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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71

한 맺힌 이의 장서인 학부 말이었던가 대학원 초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때는 인사동의 고서점이나 인터넷 경매 등을 기웃거리며 고서를 들여다보곤 했었다. 그야말로 책에서나 보던 고서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도 보고,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다는 데 매료되었다. 물론 학생의 주머니 사정이라는 게 뻔해서 제대로 된 걸 살 수는 없었지만, 어쩌다 한 권 두 권을 사서 돌아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이 중국판 《문선》도 그 시절 인터넷에서 구한 책이다. 사진으로는 지금까지 보던 조선 책과는 어째 다르다 싶어 신기했고 주인이 붙인 가격도 싸서(액수는 잊어버렸다) 구했는데, 들이고 나서 찾아보니 명말 청초의 그 유명한 급고각 판본이었다. 군데군데 찢어지고 낙장도 있어 선본은 아니었지만, 어렸던 나로서는 횡재라 하지 않을 수.. 2020. 11. 23.
나까무라상, 천 년도 더 전 옛 이야기를 그리다 1. 옛날 중국 진나라 때, 스님인 혜원법사와 시인 도연명, 도사 육수정 이 셋은 참 절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혜원법사는 여산 동림사라는 절에 머무르며, 절 앞을 흐르는 시내 '호계'를 건너지 않는 걸 철칙으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스님이 잘 지내는가 싶어서 친구 둘이 들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얼마나 반가웠으랴. 혜원법사는 이야기에 취해 그만 냇물을 건넜다. 그러자 어디선가 범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깨달은 세 사람, 누구랄 것도 없이 껄껄껄 웃었다 한다. 이 장면, '호계삼소'는 이후 유-불-도 세 종교의 화합을 상징하는 천고의 고사가 되었다. 2. '호계삼소'를 다룬 그림은 적지 않다. 하지만 딱! 떨어지는 작품은 많지 않다. 그러다가 이 그림을 만났다. 우리나라 사람의 솜씨는 아니.. 2020. 11. 21.
조선중추원이 사들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때는 바야흐로 1777년, 정조 임금이 청나라로 가는 사신에게 특별히 부탁을 한다. "거 요즘 청에서 라는 책을 만든다지? 가서 한 질 얻어오너라." 왕의 부탁(이라고 쓰고 명령이라고 읽는)을 가슴에 품고 베이징에 간 사신들이지만, 막상 도착하니 쉽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 는 다 만들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고민고민하다가 이분들, 꿩 대신 닭이라고 강희ㅡ옹정 연간에 만들어진 백과사전(이라고는 해도 오늘날의 백과사전과는 좀 의미가 다르지만) 초인본初印本 한 질을 은자 2천하고도 150냥에 구해온다. 은 한 냥은 상평통보로 네 냥, 대략 20만원 남짓이라니 그 값이 참...어마어마하다. 근데 사오면서도 청나라 관원에게 한 소리를 듣는다. "조선은 글을 좋아한다면서 이제야 이걸 사갑니까? 일본에선 몇십 년.. 2020. 11. 18.
환재桓齋 박규수朴珪壽(1807~1877)의 간찰 내년은 신미양요 150주년, 내후년은 한미수교 140주년이다. 이를 되새기는 움직임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신미양요의 한 원인이 되었던 제너럴 셔먼 호 사건(1866) 당시의 평안감사 환재 박규수(1807~1877)의 간찰을 살펴본다. 환재는 제너럴 셔먼 호 사건 이후에도 한동안 평안감사 직을 수행했는데, 이 간찰은 셔먼 호 사건 1년 뒤인 정묘년(1867) 6월 썼다. 수신인은 하급자인 의주부윤. 내용은 그리 특별할 게 없는 안부편지인데, 글씨가 보통이 아니다. 추사 스타일이 아닌 자기 필체다. 이 당시 의주부윤이 누구였나 궁금해 고종실록을 찾아보니 윤자승(1815-?)이란 인물로 나온다. 상당히 낯선 이름인데, 판서, 대사헌, 승지 등을 역임했고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전권대신 신헌(1810.. 2020. 11. 14.
150세라 일본에 뻥을 친 나홍유 고려 말에 나흥유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열전이 《고려사》권114에 남아 있는데, 이 사람이 기록상 최초의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다. 그런데... . 우왕 초에, 〈나흥유가〉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가 되어 일본과 화친하는 것을 청하는 글을 올리자 마침내 통신사(通信使)로 파견되었다. 신사년(1281) 일본에 원정한 이후 일본과 우리가 우호관계를 끊었는데 나흥유가 처음에 〈일본에〉 도착하니 〈나흥유를〉 첩자로 의심하여 가두었다. 양유(良柔)라는 자는 본래 우리나라의 승려였는데, 나흥유를 보고 풀어줄 것을 청하였다. 이때 나흥유는 나이가 겨우 60세였는데 속이며 말하기를, “내가 지금 150세요.” 라고 하니 왜인들이 모여들어 보더니 심지어 화상(畵像)을 그리고 찬(讚)을 지어 바치는 자까지 있었다. .. 2020. 10. 26.
클리쉐로 정착한 면신례첩免新禮帖 면신례免新禮 관련 자료 정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한 몇몇 지인이 그와 관련한 자료들을 찾아다 준다. 이 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 강민경 선생이 찾아준 것으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이라, 그 내역은 이러하며 출전은 아래다.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0100104601500000 면신례(免新禮) 문서 조선시대 신입 관원의 면신례(免新禮)에 관한 문서. 신입 관원 정양신(鄭暘臣)에 대한 면신례 문구가 기록됨. 오른쪽에 정양신의 이름이 거꾸로 적혀 있고, 왼쪽에 5개의 수결이 있음. www.emuseum.go.kr 그에 대한 안내는 이렇다. 면신례(免新禮) 문서 국립민속박물관 명칭 면신례(免新禮) 문서 다른명칭 정양신(鄭暘臣) 면신례 문서, 신참례(新參禮) 문서 국.. 2020.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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