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378 2018년 중국 심포지움, 지금은 세계를 씹어먹을 중국의 젊은 유전학도들 2018년 느닷없이 날라온 초청 메일 하나에 중국 국립 유전자 은행이라는 데서 화석 및 고대 DNA 심포지움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난 처음에는 스팸메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찬찬히 읽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심포지움 내용을 보니 필자를 정확히 알고 연자로 초청한 것이라 이건 그런 스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궁금해서 그 당시 필자가 상당히 일정이 많았는데 그날 발표하고 다음날 귀국 할 요량으로 심천으로 향했다. 심천 도심에서도 꽤 벗어난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기가 중국 국립 유전자 은행이라는 데였다. 당시에 심포지움 내역을 보면 이렇다. 아래 연자를 보면 중국은 그렇다 쳐도 당시로서 고대 DNA를 하는 연구자 중 상당히 거물급을 많이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뭐 필자는 중국을 .. 2025. 9. 21. 사나흘 밤 샐 자신 없으면 연구 하지 마라 필자도 한참 때는 밤 새면서 연구한 사람이다. 실험 결과를 보려고 집에도 안 갔다. 학교 소파에서 자면서 실험을 철야로 돌린 사람이다. 필자는 나이 50대 초반까지도 밤 새는 건 자신이 있었다. 이제는 택도 없다. 철야가 문제가 아니라 시도때도 없이 존다. 수시로 졸지 않으면 논문을 쓸 수가 없다. 졸지 않고 논문 작업을 하면 머리가 혼몽해서 반쯤 자고 있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 연구란 건 젊은이 영역이다. 밤 샐 자신 없으면 연구한다고 아직도 공부하고 있다고 성언하지 말라. 그런 불퇴전의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아무것도 없는 곳에 빌딩도 생기고 국내 논문도 간신히 내는 곳에서 사이언스 네이쳐 논문 출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석학? 대가? 틈만 나면 조는 사람들이 무슨 석학이고 대가가 있겠는가. .. 2025. 9. 21. [연구소식] 새 논문: 조선과 일본의 매독 ajp2025.7.02_advance publication.pdf drive.google.com필자의 일본어 논문이 새로 출판되었다. 위는 그 링크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조선후기=일본의 에도시대에 매독 발생은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많았는데이는 후자의 경우 유곽과 장거리 여행 등 화폐경제가 발달했던 일종의 부작용으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자주, 항상 했던 이야기라 새로울 것은 없는데, 다만 연구의 대상을 일본의 "도카이도쥬 히자쿠리게"그리고 우리의 "부북일기"로 하였다. 공동연구자는 일본 가나자와대의 후지타 교수다. 寄書: 『東海道中膝栗毛』と『赴北日記』にみる街道と感染症拡散の一考察 A review of roads and the dissemination of infectious diseases as.. 2025. 9. 19. 1938년까지도 신분이 불안정했던 고보 재학생 1923년에 제2차 조선교육령이 발표된 후 신교육령에 따라 조선의 고등보통학교 졸업생은상급학교 진학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혼란이 야기되었다. 사실 조선의 고등보통학교란일본의 고등소학교에 해당하는 학교 였는데이는 대학진학을 할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다. 이 시기 일본의 교육제도를 보면 아래 표와 같다. 위 표를 보면 고등소학교가 바로 우리의 고등보통학교에 해당하는 것인데, 수업 연한으로 보면 우리는 5년으로 되어 있어 일본의 고등여학교와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등소학교가 됐건, 아니면 고등여학교가 되었건 일본의 경우 이쪽 길을 타게 되면 대학으로는 가지 못한다. 대학을 가려면 무조건 중학교를 나와야 하는데, 이 시기 조선인들은 중학교 진학자가 거의 없었고 대개 일본인들이 중학교, 조선인들은 고등보통학.. 2025. 9. 13. 1920년대의 영화관 1920년대에는 영화관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위 광고는 1923년 10월자 신문에 실린 조선극장과 단성사의 광고로활동사진을 상영한다는 광고다. 활동사진 내역을 보면, 이때는 아직 조선인의 손으로 영화가 제작되기 전이라 (나운규의 아리랑은 1926년)대부분이 미국 영화였다. 예를 들어 위에 단성사에서 상영한다는 "독선풍"은 무슨 무협지 같지만 사실 서부극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관이라 해도 쑈를 겸한 극장이 있어 위 광고 오른편 조선극장에는활동사진 상영과 함께 권번 기생들이 나와 노래도 부른 모양이다. 연예인의 쑈와 영화를 함께 상영했으니 꽤 재미있었을 것 같다. 참고로 이 당시 영화표 값은 얼마나 했을까? 조선의 당시 표값은 알 수가 없지만 미국은 1922-1923년 당시 영화표 값이 7센트 정.. 2025. 9. 13. 도전의 시대 1920년대... 말로리와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 등정은 힐라리와 텐징의 1953년 초등이 가장 유명하지만, 사실 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에 대한 등정 시도는1920년대에 이미 본격화했다. 20년대 산악 등정의 대표 주자 격이었던 말로리는 1920년대 영국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이끌었다. 1921년, 1922년, 1924년 세 번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했는데모두 실패하고 마지막 원정인 1924년 조난하여 에베레스트에서 사망하였다. 말로리가 죽기 전 에베레스트 등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등정하고 하산 길에 조난했다는 주장도 있고, 등정에 실패하고 조난했다는 설도 있다. 그의 시신은 2007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시신이 발견 된 후에도 그의 등정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 2025. 9. 13. 이전 1 ··· 4 5 6 7 8 9 10 ··· 6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