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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285

서정주 [보릿고개] 서정주 [보릿고개] 사월 초파일 뻐꾹새 새로 울어 물든 청보리 깍인 水晶같이 마른 네 몸에 오슬한 비취의 그리메를 드리우더니 어느만큼 갔느냐, 굶주리어 간 아이. 오월 端午는 네 발바닥 빛깔로 보리는 익어 우리 가슴마다 그 까슬한 가시라기를 비비는데... 뻐꾹새 소리도 고추장 다 되어 창자에 배는데... 문드러진 손톱 발톱 끝까지 얼얼히 배는데... [사진출처] 2020.05.27 경기신문 [물둘레] 2020. 11. 3.
정철鄭澈〈약사대藥師臺〉 정철(鄭澈, 1536~1593), 〈약사대(藥師臺〉 남쪽 시내에서 머리를 감고, 南溪沐余髮, 다시금 찾아 올라온 약사대. 更上藥師臺。 단약 찾아 따라와 머무는데, 服食從渠住, 이따금 보이는 찾아온 우객. 時看羽客來。 *** 台植補 *** 장성 백양사 뒷산을 백암사라 하고 그 봉우리 중 병풍처럼 깎아지른 암봉을 백학봉이라 하는데 약사대는 그 중턱 암반에 똬릴 틀었다. 이곳을 약사대라 한다. 2020. 11. 1.
김우급金友伋〈백양산 노대암에 백학이 날아와 둥지를 지었다[白羊山露臺巖白鶴來巢]〉 김우급(金友伋, 1574~1643), 〈백양산 노대암에 백학이 날아와 둥지를 지었다[白羊山露臺巖 白鶴來巢]〉 선금이 이미 새끼 낳았단 기쁜 소식에 喜聞仙禽已化胎。 늙은이 생각 없이 높은 노대암 올랐소 衰年無意上高臺。 대사님 이 병든 노인 가련히 여긴다면 師乎倘或憐吾病。 하얀 털에 붉은 이마 단정학 그려오소 畫取霜毛丹頂來。 2020. 11. 1.
정철鄭澈〈영천굴靈泉窟〉 정철(鄭澈, 1536~1593), 〈영천굴(靈泉窟)〉 만고 세월 전해온 영천굴은, 萬古靈泉窟。 천계에 이르는 조그만 동굴. 三天小洞門。 창문 앞엔 파랑새 둥지 있고, 窓前巢翡翠。 처마 끝엔 떠돌던 구름 잔다. 簷際宿歸雲。 《송강원집(松江原集)》 권 1 *** 台植補 *** 영천굴靈泉窟은 장성 백양사 암자 약사암 인근 굴이다. 약사암은 깎아지른 바위산 백학봉 기슭에 있다. 이곳에서 백양사를 한 눈에 조망한다. 2020. 11. 1.
김우급金友伋 <단풍잎을 읊다[題楓葉]> 아마도 백양사 아니면 문수사였으리라. 김우급(金友伋, 1574~1643) 사랑하는 단풍나무 숲 너무 좋기에 為愛楓林好 수레를 멈추고서 물가에 앉았어라 停車坐水濱 이곳 스님 참으로 나그네 미워하여 居僧真惡客 대부분을 땔나무 삼아 베어갔구나 太半取為薪 2020. 11. 1.
차천로는 왜 과거시험을 대리했을까 조선 선조 때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차천로(車天輅, 1556~1615)는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개성 교수(開城敎授)를 지냈고, 1583년 중시에도 입격하였습니다. 1586년 정자(正字)로 있던 그는 여계선(呂繼先)이 과거를 볼 때 표문(表文)을 대신 지어주는 불법행위를 저질렀습니다. 문제는 대충 쓰면 될 일이었지만 그 문장력 때문에 여계선이 장원 급제하여 일이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차천로는 이 일로 명천(明川)에 유배되었다가 글재주가 있다는 이유로 1588년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나 속사정을 음미하면 당시의 부조리가 모조리 담긴 사건이었습다. 첫째, 그는 비교적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던 까닭에 문과에 중시까지 거쳤어도 승진이 되지 않았습니다. 글 솜씨 좋다는 평가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2020.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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