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515 김호진 계용묵의 제주 족적 광복 후 한동안 제주의 거의 유일한 신문사였던 '제주신보' 사옥은 지금의 칠성로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 시절 분위기가 그러했듯, 제주신보도 진보적 색채가 강했지요. 그 신문사 편집국장 이야기 하나가 전설처럼 전해집니다. 4.3이 한창 불붙던 시기, 편집국장의 친구가 지나가다 제주신보사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 국장은 신문사 인쇄기로 사령관 이덕구 명의의 삐라를 찍어내고 있었다는군요. 서북청년단 사무실로부터 60걸음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음에도요. 대경실색한 친구가 만류했음에도, 그는 "산군들의 부탁이야"라며 태연하게 인쇄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 편집국장은 뒷날 계엄사령부에 잡혀 수용소- '농업학교 천막'에 들어왔다가 고문 끝에 총살당합니다. 그의 이름은 김호진金昊辰이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다시 100여.. 2022. 8. 25. 집 떠나면 개고생, 일본의 조선 표류민 대접 1893년 겨울 배 타고 한양 가다가 오키나와까지 떠내려간 어떤 분에 따르면, 오키나와 부속 도서에선 대접이 후하다가 오키나와 본섬에선 '국법'으로 풀떼기만 주더니(통역관을 구슬러 다시 진수성찬을 받았지만서도) 가고시마로 이송되서는 대접이 영 시원찮았다고 한다. 2022. 8. 25.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친필(?) 국사편찬위원회에 유리건판으로 남아있는 자료 중 하나다. 거기 붙은 설명은 다음과 같다. "秀才 朱澤民이 見示한 美人 병풍의 시에 대하여 益齋 李齊賢(1287∼1367)이 次韻한 4수." 에서는 이 시를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주택민이라는 이는 에 딱 한 번 등장하는데, 고소姑蘇 사람이고 익재를 위해서 연산효설도燕山曉雪圖를 그려주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익재가 썼다는 글씨를 처음 본다. 1930년대에는 그 유명한 나진옥(羅振玉, 1866~1940)이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누가 아껴주고 있을는지? 2022. 8. 15. 조선갓 쓰고 낙향한 청인淸人 반정균潘庭筠 이덕무, 박제가 등 조선 학자들과 인연이 깊었던 청대 선비 반정균潘庭筠이 1790년 변고를 만나 낙향했다. 그때 그는 박제가가 선물한 조선 갓을 쓰고 강남으로 갔다고 한다. 청나라 사람들, 그것도 북경에서도 수천 리 떨어진 강남 사람들에게 조선갓이 어떻게 보였을까. (2017. 8. 3) 2022. 8. 3. 단원檀園이 그린 장구 가죽 단원 김홍도(1745~?)의 '무동舞童'은 삼현육각 한 팀이 걸지게 노니는 장면을 그렸다. 근데 장구치는 사나이를 보면 유달리 장구 한쪽 면이 크게 부풀려져 그려져 있다. 그림의 과장인가 싶었는데, 오늘 여기서 한쪽 면이 크게 부푼 장구를 만났다. 여윽시 단원은 단원이라. (2021.7.29.) 2022. 7. 31. 세종 시대 책을 뜯어 커버로 삼은 안춘근의 《출판사회학》 한때 지금 직장에 좀 회의를 느낀 나머지 다른 직장은 좀 나을까 싶어 이것저것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출판업계였는데, 물어본 분마다 다들 말리시는 바람에 그만두고 말았다. 요컨대 학예연구사가 문화재를 좋아한다고만 되는 게 아니듯, 출판도 단순히 책을 좋아해서 뛰어들 분야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 대답은 "그렇군요...그렇겠죠."였고. 그랬기 때문에 나에겐 이 책이 더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출판인이자 서지학자요, 당대 으뜸을 다투던 고서 수집가 남애南涯 안춘근(安春根, 1926-1993)이 1969년 지은 《출판사회학》이란 책이다. 출판사는 저 유명한 통문관通文館이니 발행인은 당연히 그 주인 이겸로(李謙魯, 1909-2006) 선생이다. 출판이란 무엇이고, 사회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특.. 2022. 7. 31. 이전 1 ··· 55 56 57 58 59 60 61 ··· 8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