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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1957

5소경이 필요한 이유 통일신라시대 역사 공부를 하면 항상 나오는 것이 9주 5소경이다. 그런데 행정기관으로서 9주에는 주도라 할 중심지가 다 있다. 5소경은 9주 외에 따로 설치된 것이다. 왜 따로 설치했을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에도시대 일본의 지도다. 막부의 비공식 적대세력이라 할 도자마 다이묘들의 사이에 막부령과 신판, 후다이 다이묘의 땅을 박아 넣은 것이 보이는가? 저것은 일부러 저렇게 한 것이다. 주변의 도자마 다이묘를 감시하기 위해서. 다시 신라의 9주 5소경을 보자. 5소경을 왜 저렇게 박아 넣었는지 이유가 보이는가? 5소경은 주변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통일신라판 "막부령, 신판다이묘, 후다이다이묘"나 다름없다. 그래서 5소경에는 신라 왕경처럼 6부를 설치하고 왕경의 사람들을 이주시킨 것이다. 5소경은 신라의.. 2024. 5. 11.
도자마 다이묘[外様大名]와 후삼국 일본 에도시대에는 전국 다이묘大名를 셋으로 나누었는데, 도자마外様[외양] 신판親藩[친번] 후다이譜代[보대] 다이묘다. 이 중 신판 다이묘는 도쿠가와 집안 인척들이며 후다이 다이묘는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 이전에 이미 도쿠가와 집안에 종사하던 집안 후예들이며 도자마 다이묘는 세키가라라 이후에 도쿠가와 지배하에 들어온 집안들이었다. 도자마 다이묘라고 하지만 그 사정도 천차만별이라. 사쓰마와 조슈는 세키가하라 전쟁 때 도쿠가와 집안에 적극 협력하지 않아 완전히 눈밖에 난 집안으로 서쪽 끝에 말그대로 쳐박아 둔 상태였다. 이 때문에 에도시대 내내 도쿠가와의 중심지라 할 관동과 관서 일대에는 막부령과 신판, 후다이 다이묘가 배치되며 그 바깥쪽에 도자마 다이묘가 둘러싼 모양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도자마 다이묘가 집중.. 2024. 5. 11.
동전 품귀 전황錢荒은 조선시대에만 있었을까 전통시대 한국사는 구리가 없어 고민을 안 해 본 적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구리가 부족해 화폐량이 절대 모자라경제가 제대로 안 돌아갈 판이었다. 조선 선비 중에는 심지어 돈을 쓰지 말자고 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이를 전황錢荒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황은 조선시대에만 있었을까. 예를 들어 청동기시대는 어떨까. 전황이라는 말을 동전 부족이라 하다 보니 전황이지, 사실 구리 부족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청동기시대에는 구리 부족에 시달린 적이 없을까? 있었을 것이다. 한국사에서 청동검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많은 돌칼들은 이를 웅변한다. 청동으로 위세품 수요를 다 채우지 못하다 보니 돌까지 동원된 것이라 필자는 본다. 그런데-. 그러고도 모자랐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 .. 2024. 5. 10.
과전법은 이것이 왜 부활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흔히 과전법은 고려말의 겸병과 사전, 대농장을 종식시키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진사대부들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성립했다고 보지만, 과전법이 성립하는 당시 신진사대부들의 주장, 예를 들어 사전私田 혁파, 공전公田 성립, 척불론 등등의 논리는 유학에서 잊을만 하면 나오는 이야기들이라 전혀 이것을 그 배경이나 동기로 가지고 와서는 안된다. 우리가 과전법을 보고 고민해야 할 것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고려말의 사전을 어떻게 개혁했는가 하는 그 개혁정신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백년전에 관짝에 넣어 못질까지 해버린 공전제가 느닷없이 왜 다시 부활하여 사전을 몽땅 태워버리고 조선땅에 다시 성립했는가, 과전법 부활의 미스테리를 고민해야 옳다. 과전법은 연구의 포커스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과전법은 혁명이 .. 2024. 5. 7.
미군이 해체한 일본의 지주-소작제 우리는 식민지 조선의 전근대적 지주-소작제가 미군정-이승만 정권 당시의 토지개혁으로 비로소 종식되었다고 본다. 이 사실 자체는 부정할 생각이 없다. 남한의 경우 이 토지개혁으로 사실상 그 후의 발전과 도약의 기틀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남한에서 토지개혁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 미군정이 일본에서 똑같은 토지개혁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미군정은 일본 전국의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유상 매입하여 이를 일본 내 소작인들에게 유상으로 분배하여 오랫동안 자행된 일본의 소작농 관행에 사실상의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은 20세기 전반 제국주의를 경과하는 동안에도 조선과 다름없이 전근대적인 토지 소유구조-지주와 소작인 관계가 전국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2024. 5. 7.
땅만 나눠주면 근대화인가 경자유전耕者有田[Land to the Tiller] 사전私田 혁파 장원폐지령 여전제閭田制 한전제限田論制 균전론均田論 심지어는 반전수수제班田収授制에 율령제 전시과田柴科 과전법科田法에 이르기까지 이 뒤에 깔린 생각은 모두 한 가지로 고대의 공전제公田制로 돌아가지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러한 사상은 한국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일본 중국 모두 있었고 실제로 이것이 구현된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중세 이후 이 시스템은 붕괴했고 한국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도 이 제도가 부활한 적이 없다. 실학의 소위 개혁론은 이러한 공전제 사상의 기초 위에 있다. 실학자들 주장대로 사전을 부정하고 땅을 나눠준다 해도 그것 자체가 근대화의 시작이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실학의 개혁론을 긍정하고 근대화의 단초로 보는 것은 우리사회가 ..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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