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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15

개로왕, 곤지, 무령왕 일본서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견 황당한 내용이 있다. 웅략천황 5년 (461년) 여름 4월에 백제의 가수리군(加須利君) [주] [개로왕(蓋鹵王)이다.]은 지진원(池津媛) [주] 을 불태워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적계녀랑(適稽女郞)이다.] “과거에 여인을 바쳐 채녀로 삼았다. 그런데 이미 예의를 잃어서 우리나라의 이름을 실추시켰다. 앞으로는 여인을 바치지 말라.”고 의논하였다. 이에 그 아우 군군(軍君) [주] [곤지(昆支) [주] 이다.]에게 “너는 마땅히 일본으로 가서 천황을 섬기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군군은 “왕 [주] 의 명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원컨대 왕의 부인 [주] 을 내려주신다면 명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가수리군은 임신한 부인을 군군에게 주면서 “나의 임신한 부인은 이미 산달이.. 2022. 12. 7.
전시과-과전법으로는 고려·조선 경제를 알 수 없다 전시과 과전법 체제가 당시 전국적 규모로 강고하게 시행된 국가적 경제제도라고 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에는 "토지의 사적소유가 결핍"하였고 이 때문에 20세기 전 조선의 토지제도는 일본사에서 그러한 공전제公田制가 관철되던 "헤이안시대"에 준한 것이라는 주장을 낳아 오랫동안 "한국사정체론"의 근거로 쓰였다.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쓰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간단히 쓴다. 1. 전시과 과전법 체제로는 고려 조선시대 경제사를 규명 불가능하다. 전시과 과전법 체제가 500년을 사이에 두고 거의 비슷한 모양의 토지제도가 왕조 초창기에 등장한 것은 이 제도 자체가 당시의 토지의 소유관계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전시과 과전법 체제는 간단히 말하자면 국가를 운용하는 중앙관리의 녹봉, 공신.. 2022. 12. 6.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와 여전론閭田論 앞에서 쓴 바와 같이 필자는 《논어집주論語集註》를 읽을 때 《논어고금주》를 같이 놓고 읽는 방식으로 통독한 바 있다. 《논어고금주》에는 《논어집주》의 주자朱子 주註에 없는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제목 그대로 고금주古今註, 여러 사람의 주를 다 모아 놓은 것이라 주자집주集註보다는 내용이 풍부하다. 정다산의 논어고금주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소위 말하는 한당漢唐의 주석가들이 달아 놓은 주석에는 자유로이 자신의 생각을 펴고 반박하는데 주자 주에는 거의 이설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산이 주자 주장을 논파하고 새로운 자신의 경학을 펴려고 헀다면 이를 위해 반박의 여지가 있는 주자의 주가 논어에는 수두룩하므로 여기서 주자의 주장에 거의 이설을 달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다른 경학이라는 것도 사실 비슷할 것이.. 2022. 12. 6.
다산 정약용이 구상한 여전제閭田制 아래는 국사편찬위 우리역사넷에 올라 있는 여전론閭田論에 대한 기술이다. 원문을 간략히 간추린다. 여전론은 정약용 토지개혁론 가운데 가장 먼저 마련된 것으로서,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연적인 지리와 경계를 고려하여 대략 30호 정도로 말단 행정조직인 여閭를 만들고, 여의 경계 안에 있는 토지는 여민이 공동 소유한다. 다음으로 여민은 가부장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인 여장閭長의 지휘를 받아 이 토지를 공동 경작하고, 여장은 개개인의 노동량을 장부에 기록하였다가 가을에 수확한 생산물을 한 곳에 모아 놓고 기여한 노동량에 따라 분배한다. 이때 국가에 내는 10분의 1세와 여장의 봉급을 먼저 공제한다. 여전론 특징은 한마디로 모든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만 토지의 점유권과.. 2022. 12. 5.
조선후기 실학사에 묻는다 소위 조선후기 실학파 중 중농학파 토지개혁론 중에 실제로 실현될 만한 게 뭐가 있는가? 죄다 유교 경전 정전법에 기초하여 중국의 인민공사 내지는 북한 집단농장 같은 것을 만들자는 주장 뿐인데 이것을 정말 "근대의 징후"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런 "중농학파"를 근대의 선구로 보는 사람들의 "근대화"라는 실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서 조선시대 중농학파 주장을 따라간다면 그 최종 종착역은 지금 북한 정권과 같은 사회 아니겠는가? 조선후기 실학파, 특히 중농학파는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이걸 근대의 선구라고 보는 데서 우리나라 조선 후기의 모든 역사 서술은 꼬이기 시작한다. 특히 다산의 토지개혁론은 말이 좋아 개혁이지 인민공사를 만들자는 것인데, 중국 인민공사와 .. 2022. 12. 4.
민농憫農을 외치던 그 시기: 사대부는 농사기술에 주목했어야 했다 鋤禾日當午 汗滴禾下土 誰知盤中飧 粒粒皆辛苦 김매는 날 한낮이면 땀방울 벼포기 적시네 뉘 알리 그릇 속 밥이 알알이 모두 피땀임을 당시唐詩에서 유명한 이신李紳(772~846)의 민농憫農이다. 농민을 측은히 여긴다는 뜻이다. 필자는 당대 이후 사대부들의 농부들에 대한 측은한 감정, 이들에게 먹고 살 길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반박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조선후기 문제는 저런 민농시가 아니다. 정말 해결해야 할 부분 중에 당시 낙후한 우리 농업 기술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송대 사대부들도 그렇고, 영국 농업혁명기의 gentry도 그들이 살던 시대에 농업기술을 개발하고 혁신한 주역들은 바로 당대 지식인이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후.. 202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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