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515 현현거사玄玄居士 박영효의 글씨 철종 임금의 사위이자, 태극기를 만들고, 갑신정변의 주역이었으며, 망명과 유배를 밥먹듯 다닌 정객에, 일본의 후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요, 동아일보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 - 현현거사 박영효(朴泳孝, 1861-1939)를 이야기하려면 이 정도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근대의 그 누가 복합적 인간이 아니었으랴만, 박영효만큼이나 묘한 궤적을 보인 이도 흔치는 않다. 그리고 그는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1인자가 못 된 인물이기도 하다. 갑신정변에 관해서는 누구든 김옥균을 먼저 들먹이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그는 훗날 갑신정변을 회고할 때마다 "혁명을 김옥균이만 했던가? 준비는 나와 홍영식이 다했지" 같은 식으로 김옥균을 한껏 깎아내렸다. 친일 행적이라면 이완용에 밀린다. 박영효는 작위가 이완용보다 더 높았음에도 그가.. 2022. 5. 27. 몽고 황제가 좋아한 제주도 소고기 이른바 원 간섭기에 들어선 고려 충렬왕 23년(1297), 고려에서는 원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무엇을 바쳤는고 하니... 낭장郎將 황서黃瑞를 원元에 파견하여 금화옹기金畫甕器와 꿩 및 탐라 소고기를 바쳤다. - 권33, 세가33, 충렬왕 23년 1월 임오일 '금화옹기'는 아마 미술사 용어로 '화금청자畵金靑磁'라 하는 그것일 게다. 이것이 에선 '금화자기金畫瓷器'로 나오니 더욱 분명하다. 또 우리나라 꿩은 아름답고 또 맛나기로 유명하니 외국에 자랑하듯 바칠만도 하다. 주목되는 것은 탐라우육耽羅牛肉이다. 요새야 제주하면 흑돼지고 소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지마는, 이때는 탐라산 소고기가 명물이었던가보다. 오죽하면 유목의 나라 몽골에 바칠 정도였을까(물론 소고기는 그 자체로 옳지만 말이다). 냉장고가 .. 2022. 5. 22. 저 조그만 위원석渭原石 벼루에 담긴 사연 지금이야 벼루라는 물건을 쓰는 사람도 많지 않고, 쓰더라도 문방구에서 파는 먹물 부어놓는 용도로만 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법 가까운 옛날만 하더라도 벼루는 어지간한 집이면 누구나 갖춰놓는 것이었다. 글씨나 그림을 작作하려면, 하다못해 간단한 편지를 쓰려고 해도 물을 부어 먹을 갈아 먹물을 만드는 벼루는 있어야 했으니까. 문방文房의 네 가지 보물 중에 벼루가 왜 들어가겠는가. 그런 만큼 좀 아는 사람들은 좋은 벼루가 무엇인지 따졌다. 진흙을 구워 만든 징니연澄泥硯이나 기와벼루인 와연瓦硯, 도자기벼루인 도연陶硯, 심지어 나무로 만든 목연木硯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벼루는 돌로 만들기 마련이다. 당연히 좋은 돌로 만들어야 좋은 벼루라고 할 수 있는 법, 솜씨 좋은 조각은 그 다음이다. 벼룻돌 중의 최고라는 단.. 2022. 5. 18. 동풍이 따스히도 불어오네,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제법 가까운 옛날만 하더라도 동양화, 아니 한국화의 인기는 대단했다. 국전國展 동양화부 입선만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할 만큼 수요는 넘쳤고 그만큼 작품도 쏟아졌다. 그 수요의 정점에 있었던 몇몇 작가가 있었으니 청전靑田, 남농南農, 그리고 의재毅齋였다. 의재 허백련(許百鍊, 1891-1977). 그를 화가로만 아는 이가 많지만 기실 그는 사회운동가라고 해야 맞을지 모른다. 이 나라가 살 길은 농업에 있다 해서 광주농업기술학교를 세우고 무등산 자락에 춘설春雪이란 이름의 차밭을 가꾸었으며,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뜻을 품고 국조國祖 단군을 기리는 사당을 세우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젊은 날 공산혁명을 꿈꿨던 지운遲耘 김철수(金綴洙, 1893-1986)와 평생 교분을 나눴던 것도 .. 2022. 5. 17. 또 오세요, 야쓰이 상! 일본 연호로 다이쇼大正 7년이 되는 1918년, 새해 벽두인 1월 1일(양), 조선 경성에 살던 총독부 고적조사위원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 1890-1957)에게 연하장 하나가 날아든다. 발송처는 충청남도 부여 읍내에 있던 여관 '부여관扶餘館'. 여관에서 왜 연하장을 보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초기의 고적조사는 여러 명이 오랜 시간 외지를 떠돌아야만 하는 출장이었다. 어떤 때는 노숙도 감수해야하고, 강도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그러니 따순 밥 먹고 비 피할 지붕이 있는 숙소가 중요했을터. 부여 같은 시골에서는 더욱 더 그런 숙소가 간절했을지도 모른다. 시골 여관의 입장에서도 장기 투숙에 여러 명이 한꺼번에 자고 가는, 게다가 관官의 높으신 분인 고적조사위원들이 .. 2022. 5. 17. 백운거사 휘호도白雲居士揮毫圖 ***(편집자주)*** 백운거사란 이규보를 말한다. 2022. 5. 16. 이전 1 ··· 58 59 60 61 62 63 64 ··· 8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