-- 백인제외과의원 (1941-)-- 경성의전 및 서울의대 외과 교수 (1945-1950)-- 1.. 2023. 6. 7.
일제시대 아웃사이더 사실 이것은 일제시대 조선 학계의 상황 전반과 관련된 일인데 정도의 차는 있지만 일제시대 학계마다 조선인은 거의 아웃사이더였다. 전술한 역사학의 경우 해방이후 서울대 국사학과의 주축이 되는 조선인학자들은 예외없이, 거의 모두 일제시대에는 아웃사이더였다. 지금이니 양자를 대척점에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 일제시대 당시에는 조선인 학계란 일본인 교수들 입장에서 치지도외였을 것이다. 이병도 등 사학자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그러할진대 이것도 아닌 소위 국학을 연구하는 양반들 이야기는 그러니 제대로 먹힐리가 없다. 조선인학자들이 발표할 지면은 조선, 동아 등 신문을 빼면 아마 진단학보나 각종 동인지 정도가 전부아니었을까. 이것은 의학도 그렇다. 경성제대 의학부, 경성의전 등이 거의 일본인 교수들이었기 때문에.. 2023.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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