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와 후기의 간극, 변계량과 권근의 경우
정우량이 아뢰기를, “선정(先正) 이이(李珥)가 《대학연의(大學衍義)》는 좋기는 하지만 기사체(記事體)에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승지가 영락(永樂) 원년(1403, 태종3)의 서(序)를 읽으라.” 하니, 신치운이 읽었다. ...... 상이 이르기를, “이 책 발문(跋文)에 들어 있는 사람은 자손이 있는가?” 하니, 윤광익이 아뢰기를, “길창군(吉昌君, 권근(權近))의 자손이 많은데 벼슬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고, 신치운이 아뢰기를, “세조조의 공신 권람(權擥)과 권제(權踶)가 대제학이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변계량(卞季良)도 자손이 있는가?” 하자, 윤광익이 아뢰기를, “변은 기이한 성이라 지금은 사대부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정우량이 아뢰..
2022. 6. 13.
여색을 밝히고 명품 구찌에 환장한 정몽주
서거정의 를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 포은(圃隱) 정문충공(鄭文忠公)은 평생에 지절(志節)이 있고 남을 이간(離間)하는 말이 없었는데, 어떤 이가 농담하기를, “자네는 세 가지 과실이 있는데 알겠는가.” 하였다. 문충공이 대답하기를, “말을 해 보라.” 하니, 말하기를, 1) “남이 말하기를, ‘자네 친구들과 모여서 술을 먹을 적에 남보다 먼저 들어가서 맨 나중에 자리를 파하니, 술 마시는 것을 너무 오래한다.’ 하더라.” 했다. 문충공이 대답하기를, “진실로 그런 일이 있다. 젊어서 시골에 있을 적에 한 동이 술을 얻으면 친척과 친구들과 더불어 한 번 실컷 마시고 즐기고 싶었는데, 지금은 부귀(富貴)하여 자리에는 손님이 항상 가득하고 술통에는 술이 떨어지지 아니하니, 내가 어찌 조급하게 하겠는가.”..
2022.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