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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왕

개국(開國)과 건복(建福), 진흥왕과 진평왕의 나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을 보면, 삼국 각왕이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을 발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니, 이는 생일(生日)의 탄생과 밀접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누구나 기념하는 생일이 삼국시대 당시에는 의미가 없거나, 거의 없었으니, 개인 일생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해 어느 날에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느 해 어느 달 며칠에 죽었느냐가 더욱 중요했으니, 이는 바로 기일(忌日) 때문이었다. 생일을 기념하지 않..
천명(天明) 신라 진평왕 딸로서 훗날 왕이 된 선덕의 언니로서, 룡수(龍樹)와 혼인해 김춘추를 낳았다. 남편 사후엔 룡수 동생 룡춘(龍春)과 살았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 아들인 이찬 용춘(龍春)<용수(龍樹)라고도 한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했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 딸이다. ..
국반(國飯)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진평왕 : 원년(579) 8월에 이찬 노리부(弩里夫)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친동생 백반(伯飯)을 진정갈문왕(眞正葛文王)으로, 국반(國飯)을 진안갈문왕(眞安葛文王)으로 봉하였다.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진덕왕 : 진덕왕(眞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승만(勝曼)이고 진평왕의 친동생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의 딸이다. 어머니는 박씨(朴氏) 월명부인(月明夫人)이다. 승만은 생김새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일곱..
복승(福勝) 진평왕비 김씨 마야부인 아버지라는 점 말고는 알려진 바가 없다. 신라시대 금석문에 보이는 복동지(服冬知 혹은 服冬智), 혹은 복등지(福登知)와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진평왕 : 진평왕(眞平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다. 왕은 태어날 때..
눌최(訥崔) 삼국사기 권제4 신라본기4 진평왕본기 : 46년(624)…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와서 우리의 속함성(速含城), 앵잠성(櫻岑城), 기잠성(暫城), 봉잠성(烽岑城), 기현성(旗縣城), 혈책성(穴柵城) 등 여섯 성을 에워쌌다. 이에 세 성은 함락되거나 혹은 항복하였다. 급찬 눌최(訥催)는 봉잠성, 앵잠성, 기현성의 세 성 군사와 합하여 굳게 지켰으나 이기지 못하고 전사하였다.삼국사기 권제47(열전 제7) 눌최 열전 : 눌최(訥崔)는 사량 사람으로 대나..
[추적, 한국사 그 순간 -7-] 태종무열왕 출생의 비밀 김춘추 아버지 용수·용춘은 형제 사이 [중앙선데이] 입력 2016.12.18 00:42 | 510호 23면 서기 654년 봄, 진덕여왕이 죽자 신라엔 성골(聖骨)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선덕여왕 즉위(632년) 때부터 남자 성골이 씨가 말랐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성골 여인인 선덕과 진덕을 차례로 왕으로 세운 것이었는데,이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신분제 사회인 신라에서 성골은 품계가 없는, 더 정확히는 품계를 초..
[추적, 한국사 그 순간 -4-] 선덕여왕과 3색 모란꽃 ‘씨내리’ 남자 셋 들이고도 임신 못한 선덕여왕[중앙선데이] 입력 2016.09.18 00:46 | 497호 23면   “신이 듣기에 옛날에 여와씨(女媧氏)가 있었으나, 그는 진짜 천자가 아니라 (남편인) 복희(伏羲)가 구주(九州)를 다스리는 일을 도왔을 뿐입니다. 여치(呂治)와 무조(武?) 같은 이는 어리고 약한 임금을 만났기에 조정에 임해 천자의 명령을 빌린 데 지나지 않아, 사서에서는 공공연히 임금이라 일컫지는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