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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15

조선시대 농민의 눈물이 만든 보 가끔 이 블로그 김단장께서 쓰신 글을 보면 흡사 조선시대 문사가 재림하여 쓴 거 같은 생생한 내용을 보는데 바로 전 포스팅한 글이 그렇다. 김단장 선친께서 농사 짓는데 고생하신데 관해 보에 대해서 쓰신 바 이것은 조선시대 전공자들이 현재까지 밝혀낸 바와 정확히 일치하는 이야기다. 최근 조선시대사 연구자들이 밝혀낸 바는 필자가 아는 한 다음과 같다. 1. 우리나라는 모내기가 쉽게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모내기만 할만하면 봄 가뭄이 꼭 드는지라 모내기 한다고 하다가는 잘못하다가 한 해 농사 다 망칠 가능성이 높았다. 이 때문에 모내기를 하면 노동력이 절약되고 수확이 올라가는 그 장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멀쩡히 잘 도입되던 모내기가 우리나라에서는 일종의 도박처럼 취급되었다. 모내기에 성.. 2022. 12. 4.
일본 성리학 도입시기에 대한 논의 일본사를 보다 보면 일본에 성리학 도입시기에 대해 남북조시대를 지목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고다이고천황과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사상이 성리학의 정통론에 입각하고 있는 바, 남북조시대의 남조정통론이 성리학의 영향 하에 성공했다는 시각이다. 이를 이유로 일본의 성리학 도입시기는 남북조시대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에 대해서 한마디로 평하자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성리학이 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정통론은 성리학의 아주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주장이며 남북조시대의 근왕론과 같은것은 굳이 성리학에 그 연원을 댈 필요도 없다. 성리학 성립 이전에 이미 근왕론은 유교에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에도막부가 성립될때까지 성리학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대해 전혀 종잡지 못하고 있었다고 이.. 2022. 12. 3.
중국: 민물생선회에 대하여 민물생선회는 흡충류 기생충 감염의 중요한 원인이다. 생선회 하면 일본을 떠올리지만 사실 한국과 일본 모두 생선회 전통은 있었다. 그것도 바다생선이 아니라 민물생선회-. 한국의 경우, 일찌기 기호철 선생 등과 함께 우리나라 민물생선회 감염의 기전을 역사문헌에서 밝혀 대한의사협회지에 출판한 바 있었다. 그 논문은 아래 링크에 있다. https://synapse.koreamed.org/upload/synapsedata/pdfdata/0119jkma/jkma-57-866.pdf 오늘 당시삼백수에서 왕유의 시를 보다가 중국도 같은 민물생선회 섭취에 관련된 구절을 보아 여기 써 둔다. 洛陽女兒行 王維 洛陽女兒對門居,纔可容顏十五餘 良人玉勒乘驄馬,侍女金盤鱠鯉魚 畫閣朱樓盡相望,紅桃綠柳垂簷向 羅幃送上七香車,寶扇迎歸九華帳 .. 2022. 12. 2.
김유신의 천관녀는 시라뵤시? 앞에서 게이샤와 시라뵤시에 대해 써 보았다. 어쨌건 게이샤와 시라뵤시는 거의 비슷한 성격의 여성들이지만 유곽이 만들어진 후에 활동했는가 이전에 활동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썼다. 여기서 떠오르는 생각이 김유신과 천관녀이다. 김유신의 천관녀에 대해서는 기생이다, 무녀다, 倡家이다 등등 각종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파한집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金庾信鷄林人 事業赫赫布在國史中 爲兒時母夫人日加嚴訓 不妄交遊 一日偶宿女隸家 其母面數之曰我已老 日夜望汝成長 立功名爲君親榮 今乃爾與屠沽小兒 遊戱淫 房酒肆耶 號泣不已 卽於母前自誓不復過其門 一日被酒還家 馬遵舊路 誤至倡家 且欣且怨 垂泣出迎 公旣悟 斬所乘馬棄鞍而返 女作怨詞一曲傳之 東都有天官寺 卽其家也 李相國公升嘗赴東都 管記作詩云 寺號天官昔有緣 忽聞經始一悽然 多情公子遊花下 .. 2022. 12. 1.
시라뵤시[白拍子], 게이샤[芸者]와 같은 듯 다른 듯한 종합엔터테이너 한국에서는 일본의 게이샤가 유명하지만 헤이안-남북조시대까지 게이샤와 유사한 역할을 하던 여성을 "시라뵤시"라고 따로 부른다. 게이샤와 시라뵤시 항목을 찾아보면 잡다하게 써 놨는데 사실상 당시의 연예인 역할을 겸한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게이샤가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것처럼 시라뵤시도 마찬가지였고, 예능에 능하여 각종 행사 주인공이기도 했다고 한다. 시라뵤시와 게이샤는 차이가 그렇다면 뭘까? 우선 시라뵤시가 게이샤보다 시대가 앞선다. 위에 쓴 것처럼 헤이안 시대에 발생해서 대략 남북조시대까지 이어온 것으로 되어 있다. 게이샤는 그 원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결국 전국시대 말, 유곽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유곽이 성립하기 이전의 기생들은 시라뵤시라고 부르고, 유곽 성립 후의 기.. 2022. 12. 1.
한국사를 볼 때.... 왜 이렇게 뭐가 없냐, 우리 조상들은 다 놀았나 싶을 때는 필자 생각으로는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될 거라고 본다. 첫째는 외침의 위협. 이 외침에 대한 위협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로 한국사는 수천년 역사 동안 어떻게 하면 외세를 막을수 있을까 그 고민으로 밤낮을 지샜다고 해도 될 것이다. 조선시대도 마치 외침의 위협에 눈과 귀를 막고 무기력하게 대응한 것 같지만 조선시대 내내 외침 방어에서 손을 넣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이것은 국조보감 등 조선시대 통사를 보면 간단히 알 수 있는 일인데, 조선시대에 경복궁 하나 제때 중건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헐렁하게 걷은 쥐꼬리 만한 세입을 지출해야 할 부분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국방비는 가장 부담이 되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영정조 때 국방비가 전체 ..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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