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285 실학 실학은 역사학자들이 연구해낸 개념으로 벌써 70년이 넘었다. 조선 후기에 이전과는 뭔가 다른 사조가 있다는 것은 일제강점기부터 알려져 있었다. 언론인이며 역사학자였던 고 천관우(千寬宇, 1925~1991) 선생이 서울대 국사학과 학부 졸업논문으로 ‘磻溪 柳馨遠 硏究’를 제출하였다. 당시 지도교수는 이병도 선생이었는데,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고 칭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천관우 선생 동창이 이기백 선생인데, 덕분에 닭이...) 그는 반계 유형원의 개혁론을 실학 발생의 시초라고 보았다. 이 방대하고 충격적인 논문은 《역사학보(歷史學報)》 2집과 3집에 나누어 실리게 되었으니 바로 〈磻溪 柳馨遠 硏究 (上)·(下) - 實學 發生에서 본 李朝社會의 一斷面〉(1952·1953)이다. 여기에서부터 실학이라는 .. 2021. 11. 7. 난수표 부賦 허훈(許薰)의 《방산집(舫山集)》 권17 〈칠유(七喩)〉라는 부(賦)에는 한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생평 한 번 볼까 말까한 글자가 널렸구나. 2021. 11. 7. 인광노引光奴, 성냥개비 《산림경제》 권4. 에 인광노(引光奴 성냥개비): 광솔[松明]은 쪼개어 작은 조각을 만들되 종이처럼 얇게 만들어 유황(硫黃)을 녹여 그 끝에 발라두었다가 밤의 급한 일이 있을 적에 이것을 사용하여 불을 붙이면 즉시 붙게 된다. 어떤 때는 화피(樺皮)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너무 급히 타서 쉽게 꺼지기 때문에 오래 타는 광솔만은 못하다. 라고 하였고, 《청장관전서》에서는 항주(杭州) 사람이 소나무를 깎아 작은 조각을 만들되 얇기는 종이처럼 하고, 유황(硫黃)을 녹여 그 끝에 바른 다음 이름하여 발촉(發燭) 또는 쉬아제후비(焠兒齊后妃)라고 하였는데, 가난한 자가 발촉을 업으로 한 것은 이것이 그 시초이다.《청이록(淸異錄)》에, “삼목(杉木)을 얇게 깎아 유황을 바르고 이를 인광노(引光奴)라고 부른다.” .. 2021. 11. 4. 면역을 말한 갈홍 동진시대 갈홍(葛洪)은 《포박자(抱樸子)‧미지(微旨)》에서: “전염병을 한 번 앓았다면 무서울 게 없지만, 위급한 역병이 치성하는 재난을 만나면 꼭꼭 숨어라.[經瘟疫則不畏, 遇急難則隱形。]”고 했다. 경험으로 면역을 알았구나. 2021. 11. 4. 면례緬禮, 무덤을 옮기는 rituals 조선후기 예학의 발달과 더불어 개장(改葬) 의례가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다. 이를 면례(緬禮)라고 한다. 조선에서 만든 용어인데,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장공(莊公) 3년에 “개장할 때에는 시마복(緦麻服)을 입는데 낮은 복을 입는 것은 멀기 때문이다.[改葬之禮緦 擧下緬也]”라는 말에서 비롯하였다. 이세필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면례의절(緬禮儀節)》과 같은 지침서가 있고, 면례 과정을 기록한 일기들도 상당수 전한다. 조선후기에는 면례가 왕실 의례로도 자리잡아 많은 기록이 있다. 서인과 남인이 이를 수용하는 것도 상당히 달랐다가 영조 이후에는 같아지는 듯하다. 어릴 적 선조모께서 '민례'라고 하셔서 그게 뭘까 하다가 면례라는 걸 가친께 듣고서야 알았다. 2021. 10. 29. 쉬운 글자 두고 유독 어려운 글자 고른 조선 영조 임금 간혹 필사본에 고집스레 고자古字를 쓰는 경우를 본다. 그 글자를 모두 고자로 쓰는 게 아니라 특정 부분만 그리 쓴다. 時를 旹로 쓰거나, 法을 灋으로 쓰는 경우다. 특히 영조가 그런다. 2021. 10. 26.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4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