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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김옥균 목을 딴 희대의 풍운아 홍종우

by taeshik.kim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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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죄를 네가 알렸다>

홍종우(洪鍾宇, 1850~1913)라는 인물이 있다. 

근대 한국의 풍운아風雲兒가 한둘이 아니지마는 이 사람도 '풍운아'라는 이름에 크게 부끄럽지 않은 행적을 남겼다.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시골을 전전하다 프랑스 1호 유학생이 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희대의 '풍운아'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의 목숨을 거뒀으며, 황제의 신임을 받고 한 나라의 국정개혁을 주도하는 자리에까지 오른 사나이.

 

효수되어 양화진에 내걸린 김옥균. 대역부도大逆不道 옥균玉均 이라 썼다.

 

하지만 그의 전성시대는 너무도 짧았다. 1903년, 그는 이 땅의 남쪽 끝 제주목사로 내려온다. 프랑스 선교사가 엮은 '이재수의 난' 사후처리를 위해 조정에서 프랑스통인 그를 보낸 것이다. 홍종우는 제주에서 약 3년 지냈는데, 국어학자 김윤경(金允經, 1894~1969)은 그 시절의 홍종우를 '제주도의 나폴레옹'이라 칭하였다 한다.

 

어쨌건, 기왕 제주목사로 내려왔으니 목사로서의 업무도 보아야 했을 우리의 '우정(宇井, 홍종우의 호)' 선생이 과연 어떻게 정무를 봤고 제주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전보와 우편의 힘이었는지, 이 시기 신문들을 보면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소식이 경쟁적으로, 발생 시점과 제법 시차가 없이 실리곤 했다. 그 중 두 가지를 살펴보자.


⊙濟民訴冤 濟州居前主事金昌休氏가 平理院에 呼訴하얏는데 其辭意를 槪聞한 則 濟州牧使洪鍾宇氏가 金氏의 兄前郡守昌鎬氏의 妻를 多發將羅하야 捉入官庭曰 汝罪汝知니 直招則可以生矣오 不然則當塲杖斃於官庭이라하고 枷囚刑獄하얏다가 旋即放送하얏더니 未幾에 又其兄止▣를捉入하야 田券을 納上하라함에 牢拒不從則嚴杖二十度에 枷囚獄中하고 金氏의 老父를 又捉入히야 决笞十度하고 仍卽放歸하니 洪鍾宇와 檢事等을 押上裁判하야주옵소셔 하얏더라
- <황성신문> 1904년 1월 18일 기사

 

●濟民請質 濟州人蔡龜錫氏等이 該牧使洪鍾宇氏가 善於交際하야 一遵約章하며 嚴明束吏하며 馬午盜懲戢規와 盜賣土防微法과 捐廩一万兩하야 散洽民間한 惠政을 枚擧하야 外部에 請願하되 某日報에 洪郡守를 魚肉島民에 怨聲沸騰이라하야시니 請照會于日舘하야 質問于▣社하라하얏더라
- <황성신문> 1904년 11월 1일 기사

 

종우형. 목장갑인가? 뼁끼칠?

 

아래 아는 구현이 안 되는 고로 'ㅏ'로 통일하고....그래도 국한문 혼용체라 지금 읽기는 어렵기 그지없다. 대강 내용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 제주 백성이 원통함을 호소하다
제주에 사는 전前 주사主事 김창휴씨가 평리원(平理院, 지금의 고등법원)에 호소하였는데, 그 말뜻을 대강 들어본 즉 제주목사 홍종우씨가 김씨의 형인 전 군수 김창호씨의 부인을 여러 차례 잡아들여 관아 뜰에 붙잡아놓고 이르기를, '네 죄를 네가 알렸다! 곧장 공초(供招, 죄지은 사실을 진술)하면 살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당장 여기서 장을 맞고 죽게 되리라.'라 하고 칼을 씌워 옥에 가둬주었다가 얼마 뒤에 놓아주었더니, 오래지 않아 또 그 형(?)을 붙잡아들여 '땅문서를 올려들여라'라 함에 거절하고 따르지 않으니 장 20대를 엄히 때리고 칼을 씌워 옥에 가두고 김씨의 늙은 아버지를 또 잡아들여 태 10대를 치고서 놓아보내었으니, 홍종우와 검사 등을 잡아들여 재판해주시옵소서라 하였더라.
- <황성신문> 1904년 1월 18일 기사

 

● 제주 백성이 질문을 요청하다
제주 사람 채구석(蔡龜錫, 1850~1920)씨 등이 그 목사 홍종우씨가 외국인과의 교제를 잘 하고 오로지 법을 따라 엄히 아랫사람들을 다스렸으며, 마소 도적은 법에 따라 징벌하고 도적이 땅을 파는 것을 법에 따라 막았으며 봉급 1만 냥을 헐어 백성에게 흩어 구제하는 등 어진 정사를 낱낱이 들어 외부外部에 청원하기를, 어떤 신문에서 홍종우 목사가 섬 백성을 어육으로 만들어 원성이 끓어오른다고 하니 청컨대 일본공사관에 조회하여 그 신문사에 질문케 하여달라 하였더라. 
- <황성신문> 1904년 11월 1일 기사

 

내용들이 꽤나 재밌다. '가짜뉴스'에 "우리 牧使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엄정한 대응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대놓고 뇌물을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회초리며 장을 때리는 牧使 양반도 있고....그런데 그중 특히 관심가는 대목은 이거였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汝罪汝知)!"


이른바 '원님 재판'의 단골 멘트가 여기서 이렇게 등장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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