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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285

인조仁祖가 지은 이름 한북문漢北門 [최초 공개] 오늘날 홍지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은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한북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한북문이라는 이름을 지은 분은 인조이셨습니다. 오늘날은 사라졌지만 한북문에 걸려 있었던 인조의 어제시가 다른 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번역하여 올립니다. 인조(仁祖) 《한북문에 올라[登漢北門]》 어제시(御製詩) 현판(懸板) 오래전 이 문에서 쉬었던 게 옛일인데 粤昔往年憇此門 오늘 또 문에 오르니 얼마나 다행인가 今辰何幸復登門 접때 일을 추억하니 내 마음 긴절하여 追惟曩日我心切 붓을 휘둘러 한북문이라고 명명하노라 走筆命名漢北門 때는 정묘년(1627 인조5) 10월 3일 峕丁卯孟冬初三日 2020. 10. 23.
이인상李麟祥 《보산첩寶山帖》 《보산첩(寶山帖)》 능호관(凌壺觀), 보산인(寶山人) 이인상(李麟祥, 1710-1760) 의 서첩 크기 : 32.0 X 22.8 cm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소장 2020. 10. 23.
민주적 절차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듣기만하고 내맘대로 결정하는 것. (2014. 10. 22) 2020. 10. 22.
학문, 육성보다는 경쟁 [경쟁] 학문은 정당한 경쟁이라는 바탕에서 투자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육성이라는 명분으로 투자해서는 효과가 없다. 그간 지방대 육성 발전시킨다고 쏟아부은 돈이 얼마였나. 인문학 죽었다고 징징 댈 때마다 쏟아 부은 돈은 또 얼마나 되나. 그럼에도 지방대는 갈수록 고사하고 있다. 발전한 건 그 돈 빼먹는 기능뿐이었다. 인문학도 돈 투자된 분야는 제자리고 지원 없이 허덕허덕 이어간 분야는 오히려 성과가 있었다. 돈을 쓰기 전에 운동장을 편평하게 하는 일에 집중하라. 2020. 10. 22.
[조선시대 품셈단가] 영조시대 연융대성의 경우 영조 때 연융대성[탕춘대성]을 쌓을 때 이를 석축으로 할 것인지 토축으로 할것인지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때 품셈 단가가 나오네요. 영조 24년 10월 11일에 환경전(歡慶殿)에서 대신과 비국 당상인 인견하는 자리에서, 강화 유수 권혁(權爀)이 "돌로 쌓을 때 1步[약 1.2m]에 들어가는 물력은 돈으로 5냥 남짓이 되고 쌀로는 2섬 남짓이 되는데 지금 쌓지 못한 곳이 4천 여 보가 넘습니다. 만약 돌로 쌓는다면 이 물력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수 있습니까?[石築時一步所入物力, 錢爲五兩餘, 米爲二石餘, 卽今未築處, 至過四千餘步。若欲以石築之, 此物力從何辦出乎?]" 라고 한 기록이 보이네요. 나머지 축성 기록 들을 검토하여 축성 비용을 계산한다면 조선시대 축성의 품셈단가를 계산할 수 있을 듯. 2020. 10. 22.
《기제旗制》, 깃발의 모든 것 《기제(旗制)》 영조대 편찬된 조선후기 군사용 깃발 및 악기, 각종 무기, 용호영(龍虎營)의 체제 등에 대한 내용을 수록한 1권 1책의 필사본으로 현재 오사카부립도서관(大阪府立圖書館)에 소장된 게 유일본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이 복사본이 있습니다. 군기만이 아니라 화포 등 무기에 대한 내용도 실려있습니다. 2020.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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