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286

자하 신위 vs. 추사 김정희, 침계梣溪를 쓴 두 거장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은 그의 호 침계(梣溪) 글씨를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에게 받았다. 추사는 부탁받은 지 30년이 지나 써주었는데, ‘梣’의 예서체를 찾느라 그랬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달았다. 자하는 학고(鶴皋)의 부탁으로 썼다고 간략히 적어두었다. 학고는 김이만(金履萬, 1683~1758)이라는 분의 호로 워낙 알려졌는데, 생몰년으로 보면 맞지 않는다. 윤정현의 문집인 《침계유고(梣溪遺稿)》 권1 〈호루송별(湖樓送別)〉 이라는 시 마지막에 “병자년(1816, 순조 16) 추분날 학고 정현은 난석재에서 씀[丙子秋分日 鶴臯鼎鉉 書于蘭石之齋]”이라고 써 놓았으니, 윤정현의 호가 학고이다. 그런데 이름이 ‘定鉉’이 아니.. 2021. 10. 1.
《임하필기》 제19권가 수록한 《계림유사鷄林類事》의 방언方言 《계림유사》는 북송의 손목孫穆이 편찬한 일종의 견문록見聞錄이자 역어집譯語集. 그가 고려 숙종 8년(1103)에 서장관으로 고려에 와서 당시 고려의 조제朝制, 토풍土風, 구선口宣, 각석刻石 등과 함께 고려어高麗語 360여 어휘를 채록하여 분류, 편찬한 책이다. 번역할 때 고려음을 중국음으로 표기했으면 근사한 음가를 알 수 있을 듯. 하늘[天]을 한날(漢捺), 해[日]를 항(姮), 달[月]을 설(契), 구름[雲]을 굴림(屈林), 바람[風]을 불람(孛纜), 눈[雪]을 눈(嫩), 비[雨]를 비미(霏微), 천둥[雷]을 천동(天動), 귀신[鬼]을 기심(幾心), 부처[佛]를 불(孛), 하나[一]를 하둔(河屯), 둘[二]을 도발(途孛), 셋[三]을 세(洒), 넷[四]을 내(迺), 다섯[五]을 타술(打戌), 여섯[六]을.. 2021. 9. 21.
상행선 공주 정안휴게소서 홀길동을 반추한다 연산군 때 도적 홍길동(洪吉同)은 소설과는 사뭇 다른 행적을 보였다. 그는 인수대비의 패지를 위조해서 관가의 재물을 탈취하기까지 했다. 그의 활동 범위는 충청도였다. 중종 초 충청도 양전을 논할 때 그 여파로 유민이 회복되지도 못했다고 하였다. 옥오재 송상기는 홍길동이 쌓았다는 마곡사 근처 산성을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이것이 홍길동에 대한 사실에 근접한 이야기다. 전라도 장성 땅 홍길동 이야기는 완전 허구이고... *** (태식보) *** 전라도 장성 땅에 홍길동테마파크라는 데가 있다. 이곳 독거가 낙향 기거하는 하남정사 바로 아래다. 이 테마파크 생기면서 이 동네가 직격탄을 맞았다. 이쪽을 길동이 나와바리로 삼은 내력이 썩 없지는 아니해서 황윤석인가 한마디 해놓은 게 있을 것이다. 이를 침소봉대해서 .. 2021. 9. 10.
목포진 목포진과 해남 등산진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관련 자료를 크로스체크 해야 할 듯하다. 아산은 영암군 삼호면 대아산과 소아산을 싸잡아 이른 것일 테고, 삼학도는 매립된 곳이고, 대박산은 목포 석현동 대박산일터..... 2021. 9. 7.
벽골제는 저수지? 방조제? 벽골제가 저수지였을까 방조제였을까? 조선 시대 저수지 기능이 거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2021. 9. 7.
왜닥나무[倭楮 왜저] 세종 때부터 일본 종이가 희고 보푸라기가 일지 않아 책종이로 적합하여 대마도에서 왜닥나무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합니다. 세종 때 일본 종이를 수입해 책을 출판하기도 했고, 세조 때 인출한 대장경은 국내에서 재배한 왜닥을 사용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경주 등 전국 각지 특산물로 '倭楮'가 등재되어 있습니다. 임란 무렵이면 당시 책은 대부분 왜닥으로 만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엔 거의 왜닥을 사용해서 재래종 닥나무는 알지도 못한 듯합니다. 우리가 보는 닥나무 가운데 둘 구분이 되나요? 천연기념물인 남해 화방사 산닥나무 자생지의 산닥나무가 재래종 닥나무였을 가능성이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그곳 일대도 왜닥나무 식재지였습니다. 사진은 진주시에서 발견한 높이 8.5m, 흉고둘레(가슴.. 2021. 9. 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