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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秀天) 선덕여왕 시대 김유신의 친척으로, 병에 걸려 밀본법사한테 치료를 받은 행적만 전한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神呪) 제6 밀본최사(密本摧邪) : 밀본은 일찍이 금곡사(金谷寺)에서 살았다. 또 김유신(金庾信)은 일찍이 늙은 거사(居士) 한 사람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 유신공 친척인 수천(秀天)이 오랫동안 나쁜 병에 걸렸으므로 공이 거사를 보내서 진찰해 보도록 했다. 때마침 수천의 친구 인혜사(因惠師)라는 이가 중악(中岳)에서 찾아왔다가 거사를 보더니 업신여겨 말했다. “그대 형상과 태도를 보니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인데 어찌 남의 병을 고치겠는가.” 이에 거사가 말했다. “나는 김공의 명을 받고 마지못해 왔을 뿐이오.” 이에 인혜(因惠)가 말하기를 “그대는 내 .. 2018. 4. 9.
법척法惕 신라 선덕여왕 시대 흥륜사 승려로 의술에 일가견이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병든 왕을 오래도록 치료하지 못하고 도리어 밀교 계통 승려인 밀본密本한테 죽임을 당했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神呪 제6 밀본최사密本摧邪 : 선덕왕善德王 덕만德慢이 병이 들어 오랫동안 낫지 않자 흥륜사興輪寺 승려 법척法惕이 임금의 부름을 받아 병을 치료했으나 오래 되어도 효력이 없었다. 이때 밀본법사密本法師의 덕행이 나라 안에 소문이 퍼져서 좌우 신하들이 바꾸기를 청했다. 왕이 그를 궁중으로 불러들이니 밀본은 신장宸仗 밖에서 약사경藥師經을 읽었다. 경을 다 읽고 나자 지닌 육환장六環杖이 침실 안으로 날아 들어가더니 늙은 여우 한 마리와 중 법척을 찔러 뜰아래에 거꾸로 내던지니 왕의 병이 이내 나았다. 2018. 4. 9.
밀본(密本) 선덕여왕 시대 신라 밀교 계통 승려. 각종 신통력을 발휘해 귀신을 물리쳤는가 하면 외적도 물러나게 했으며 의술 또한 뛰어났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神呪) 제6 밀본최사(密本摧邪) : 선덕왕(善德王) 덕만(德慢)이 병이 들어 오랫동안 낫지 않자, 흥륜사(興輪寺) 승려 법척(法惕)이 임금의 부름을 받아 병을 치료했으나 오래 되어도 효력이 없었다. 이때 밀본 법사(密本法師)의 덕행이 나라 안에 소문이 퍼져서 좌우 신하들이 바꾸기를 청했다. 왕은 그를 궁중으로 불러들이니 밀본은 신장(宸仗) 밖에서 약사경(藥師經)을 읽었다. 경을 다 읽고 나자 가졌던 육환장(六環杖)이 침실 안으로 날아 들어가더니 늙은 여우 한 마리와 중 법척을 찔러 뜰 아래에 거꾸로 내던지니 왕의 병은 이내 나았다. 이때 밀본의 이마 위에 오.. 2018. 4. 9.
심맥종(深麥宗) 신라 제24대 진흥왕의 본명. 삼맥종(彡麥宗)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郎)·진자사(眞慈師) :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은 성이 김씨요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니, 심맥종(深麥宗)이라고도 한다. 양(梁) 대동(大同) 6년 경신(庚申. 540)에 즉위(卽位)했다. ☞심맥부(深麥夫) ☞삼맥종(彡麥宗) ☞진흥왕(眞興王) 2018. 4. 9.
교정(姣貞) 신라 진흥왕 시대에 화랑 전신으로 원화가 설치될 때 그 우두머리 2명 중 한 명이다. 삼국사기와 해동고승전에는 그 표기가 준정(俊貞)으로 보이는데, 이는 俊과 글자가 비슷한 데서 유래한 誤寫인 듯하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郎)·진자사(眞慈師) :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은 성이 김씨요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니, 심맥종(深麥宗)이라고도 한다. 양(梁) 대동(大同) 6년 경신(庚申. 540)에 즉위(卽位)했다. 백부(伯父)인 법흥왕(法興王)의 뜻을 사모해 한 마음으로 부처를 받들어 널리 절을 세우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중이 되기를 허락했다. 왕은 또 천성이 풍미(風味)가 있어 크게 신선을 숭상하여 민가(民家) 처녀로 아름다운 이를 뽑아 원화(原花)를 삼았.. 2018. 4. 9.
교정랑(姣貞娘) ☞교정(姣貞) 2018. 4. 9.
남모랑(南毛娘) ☞남모(南毛) 2018. 4. 9.
진자(眞慈) 신라 진지왕 시대에 흥륜사(興輪寺)를 근거지로 활동한 승려로 정자(貞慈)라고도 했다. 화랑이 이끄는 단체에도 깊이 관여한 듯하며, 미륵불과 감통하고자 해서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루기도 했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郎)·진자사(眞慈師) : 진지왕(眞智王) 때에 이르러 흥륜사(興輪寺) 중 진자(眞慈·정자貞慈라고도 한다)가 항상 이 당(堂)의 주인인 미륵상(彌勒像) 앞에 나가 발원(發願)하며 맹세하기를 “우리 대성(大聖)께서는 화랑으로 화(化)하시어 이 세상에 나타나 제가 항상 수용(수容)을 가까이 뵙고 받들어 시중을 들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기원하는 마음이 날로 더욱 두터워지자, 어느날 밤 꿈에 중 하나가 말했다. “네가 웅천(熊天) 수원.. 2018. 4. 9.
진자사(眞慈師) ☞진자(眞慈) 2018. 4. 9.
미시(未尸) 신라 진지왕 때 어린 나이에 우두무리 화랑인 국선(國仙)이 되었다는 미스테리한 인물.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고아지만, 그를 미륵불 화신으로 여긴 흥륜사(興輪寺) 승려 진자(眞慈)가 받들어 왕한테 청해 국선을 삼았다고 한다. 7년 동안 국선으로 재직한 점, 활동연대가 진지왕 대라는 점에서 화랑이 폐지되고, 원화가 부활한 다음 다시 화랑이 부활하고 그 초대 풍월주가 된 설원랑(薛原郞)과 상통하는 점이 많다. 그의 비천한 출생담은 설원랑의 아버지 설원을 실제 모델로 삼은 듯하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郎)·진자사(眞慈師) : 진지왕(眞智王) 때에 이르러 흥륜사(興輪寺) 중 진자(眞慈·정자貞慈라고도 한다)가 항상 이 당(堂)의 주인인 미륵상(彌勒像) 앞에 나가 발원(.. 2018. 4. 9.
미시랑(未尸郞) 랑(郞)은 신라시대 남자의 미칭 접미사이니 본래 이름은 미시(未尸)인 듯. ☞미시(未尸) 2018. 4. 9.
헌승황후(憲承皇后) 고려에 귀부한 신라 마지막 경순왕 김부의 딸로 고려 경종의 왕비가 된 여인.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김부대왕(金傅大王) : 태조의 손자 경종(景宗) 주(伷)는 정승공(政承公·경순왕 김부)의 딸을 맞아 왕비를 삼으니, 이가 헌승황후(憲承皇后)다. 이에 정승공(政承公)을 봉해 상부(尙父)로 삼았다. 2018. 4. 9.
안종(安宗) 태조 왕건의 8번째 아들 욱(郁)의 묘호(廟號). ?~ 996년. 어머니는 신라 경순왕(敬順王) 김부의 큰아버지 김억렴(金億廉)의 딸인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다. 경종 사후, 그의 후비인 헌정왕후와 정을 통해 훗날 현종(顯宗)이 되는 순(王)을 낳았다. 현종 즉위 후 그의 묘는 건릉(乾陵)이라 하고 효목대왕(孝穆大王)이 추존됐다가 훗날 효의대왕(孝懿大王)으로 고치고 안종이라 일컬어졌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김부대왕(金傅大王) : 처음에 왕이 국토를 바치고 항복해 오자 태조는 무척 기뻐하여 후한 예로 그를 대접하고, 사람을 시켜 말했다. “이제 왕이 내게 나라를 주시니 주시는 것이 매우 큽니다. 원컨대 왕의 종실(宗室)과 혼인을 해서 구생(舅甥)의 좋은 의(誼)를 길이 하고 싶습니다.” 왕이.. 2018. 4. 9.
이정언(李正言) 고려 태조 왕건의 후비(后妃) 중 한 명인 신성왕후(神成王后)의 아버지다. 경주 대위(大尉)를 역임했으며, 협주수(俠州守)로 있을 적에 왕건이 그 고을에 왔을 때 딸을 받쳤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김부대왕(金傅大王) : 처음에 왕이 국토를 바치고 항복해 오자 태조는 무척 기뻐하여 후한 예로 그를 대접하고, 사람을 시켜 말했다. “이제 왕이 내게 나라를 주시니 주시는 것이 매우 큽니다. 원컨대 왕의 종실(宗室)과 혼인을 해서 구생(舅甥)의 좋은 의(誼)를 길이 하고 싶습니다.” 왕이 대답했다. “우리 백부(伯父) 억렴(億廉·왕의 아버지 효종孝宗) 각간은 추봉된 신흥대왕의 아우다)에게 딸이 있는데 덕행과 용모가 모두 아름답습니다. 이 사람이 아니고는 내정(內政)을 다스릴 사람이 없습니다.” 태.. 2018. 4. 9.
목조문화재에 화재보험은 필요없다 ***台植案...목조문화재가 왜 화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냐고 매양 호통을 치지만, 목조문화재 화재보험은 넌쎈스다. 기사라 감정은 최대한 억제한 채 소위 말하는 객관의 시각을 가장했지만, 목조문화재가 화재가 가입돼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질타하는 일은 무식의 극치임을 다시금 밝혀둔다. 말한다. 목조문화재에 화재보험은 필요없다. 국감 단골 문제…무용론도 만만치 않아 2013.10.15 11:36:24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전남 화순군 쌍봉사 대웅전은 평면 정사각형에 목탑 형식을 지닌 3층 목조 건축물이라 해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3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화재로 잿더미가 되는 바람에 1984년 4월 3일 보물에서 해제됐다. 지금 선 건물은 복원품이다. 화재를 만난 국보 .. 2018. 4. 9.
신흥대왕(神興大王) 신라 마지막 경순왕 김부의 아버지 김효종(金孝宗)이 아들이 왕이 됨으로써 추봉된 존호.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은 김씨이며, 이름은 부(傅)이다. 아버지는 효종(孝宗) 이간(伊干)이니 신흥대왕(神興大王)에 추봉됐다. 할아버지는 관◎(官◎) 각한(角汗)이니 의흥대왕(懿興大王)에 추봉됐다. 어머니는 계아태후(桂娥太后)이니 헌강왕(憲康王) 딸이다.(정해년에 즉위해 8년을 다스렸다). 을미년 땅을 바치고 태조에게 귀부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김부대왕(金傅大王) : 처음에 왕이 국토를 바치고 항복해 오자 태조는 무척 기뻐하여 후한 예로 그를 대접하고, 사람을 시켜 말했다. “이제 왕이 내게 나라를 주시니 주시는 것이 매우 큽니다. 원컨대 왕의 종실(宗室)과 혼인을 해서 .. 2018. 4. 9.
신성왕후(神成王后) 신라 마지막 경순왕 김부의 큰아버지 김억렴의 딸. 고려 태조 왕건의 후비(后妃) 중 한 명이다. 안종(安宗)을 낳았다. 계보에 대해서는 다른 증언도 있어 경주 대위(大尉)로 협주수(俠州守)를 지낸 이정언(李正言)의 딸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김부대왕(金傅大王) : 처음에 왕이 국토를 바치고 항복해 오자 태조는 무척 기뻐하여 후한 예로 그를 대접하고, 사람을 시켜 말했다. “이제 왕이 내게 나라를 주시니 주시는 것이 매우 큽니다. 원컨대 왕의 종실(宗室)과 혼인을 해서 구생(舅甥)의 좋은 의(誼)를 길이 하고 싶습니다.” 왕이 대답했다. “우리 백부(伯父) 억렴(億廉·왕의 아버지 효종孝宗) 각간은 추봉된 신흥대왕의 아우다)에게 딸이 있는데 덕행과 용모가 모두 아름답습니다. 이 사람.. 2018. 4. 9.
김억렴(金億廉) 신라 마지막 경순왕 김부의 큰아버지이며, 그의 딸이 고려 태조 왕건의 후비(后妃) 중 한 명인 신성왕후(神成王后)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김부대왕(金傅大王) : 처음에 왕이 국토를 바치고 항복해 오자 태조는 무척 기뻐하여 후한 예로 그를 대접하고, 사람을 시켜 말했다. “이제 왕이 내게 나라를 주시니 주시는 것이 매우 큽니다. 원컨대 왕의 종실(宗室)과 혼인을 해서 구생(舅甥)의 좋은 의(誼)를 길이 하고 싶습니다.” 왕이 대답했다. “우리 백부(伯父) 억렴(億廉·왕의 아버지 효종孝宗) 각간은 추봉된 신흥대왕의 아우다)에게 딸이 있는데 덕행과 용모가 모두 아름답습니다. 이 사람이 아니고는 내정(內政)을 다스릴 사람이 없습니다.” 태조가 그에게 장가드니 이가 신성왕후(神成王后) 김씨(金氏)다.. 2018. 4. 9.
신란공주(神鸞公主) 고려 태조 왕건의 맏딸로 귀순한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 김부에게 시집간 낙랑공주가 결혼 이후 받은 칭호. 죽은 뒤에는 효목(孝穆)이라 일컬어졌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김부대왕(金傅大王) : 태조는 신라의 국서를 받자 태상(太相) 왕철(王鐵)을 보내서 맞게 했다. 왕은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우리 태조에게로 돌아가니, 향거보마(香車寶馬)가 30여 리에 뻗치고 길은 사람으로 꽉 차고, 구경꾼들이 담과 같이 늘어섰다. 태조가 교외에 나가서 영접하면서 위로하고 대궐 동쪽 한 구역(지금의 정승원)을 주고, 장녀 낙랑공주(樂浪公主)를 그의 아내로 삼았다. 왕이 자기 나라를 작별하고 남의 나라에 와서 살았다 해서 이를 난조(鸞鳥)에 견주어 공주 칭호를 신란공주(神鸞公主)라고 고쳤으며, 시호(諡號)를 효목.. 2018. 4. 9.
효목(孝穆) 고려 태조 왕건의 맏딸로 귀순한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 김부에게 시집간 낙랑공주가 죽은 뒤에 받은 시호.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김부대왕(金傅大王) : 태조는 신라의 국서를 받자 태상(太相) 왕철(王鐵)을 보내서 맞게 했다. 왕은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우리 태조에게로 돌아가니, 향거보마(香車寶馬)가 30여 리에 뻗치고 길은 사람으로 꽉 차고, 구경꾼들이 담과 같이 늘어섰다. 태조가 교외에 나가서 영접하면서 위로하고 대궐 동쪽 한 구역(지금의 정승원)을 주고, 장녀 낙랑공주(樂浪公主)를 그의 아내로 삼았다. 왕이 자기 나라를 작별하고 남의 나라에 와서 살았다 해서 이를 난조(鸞鳥)에 견주어 공주 칭호를 신란공주(神鸞公主)라고 고쳤으며, 시호(諡號)를 효목(孝穆)이라 했다. 왕을 봉해 정승(正承).. 2018. 4. 9.
낙랑공주(樂浪公主) 고려 태조 왕건의 맏딸로 귀순한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 김부에게 시집갔다. 이후 신란공주(神鸞公主)라 불렀으며, 죽어 받은 이름인 시호는 효목(孝穆)이다. 삼국유사 권제1 기이 1 낙랑국(樂浪國) : 이상 여러 글에 의하면 낙랑(樂浪)이 곧 평양성(平壤城)임이 마땅하다. 혹은 말하기를 낙랑의 중두산(中頭山) 밑이 말갈(靺鞨)과의 경계이고, 살수(薩水)는 지금의 대동강이라고 하지만 어느 말이 옳은 지 알 수 없다. 또한 백제 온조왕(溫祚王)의 말에는 "동쪽에 낙랑이 있고, 북쪽에 말갈이 있다"고 했다. 이는 아마도 옛날 한(漢)나라 때 낙랑군에 소속된 현(縣)일 것이다. 신라 사람들이 역시 이곳을 낙랑이라고 했기 때문에 지금 고려에서도 또한 여기에 따라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이라 불렀다. 또 태조(太祖)가.. 2018.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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