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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285

임금들이 읊은 그림 감상기, 요지연도瑤池宴圖의 경우 국립고궁박물관은 얼마 전에 미국에서 돌아온 《요지연도(瑤池宴圖)》를 공개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경기도박물관에도 각 1점씩이 있다. 모두 제작 시기는 알기 어렵다. 최근 《열성어제(列聖御製)》를 살펴보다가 궁중에 있던 그림에 대해서는 숙종, 영조 등이 시문을 많이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숙종은 《요지대회도(瑤池大會圖)》라는 제목으로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열성의 시문을 놓고 그림과 대조하면서 분석해 보는 것도 중요할 듯하다. 2021. 10. 20.
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영대 할멈의 경우 [실록과 승정원일기] 《영조실록》 34년(1758) 5월 4일 기사에 임금이 말하기를 "종묘(宗廟) 앞에 놓아 둔 돌은 바로 일영대(日影臺)인데, 경 등은 이를 아는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알지 못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열성조(列聖朝)에서 미행(微行)할 때에 한 늙은 할멈을 만났는데, 그가 남편에게 이르기를, ‘세성(歲星)이 적성(賊星)에게 쫓긴 바가 되어 유성(柳星) 아래로 들어갔다.’고 하는 것을 보고는, 그때에 바로 그 할멈을 운관(雲觀)에 예속하게 하였는데, 일영대는 이 할멈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 하였다. [上曰: "宗廟前置石, 乃日影臺, 卿等知之乎?" 僉曰: "不知。" 上曰: "列聖朝微行時遇一老嫗, 則謂其夫曰, ‘歲星爲賊星所逐, 入柳星下’, 其時卽使其嫗隷於雲觀, 日影臺爲此嫗.. 2021. 10. 20.
고창고보 교사 송태회宋泰會(1872~1941) 송태회는 호가 염재(念齋), 염재(恬齋), 호산(壺山)이다. 화순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한학자이자 서화가이다. 숙부인 사호(沙湖) 송수면(宋修勉, 1847~1916)의 제자로 16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22세에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909년 7월 《대한매일신보》 기자로 잠깐 동안 근무하였으며, 1920년 고창으로 이거하여 고창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한문과 역사를 가르쳤다. 이후 오산보통고등학교는 고창고등보통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오늘날 고창고등학교이다.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1922년부터 31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예에 2회 입선하였으며 문인화 부문에서 6회 입선하면서 화단에서 활동하였다. 고암 이응노(李應魯, 1904~1989)를 지도하기도 하였다. 매천 황현, .. 2021. 10. 16.
신숙주가 무장읍성 아관정迓觀亭에서 읊은 시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보한재집保閑齋集》에 수록되지 않은 시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6 〈무장현 제영〉에 전한다. 제목은 따로 전하지 않는다. 여기 성은 무장읍성을 이르고 성 위 정자는 객관 북쪽에 있었던 아관정迓觀亭을 이르는 듯하다. "외로운 성 위 정자에서 두어 날을 머무는데 信宿孤城城上亭 가을바람 꿈결 혼마저 처량하게 불어오누나 西風吹入夢魂清 나부끼는 남은 오동잎 읊노라니 늙어만 가고 桐飄殘葉吟中老 늘어지게 새로 핀 국화꽃 유달리 환하구나 菊嚲新花分外明 땅끝 바닷가 하늘은 고원한 마음 일으키는데 地盡海天生遠意 깊어가는 가을 북과 나팔 소리 변방을 울리네 秋深鼓角作邊聲 고아한 시에 화답하려 하나 좋은 글귀 없으니 欲賡高韻無佳句 감히 시인의 이름이나 기억해 달라 말하겠소 敢道爲詩記姓名" .. 2021. 10. 10.
표절의 기술 잔대가리 발달한 연구자는 표절도 영악하다. 그러나 표절하는 김에 염치나 노력 따위는 개나 주는 연구자가 대부분이다. 인문학 논문은 주석을 살피면 잔대가리가 있든 없든 표절을 알 수 있다. 주석의 오류를 거르지 못하고 베끼기 때문이다. 또 흔한 실수가 오자도 베끼는 것이다. 주석에 《萬機耍覽》이라는 게 있었다. 만기사람은 뻔한 실수다. 사(耍)가 요(要)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인용문도 견(遣)이 유(遺)로 잘못 쓰인 경우도 허다하다. 틀린 것을 보면 누구 것 베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잔대가리 굴리다가 실수하는 연구자도 있다. 《성호사설》이 대표적이다. 조선광문회본 원문과 한국고전번역원 번역본은 대본이 달라서 卷이 완전히 다른데 같을 줄 알고 슬쩍 고쳐서 찾을 수 없는 주석이 되기도 한다. 2021. 10. 7.
자하 신위 vs. 추사 김정희, 침계梣溪를 쓴 두 거장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은 그의 호 침계(梣溪) 글씨를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에게 받았다. 추사는 부탁받은 지 30년이 지나 써주었는데, ‘梣’의 예서체를 찾느라 그랬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달았다. 자하는 학고(鶴皋)의 부탁으로 썼다고 간략히 적어두었다. 학고는 김이만(金履萬, 1683~1758)이라는 분의 호로 워낙 알려졌는데, 생몰년으로 보면 맞지 않는다. 윤정현의 문집인 《침계유고(梣溪遺稿)》 권1 〈호루송별(湖樓送別)〉 이라는 시 마지막에 “병자년(1816, 순조 16) 추분날 학고 정현은 난석재에서 씀[丙子秋分日 鶴臯鼎鉉 書于蘭石之齋]”이라고 써 놓았으니, 윤정현의 호가 학고이다. 그런데 이름이 ‘定鉉’이 아니..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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