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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8

김옥균을 죽인 홍종우 서문 실린 관풍안 번역 서비스 개시 국립제주박물관 소장 고도서를 번역 출간해 세상에 알리는 '고전총서'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작년에 번역 용역을 수행하고, 올해 발간한 책을 이제 누리집에 올립니다. 고전총서3 입니다.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상하 800여년, 제주에 와 제주를 다스렸던 지방관 명부입니다. 김옥균(1851-1895)을 쏘았던 그 사람, 제주목사 홍종우(1850-1913)의 서문이 실리는 등 다른 기록에선 보기 힘든 사실이 여럿 있습니다. 책을 드리고 싶지만, 비매품으로 소량만 인쇄했기 때문에 요청에 다 대응하기는 어렵습니다.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국립제주박물관 jeju.museum.go.kr *** 관련 보도는 아래 참조 800여년간 제주 내려온 지방관 명부 '관풍안' 번역서 발간 송고시간 20.. 2023. 10. 16.
무관에서 경찰까지, 제주에 부임한 지방관들의 특징 1. 제주 현지인들을 제주 지방관으로 본격 기용(?)하는 것은 빨라도 헌종, 철종 때쯤부터다. 그 전엔 거진 다 육지에서 왔다(영조, 정조떄 조금씩 나타나기는 하지만서도). 제주인이라 하더라도 상피제는 얼추 지켰던 것 같다(가령 제주목 사람을 대정현감 시킨다던가...). 2. 관서, 관북 사람이 제법 지방관으로 많이 온다. 그 시절의 서북청년(?)인가...차별받던 지역 사람들인지라 격오지로 돌린 것일까? 반대로 제주 사람들이 관서나 관북 지방관으로 간 사례도 있을 법한데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다. 3. 대개는 무과 급제한 무관들이 목사 또는 판관, 현감으로 오곤 한다. 4. 일제강점기에는 제주도 No.1을 '도사島司'라고 불렀다. 근데 이 사람들은 모두 경찰 출신이다. 그것도 그냥 경찰이 아니고 경부, 경.. 2023. 5. 7.
김옥균 목을 딴 희대의 풍운아 홍종우 홍종우(洪鍾宇, 1850~1913)라는 인물이 있다. 근대 한국의 풍운아風雲兒가 한둘이 아니지마는 이 사람도 '풍운아'라는 이름에 크게 부끄럽지 않은 행적을 남겼다.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시골을 전전하다 프랑스 1호 유학생이 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희대의 '풍운아'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의 목숨을 거뒀으며, 황제의 신임을 받고 한 나라의 국정개혁을 주도하는 자리에까지 오른 사나이. 하지만 그의 전성시대는 너무도 짧았다. 1903년, 그는 이 땅의 남쪽 끝 제주목사로 내려온다. 프랑스 선교사가 엮은 '이재수의 난' 사후처리를 위해 조정에서 프랑스통인 그를 보낸 것이다. 홍종우는 제주에서 약 3년 지냈는데, 국어학자 김윤경(金允經, 1894~1969)은 그 시절의 홍종우를 '제주도의 나폴.. 2023. 5. 5.
제주인인가 뭍사람인가? 이중국적으로 고통받은 어떤 사람 이귀제 1. 1727년(영조 3) 7월 17일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주시濟州試에 입격入格한 사람 이귀제李龜濟를 빼라고 명하였다. 이귀제는 고故 승지承旨 이익태(李益泰, 1633~1704)의 아들인데, 이익태가 제주목사濟州牧使이었을 때에 이귀제를 낳았다. 이귀제가 태어난 고장이기 때문에 (제주에서 시행한) 과시科試에 나아가 입격入格하였는데, 부교리副校理 송진명(宋眞明, 1638~1738)이 상소하여 논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원적原籍을 살피게 하였더니 과연 원적이 중첩되었으므로, 이 명이 있었다. 이귀제는 의 저자로 유명한 이익태가 제주목사로 있을 때(1694~1696) 제주에서 낳은 아들이다(육지 사대부가 제주에서 자손을 얻은 경우 제濟 자를 이름에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익태가 죽고 2.. 2023. 4. 22.
진상한 귤 썩었다고 파직당한 제주목사 역대 제주목사 중에는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어이없는 이유로 파직된 분이 많다. 진상한 귤이 썩었으므로 벼슬을 떼고 심문한다는 것. 근데 냉장고가 없던 시절 뱃길로 귤을 나르는데 썩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지금도 택배로 귤을 사서 풀어보면 가끔 푸른곰팡이 핀 게 나오는데. 귤을 포장해 서울로 보내면서 목사 나으리들은 "제발..." 이런 심정이었을지 모르겠다. *** Editor's Note *** 전라도 장성부사는 죽력을 만들 청대죽이 너무 말라서 파직되기도 했단다. 이를 반면교사 삼은 후임 장성부사는 정치력을 발휘해 장성 대나무는 죽력을 만들기에 좋지 않다고 담양에 토스해 버리기도 했다고. (기호철) 2023. 4. 21.
제주 오미자 임금님 바쳐 점수 따려다 개쪽 당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를 만들어 18세기 제주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준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1653~1733), 그는 얼마 안 되는 임기 동안 제주에 크나큰 발자취를 남겼다. 절과 신당을 때려부수고 심방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한 일은 제주 노인들에게 '영천 이목사' '영찰목사'가 지금껏 회자되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제주에서 행한 일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 권38, 숙종 29년(1703) 5월 20일자 기사를 보면.... 처음에 제주 목사 이형상이 치계馳啓하기를, "본도本島의 오미자五味子는 세상에서 뛰어난 맛이 있다고 일컬어서 어공御供에 합당하므로 분의(分義, 의리)로 보아 숨겨 둘 수 없기에, 먼저 다섯 말을 주원(廚院, 왕실 부엌)에 올리고, 명년부터 진헌進獻하기를 청합니다." 라고 하였으므로 사옹원司饔院에서.. 2023.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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