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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편지3

500년 전 군관 나신걸이 아내한테 부친 편지 나신걸羅臣傑(1461~1524)은 조선초기 군관軍官이다. 그의 아내는 신창 맹씨新昌孟氏. 군인이어서인지, 그 자신 또한 한문보다는 한글이 익숙했는지, 혹은 그것을 받아볼 사람이 부인이었기에 아무래도 언문으로 편지를 썼으리라. 그가 부친 한글 편지 두 장이 2011년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 신창맹씨 묘지 부인 무덤에서 발굴됐다. 편지는 그의 머리맡에서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됐다. 머리 쪽에 둔 이유는 그만큼 더 소중한 껴묻거리라고 판단해서 무덤을 만든 사람들이 그리했을 것이다. 이 편지를 포함해 저고리, 바지 등 의복 28점까지 합쳐 총 41점 유물이 나왔다. 나신걸이 속한 이 문중, 조선시대에는 무관직武官職에서 이름을 떨쳤다. 편지를 쓸 때 나신걸은 함경도에서 하급 군관으로 근무 중이었다.요즘으로 치면.. 2022. 12. 29.
[조선시대 미라-2] 원이 엄마가 국제적으로 유명해 진 사연 (중) 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안동대 이은주, 임세권 교수와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만족스러운 분량의 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원이 엄마 편지 내용을 제대로 된 해외 영문 잡지에 소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미 연구는 이은주, 임세권 두분 교수께서 다 해 놓으신 터라 영문화만 진행하면 되는 상태였다. 두 분이 2000년, 안동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써 보니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한가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나왔다. 이 무덤에서 나온 문서는 사실 원이 엄마 편지만이 아니라 두 종류가 더 있다. 하나는 원이 엄마 남편인 이응태의 형인 이몽태가 동생한테 남긴 편지가 개중 하나다. 이 편지도 내용이 구구절절 애통한데 자세한 내.. 2019. 1. 1.
안동 원이 엄마가 미라로 출현한 그때를 증언하는 보도 인도고고학 조사 경험담을 이곳에서 연재 중인 서울대 의대 신동훈 교수가 내 요청에 따라 그 스핀오프로 안동 원이 엄마 미라에 얽힌 일화 하나는 엮었으니, 신 교수 역시 그랬듯이 나 역시 이 유명한 미라가 출현한 시점에서는 그와 직접 인연은 없었다. 내가 우리 공장 문화부로 배치되어, 그에서 문화재를 전담하기 시작한 시점은 1998년 12월 1일이었으니, 아쉽게도 원이 엄마 미라는 그보다 불과 8달 먼저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 미라는 발굴 당시보다는 발굴 이후 전개된 일련의 사태 전개 과정에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으니, 그때마다 어찌된 셈인지, 나랑은 이렇다 할 인연이 없어 흘러가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미라는 어떻게 출현했던가? 우리 공장 DB를 검색해 봤더니 아래 관련 기사가 걸린다. 4백50년전 .. 2019.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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