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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서원5

우암 송시열묘 앞에서 송시열(宋時烈) 이름만 들어도 거대하고 묵직한 바위 하나가 나의 명치를 꾸욱 누르는 것 같다. 나의 얕은 공부로 이분을 어찌 설명하리오?! 견훤산성을 답사하고, 다음 코스로 우암 송시열 묘소에 왔다. 화양구곡 안에 있는 만동묘(萬東廟, 명나라 신종과 의종을 모시는 사당)•화양서원(華陽書院) 외 우암의 흔적들을 같이 보면 좋겠지만, 시간 관계상 오늘은 여기까지로 했다. 사실 산성답사 중에 송시열 묘소에 간다고 해서 내심 좋았다. 최근 조선시대사 수업을 듣고 있는데, 하필 주제는 ‘서원’이라 ‘송시열’ 이름만 수백 번을 듣고 또 본 것 같다. 글자로만 무수히 봤던 송시열의 실체(실체는 없지만)? 아니,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모르게 기뻤다. 나는 변태가 분명하다. 아무튼 약간의 설레임으로 그.. 2021. 11. 2.
"갈 데가 없어서 괴산을?" 그런 도로변에서 조우한 묵밥 어느 식당이라곤 말 안 하겠다. 밝혔다간 저 묵밥집 묵사발 날 듯해서다. 얼마전 주말을 틈타 충청북도 괴산 땅을 밟았거니와, 벼르고 벼른 곳 중 하나가 실은 괴산이었으니, 그 직접 동인은 화양서원에 대한 책 발간이었다고 했거니와, 이를 위해 어떤 경로를 밟을까 하다가 대전에서 치고 들어가는 방법은 생각했으니, 이게 조금은 계산 실패였으니, 여러 계산을 두들겨야 했지만, 여유가 있으면 같은 속리산 권이라 해서 오랜만에 법주사도 들려볼 요량이었으니, 그 옛날 생각하니, 법주사는 대전에서 거리가 얼마되지 아니한다는 그런 기억이 있었거니와, 그래서 일단 대전으로 내려가 그곳을 출발지로 삼아 괴산행을 단행했던 것인데, 생각보다 엄청 멀더라. 이를 위해 사전에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충북 지역 지인 윤나영 선생한테서.. 2020. 4. 19.
영조시대 군인한테 비친 당쟁의 폐해 조선 영조시대에 군인으로 출세한 인물로 구수훈具樹勳(1685~1757년)이라는 이가 있으니 무관이라, 무인은 까막눈이 많지만, 그는 문장에 능했다는 장점이 있어 《이순록二旬錄》이라는 책을 남길 정도였다. 본관 능성綾城인 그는 영조 8년(1732)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고, 그 3년 뒤인 영조 11년(1735)에는 통제사로 승진했다. 13년(1737)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가 17년(1741) 대간이 탄핵함으로써 삭직되었지만 19년(1743) 경기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27년(1751)에는 수원부사가 되었지만, 마침 찾아든 대흉년에 기민은 구제하지 않고는 군정軍丁을 뽑으면서 뇌물을 받았다 해서 탄핵을 받고는 다시 파직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도 다시 빨딱 일어섰으니 29년(1753) 좌포도대장에 임.. 2020. 4. 14.
화양서원이 구현한 동아시아 건축 그랜드디자인 우암 송시열을 배향한 괴산 속리산 기슭 화양서원 주요 건축물 배치양상이다. 주의할 점은 현재 들어선 주요 전각은 2006년 발굴조사 결과와 각종 조선시대 문헌 기록을 대비해서 이후 완조니 새로 지었다는 사실이다. 화양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을 피하지 못했으니 그때 만신창이 되어 사라졌다. 이 화양서원 전각배치와 관련해 너도나도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말이 조선시대 여타 서원 건축배치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하거니와 치밀한 사전설계에 따른 건축이 아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런가? 그 입론 근거가 바로 이거다. 송시열 신주에 해당하는 영당, 곧 사당이 저리 위치한다는 그거다. 여타 서원 같으면 저 사당이 북쪽 중앙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이례異例라 한다. 송자사는 건물 전면에서 바라보는 사람 기준으로는 서.. 2020. 4. 13.
괴산으로 이끈 《화양서원》 한중연 '노강서원·화양서원', '귤림서원' 출간 | 연합뉴스한중연 '노강서원·화양서원', '귤림서원' 출간, 박상현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20-04-06 07:00)www.yna.co.kr 얼마전이다. 문화재와 더불어 학술을 전담하는 우리 공장 문화부 박상현 기자가 이 기사를 보냈더라. 이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시도하는 한국의 서원 시리즈 일환인데, 앞서 나온 시리즈 중 내가 인상 깊게 본 버전이 남양주 석실서원이었으니, 지금은 휑뎅그레 현장에는 그런 서원이 조선시대에 있다가 대원군에 의한 서원 훼철령으로 싸그리 없어지고 안내판 겨우 하나 남은 그 현장에 대한 궁금증 상당수를 풀었다는 그런 기억이 있다. 문제는 요새는 현장을 떠나니, 저런 소식을 접하기도 쉽지는 아니해서, 우연히, 혹은 부러 찾지 .. 20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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