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84 유해봉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5302156 '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유해 봉환3·1운동 가담후 임정서 활동 독일 망명후 자전소설 출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로 유명한 고(故) 이의경 애국지사(필명 이미륵·1899~1950)의 유해 봉환이 추진n.news.naver.com 유해봉환. 나라가 없던 시대에 공훈이 있는 분들이 유언으로 남겼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가 나서서 유해 봉환을 추진하는 것은 한번쯤 이것이 타당한 일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을 사랑하는 것과 마지막 안식처를 살던 곳에 정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오랫동안 망명생활 중이라면 제2의 고향이라는 곳에 묻히길 선호했을 수도 있고, 또 사.. 2024. 5. 12. 5소경이 필요한 이유 통일신라시대 역사 공부를 하면 항상 나오는 것이 9주 5소경이다. 그런데 행정기관으로서 9주에는 주도라 할 중심지가 다 있다. 5소경은 9주 외에 따로 설치된 것이다. 왜 따로 설치했을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에도시대 일본의 지도다. 막부의 비공식 적대세력이라 할 도자마 다이묘들의 사이에 막부령과 신판, 후다이 다이묘의 땅을 박아 넣은 것이 보이는가? 저것은 일부러 저렇게 한 것이다. 주변의 도자마 다이묘를 감시하기 위해서. 다시 신라의 9주 5소경을 보자. 5소경을 왜 저렇게 박아 넣었는지 이유가 보이는가? 5소경은 주변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통일신라판 "막부령, 신판다이묘, 후다이다이묘"나 다름없다. 그래서 5소경에는 신라 왕경처럼 6부를 설치하고 왕경의 사람들을 이주시킨 것이다. 5소경은 신라의.. 2024. 5. 11. 도자마 다이묘[外様大名]와 후삼국 일본 에도시대에는 전국 다이묘大名를 셋으로 나누었는데, 도자마外様[외양] 신판親藩[친번] 후다이譜代[보대] 다이묘다. 이 중 신판 다이묘는 도쿠가와 집안 인척들이며 후다이 다이묘는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 이전에 이미 도쿠가와 집안에 종사하던 집안 후예들이며 도자마 다이묘는 세키가라라 이후에 도쿠가와 지배하에 들어온 집안들이었다. 도자마 다이묘라고 하지만 그 사정도 천차만별이라. 사쓰마와 조슈는 세키가하라 전쟁 때 도쿠가와 집안에 적극 협력하지 않아 완전히 눈밖에 난 집안으로 서쪽 끝에 말그대로 쳐박아 둔 상태였다. 이 때문에 에도시대 내내 도쿠가와의 중심지라 할 관동과 관서 일대에는 막부령과 신판, 후다이 다이묘가 배치되며 그 바깥쪽에 도자마 다이묘가 둘러싼 모양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도자마 다이묘가 집중.. 2024. 5. 11. 동전 품귀 전황錢荒은 조선시대에만 있었을까 전통시대 한국사는 구리가 없어 고민을 안 해 본 적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구리가 부족해 화폐량이 절대 모자라경제가 제대로 안 돌아갈 판이었다. 조선 선비 중에는 심지어 돈을 쓰지 말자고 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이를 전황錢荒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황은 조선시대에만 있었을까. 예를 들어 청동기시대는 어떨까. 전황이라는 말을 동전 부족이라 하다 보니 전황이지, 사실 구리 부족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청동기시대에는 구리 부족에 시달린 적이 없을까? 있었을 것이다. 한국사에서 청동검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많은 돌칼들은 이를 웅변한다. 청동으로 위세품 수요를 다 채우지 못하다 보니 돌까지 동원된 것이라 필자는 본다. 그런데-. 그러고도 모자랐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 .. 2024. 5. 10. 개 식육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는가 개 식육은 사실 인류 보편적 식습관은 아니다. 개 사육이 시작된 초기 유적부터 개는 음식으로 섭취한 흔적이 많지 않다. 오히려 선사시대부터 사람과 함께 묻히거나 별도의 구역에 제대로 매장된 경우가 많아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좀 특이하게 대접한 측면이 있다. 우리나 일본의 경우에도 농사가 제대로 정착하기 이전부터 개를 키웠는데 초창기의 개는 먹기 위해 키운 것이 아닌 것 같은 징후가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개 식육의 전통이 시작된 것은 농경이 본격화한 이후로 일본은 야요이시대 이후 개 식육의 징후가 매우 뚜렷해진다. 따지고 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농사가 모두 중국의 영향에서 시작된 것이 많다는 점을 생각할 때, 개 식육은 오히려 중원 쪽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잘 알다시피 초한지 번쾌는.. 2024. 5. 8. 돼지 사육은 중국 역사의 자랑 고대문명에 있어 농작물이나 가축을 세계 최초로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재미있지만 민족주의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긍지를 주는 모양으로, 이런 경향은 일본에서도 보여서 조몽시대에 이미 개는 물론 돼지를 키웠다던가 팥을 재배하고 있었다던가 하는 류의 연구를 심심찮게 본다. 일본의 경우에는 그래 봐야 농경의 수준이 낮아 그러려니 하는데 중국의 경우는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거의 모든 농작물과 가축의 기원을 중국땅에서 찾는 판이었다. 하지만 DNA 연구의 발전으로 농작물과 가축의 기원에 대해 점점 분명히 밝혀지고 있는 바, 소와 말은 이미 중국땅 바깥에서 그 기원을 찾고, 쌀과 닭은 양자강보다 훨신 남쪽의 동남아나 광동성 주변, 개는 시베리아 벌판, 등지로 중국 땅에서 기원을 찾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2024. 5. 7. 이전 1 ··· 171 172 173 174 175 176 177 ··· 41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