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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15

현대사는 왜 과거를 역규정하는가 현대사가 과거를 역규정하는 예를 써보면-. 한 40년 전, 80년대 때만 해도 한국사와 일본사 연구에서 한국의 식민사관 극복은 솔직히 백약이 무효였다. 왜냐. 한국이 개발도상국, 일본이 선진국으로 남아 있는 한 "뭔가 시원찮았으니까 그 모양이지"라는 결론을 회피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위로는 고조선 부터 아래로는 구한말까지, 한국사는 도매금으로 전부 매도되었고, 반대로 일본은 조몽시대부터 메이지시대까지, 있었건 없었건 금박으로 전부 치장되었다는 말이다. 그만큼 사건과 사건이 연쇄적으로 꼬리를 물고 서술되는 역사에서, 현대의 위상은 중요하다. 현대가 시원치 않으면 수천년 전 역사까지도 비하하는 눈길로 보게 되는 것이 역사이다. 한국이 그때부터 40년-. 먹고 살 만한 정도를 넘어 선진국 경계를.. 2023. 9. 21.
독립군 전투의 의미 최근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규모와 전과에 대해 설왕설래 하지만, 이 전투의 전과에 대한 이견은 사실 처음 일본에서 제기된 것이 아니고 연변지역 조선족 역사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안다. 그리고 이런 이견이 제시된 연원도 꽤 길다. 상당히 오래 전에 이미 제기되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봉오동 전투의 전과인 일본군 전사자가 한국측 주장에 의하면 157명, 일본측 주장으로는 1명, 그리고 청산리 전투의 경우 한국측 주장은 1200명, 일본측 주장으로는 11명의 일본군 전사자를 냈다고 하여 그 차이가 무척 큰데, 필자의 생각을 써 보면 사실 이 두 전투의 의미는 일본군이 몇 명 죽었느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보급도 없고 현지조달로 보급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 부대는 정규부대라기 보다 유격전을 펼칠 수 .. 2023. 9. 21.
진정한 식민사학 극복은? 필자가 학생 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소위 "식민사학의 극복"이라는 것이 굉장한 화두였다. "임나일본부", "한사군", "고조선", "광개토왕비", 그리고 "조선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극복의 대상이었고 실제로 연구 논문들도 그런 방향으로 집필되었고, 신문은 항상 "식민사학이 극복되는 대단한 발견이 있었다"라던가, "일제식민사학은 해방이후 노력으로 극복되었다"던가 하는 기사가 끝도 없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의 식민사관을 규정하는 요소: 정체성, 타율성, 당파성 같은 것들은 역사학 연구에 의해 극복된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발전이 선진국까지 이어지게 되면서 모두 해결되어 버렸다. 경제적으로 성취하고, 문화적으로 존중받는 나라의 역사를 정체성, 타율성, 당파성이라.. 2023. 9. 20.
독립군 광복군은 대체 규모가 얼마였을까 독립군이라고 하면 뭐 꼭 우파 독립군만 지칭하는 것은 아닐 테고, 좌파계열 독립군도 해방 이전 활동했으니 이 부분까지 모두 포괄해 이야기 해 본다면, 이들 병력은 대략 어느 정도 되었을까? 독립군에 대한 기술을 보면 몇 백 명 정도 수준을 적은 경우도 있지만 수천명 단위까지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모두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인지 난감할 때가 많다. 전쟁과 유격전이라는 것이 어차피 자기측에 유리한 선전전은 기본 장착이라, 그 당시 이야기나 회고라고 해서 병력과 전과에 대한 기술이 백프로 맞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해서다. 필자도 무슨 대단한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정은 자유롭게 해 볼 수 있다면, 필자는 일단 지속적 보급이 되는 상황이었는지를 본다. 예를 들어 만주-. 이 지역은 30년대 이.. 2023. 9. 20.
일제시대말: 학병이 일본군 소위 되기 필자 또래는 아마 대학 때 "문무대"와 "전방입소"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대학 1학년 "문무대", 대학 2학년때 "전방입소"를 해서 단기간 군사훈련을 받은 것으로, 뭐 일차적인 목적은 당시 대학생들이 하도 데모를 많이 하다 보니 잡아다가 조국의 분단현실을 체험하게 해라~ 라는 당시 군사정권의 발상에서 나온 과정이었는데, 필자 기억으로는 학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문무대를 가건 전방입소를 하건 그것 때문에 하던 데모를 안할 리는 없고, 그건 그거대로, 이건 이거대로 그랬다. 일제시대 말. 스스로 원해서 육사나 만군군관학교에 진학한 경우를 빼면, 학병장교가 남게 되는데, 당시 학병장교라는 건 요즘으로 치면 딱 학군사관 ROTC 정도 된다. 전문학교 재학 이상의 고등교육자 중에서 선발하여 단기간.. 2023. 9. 20.
고보 졸업 후 일본 대학으로 직행한 사람들 언젠가도 쓴거 같지만, 일제시대, 고보졸업후 일본대학에 진학했다고 프로필이 나오는 경우는, 대개 그 대학의 예과 아니면 전문부에 해당한다. 이건 대학과정이 아니다. 대학 예과나 전문부는 당시 조선에 있었던 연희전문, 보성전문 등과 같은 전문학교, 즉 고등학교 과정이다. 이런 전문학교가 대학 부설로 있게 되면 그게 예과 혹은 전문부가 된다. 원래 전문부라는 건 전문학교였던 학교가 대학으로 승격하면 기존의 전문학교 졸업생이 졸업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였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짭잘하다는 것을 눈치챈 사립대학들은 전문부를 그냥 정식과정으로 대학에 남겨버렸다. 와세다, 메이지, 주오, 게이오 모두 전문과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일제시대 명사들 프로필에서, 모모 고보 졸업 후 일본 대학 졸업. 이렇게 나..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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