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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15

월급날이 지났지만 통장은 그저 정거장일 뿐이런가 2021. 3. 27.
시냇물의 흐름은 쉬지 않는다 운여 김광업(1906-1976)의 작품 *** 천류불식川流不息 이라 천류를 강물의 흐름이라 새길 수도 있고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 라고 보아도 좋다.(台植補) 2021. 3. 24.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 그의 글씨 무호 이한복(1897-1944). 근대의 이름난 화가였지만, 당대의 거물 오창석의 제자에게 배워 글씨로도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書를 빼자 주장하는, 언뜻 모순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석사논문 하나만 나왔을 정도로 본격적인 연구가 많지 않은데, 언젠가 이분의 서예인식을 한 번 글로 써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연을 떠나서라도, 글씨가 좋지 않은가 말이다. 멋을 낸 전서 글씨의 구조하며, 긴장미가 흐르는 형태는 또 어떤지. 2021. 3. 24.
위창葦滄이 보던 고려도경高麗圖經 국립중앙도서관 위창문고에 있는 이다. 매우 흥미롭게도 철필로 긁어 민 등사본이다. 몇 군데 살펴보니 지부족재본을 그대로 베꼈는데, '경성 군서당서점'이란 딱지가 붙었다. 이당 김은호의 자서전 을 보면 당시 서점에선 알바들을 고용하고 책을 베꼈다고 한다. 필경사들이 베낀 책의 수요가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창 선생 댁에 지부족재본 이 없었다니 그건 그것 나름대로 놀라운 일이다. *** 台植補 *** 위창문고란 근대 서화가이자 서지학도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문고를 말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이다. 이에서 말하는 등사가 실은 전통시대 전형적인 출판방식이다. 인쇄본? 졸라 비싸고 출판량도 많지 않아 구득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것도 대개 비매품이라, 그거 하나 얻겠다 난리를.. 2021. 3. 17.
무심한 아들놈 야쓰이 세이이쓰 1918년 9월 10일, 조선총독부의 촉탁이자 고적조사위원을 겸하고 있던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 곡정제일, 1880-1959)는 경성부 아사히마치旭町 잇초메一丁目 143번지, 지금의 서울 중구 회현동 143번지(소월로 16)에 있던 집에 이삿짐을 옮겨놓는다. 그리고 이사했다는 사실을 관제엽서에 인쇄하여 지인들에게 보낸다. 그 중의 한 장이 최근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 엽서는 다른 것하고는 구별되는 사연이 있다. 바로 이 엽서를 받는 와카야마현의 야쓰이 간조谷井勘藏란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니고 야쓰이 세이이쓰 본인의 아버지라는 사실! 보통 생각하기에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족)에게 이사했다는 걸 알려야 한다면 손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아버님 전상서, 소자가 이번에...."이런 식으로 써서 부치거나, 전화.. 2021. 3. 15.
[옛 글씨를 보다가] 고우古友 최린崔麟의 경우 이 땅의 근대는 참 파란만장했다. 그만큼 많은 인물이 나타났고 스러져갔다. 역사에 향기로운 이름을 남긴 이들만큼이나, 더러운 발자국을 남긴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을 어떤 한 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어째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했을지, 그들이 남긴 다양한 면모를 두루 살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우古友 최린崔麟(1878-1958) 글씨를 감상하며 그런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귀한 작품을 보여주시고 사진촬영과 게재를 허락해주신 소장자께 감사드린다). 최린은 대한제국 황실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보성전문학교 교장, 천도교 종법사宗法師, 계명구락부 이사를 역임한 당대 일류급 지식인이었다. 또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이름을 올린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조.. 2021.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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