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378 코리아배의 전신 전조선축구대회 (1922년) 이 해에는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가 열렸다. 이 전조선축구대회는 요즘 한국의 FA컵인 코리아컵의 전신이다. 이 대회는 1940년까지 계속 개최되었는데, 1940년에 조선팀도 천황배 참가를 종용하면서 이 대회가 없어졌다. 해방 이후에 부활하여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되었다가 요즘은 코리아컵이 되었다. 이 축구대회가 열린 곳이 경성중학교운동장으로 되어있는데여기는 일본인 학교로, 조선인들이 주로 다니던 고등보통학교가 아니라 중학교였다. 따라서 여기는 졸업하면 대학예과나 고등학교 진학이 되는 정규학교였다. 이 경성중학교는 1937년기존의 고등보통학교를 모두 중학교로 전환하면서 조선인이 다니던 경성고등보통학교와 이름이 같은 통에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조선인 학교인 경성고보는 2개가 있었다. 경성제일고보, 그리고 경성.. 2025. 9. 12. [연구소식] 청주박물관 도록에 짧은 기고문 하나 [필자 주] 이전에 한번 포스팅 했었는데 당시는 특별전이 개막되지 않아 세세한 내역은 쓰지 않았다. 이제 특별전이 개막했으므로 조금 더 보충해 글을 남겨 둔다. 9월에 국립박물관 중 한 곳에서 새로 열리는 특별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 도록에짧은 컬럼 글을 하나 기고하였다. 일본 에도시대 콜레라에 대해서다. 필자의 연구 주제가 지금 크게 질병사에 대한 인문학적 검토로 방향을 돌린 바 최근의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박물관 측에 감사드린다. 2025. 9. 11. 독립운동의 가장 전형적 시대: 1920년대 우리가 독립운동 하면 생각하는 만주의 무장독립운동, 국내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스트라이크, 해외의 많은 독립운동지사, 이러한 이미지는 사실 일제강점기를 보면1920년대에 가장 가깝다. 1930년대가 되면 상황이 많이 바뀌어 우리가 아는 것과는 좀 달라지게 된다. 1920년대 사회면은 독립운동 기사의 연속이다. 2025. 9. 11. 100년 전 마포 공덕동에 나타났다는 늑대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인 1922년 1월. 지금의 마포 공덕동에는 늑대가 나타났다. 나타난 늑대를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하고 네 명이 합세해서 그 늑대를 때려잡았다고. 옛날 발해 사람 셋이면 호랑이도 때려 잡는다고 했다는데, 늑대 한 마리를 조선사람 넷이면 때려잡았었나 보다. 이 당시 늑대는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 [편집자주] *** 이 문제는 편집자 아드님한테 여쭈어 봐야겠다.이빨 빠진 호랑이에 대해서도 나는 모르는 이야기를 하시던데...그가 이르기를 호랑이가 이빨이 빠지면 마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손 쉬운 사냥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진짜 무서운 호랑이가 이빨 빠진 호랑이다. 저 늑대님 이빨 빠지셨나 보다. 네 사람이 때려잡았다니. 사람도 마찬가지다. 늦바람이 무서.. 2025. 9. 10. 애초에 초점이 엇나간 자본주의 맹아론 근대화의 맹아, 자본주의 맹아론은 애초에 촛점을 잘못 맞추었으니 17세기의 변화는 필자가 보기엔 모두 근거가 없다. 근대로의 변화의 시작은 18세기 중반부터 찾아야 하며19세기 넘어 본격화하기 시작했지만나라 행정이 워낙 막장이라 그 흐름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17세기는 아직 중세적 노비사역의 농장 경영이 절정기에 달해 있던 때이다. 이런 시대에 지주 전호제와 자본주의적 맹아를 찾는 것 자체가 잘못이고, 18세기도 전반기는 근대화의 징후가 없다고 본다. 18세기 중반부터 시작, 19세기 넘어가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변화가 가속이 붙었는데, 지금 우리의 시각은 17-18세기에 근대적 맹아19세기에 막장 사회와 제국주의 간섭, 식민지화 이렇게 보니 찾는 데마다 아무 것도 안 나오는 것이다. 애초에 .. 2025. 9. 9. 식민지시대만큼 가파른 18-19세기 변화 속도 흔히 식근론[식민지근대화론]의 논쟁 중에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 일제시대의 발전속도를 둘러싼 이야기를 보는데,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만이 아니라18-19세기 때도 변화 속도가 빨랐다. 그 이전 17세기 이전이 너무 답답할 정도로 정체되어호적을 보면 대략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사회가 변화가 시작되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8세기 전반만 해도 동네마다 가득했던 노비가 19세기 중반, 겨우 100년 남짓에 동네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정도 신분 변화 속도는 필자가 보기엔 충분히 주목할 만한 것으로 18-19세기 이러한 변화 속도는 20세기까지 연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19세기를 흔히 가렴주구의 세기, 18세기 영정조 시대를 무너뜨린 막장의 세기로만 보기 때문에이 시기가 가진 역사적 의미.. 2025. 9. 9. 이전 1 ··· 5 6 7 8 9 10 11 ··· 6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