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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291

딸을 과부로 만든 김유신 (2) 약발은 셀수록 좋다. 이참에 반드시 백제는 인류 역사에서 종적을 말살하고 말리라고 결심은 굳힌 신라는 5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해 사비성을 향해 나아갔지만, 황산벌에서 계백에 이끄는 5천 군대에 발목이 잡혔다. 네 번 싸워 네 번을 진 신라군 수뇌부에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으니, 분기탱천을 유발하는 전술을 강구했다. 이에서 66세에 이른 노회한 총사령관 김유신이 택한 방법은 그 분기탱천이 최대한 ‘약발’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아주 괜찮은 놈을 희생시킨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 전쟁에 그의 아들들은 참전하지 못한 듯하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때까지 성년에 이른 그의 유일한 아들은 삼광三光이었다. 하지만 삼광은 이 무렵 당군에 가담해 그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 듯하다. 황산벌 전투에서 위기를 타개하고자 왜 김.. 2023. 12. 27.
딸을 과부로 만든 김유신(1) 풍월주 김흠순 삼국사기 권제47 열전 제7이 내세운 인물 중 김영윤金令胤 전기는 실은 김영윤을 중심으로 그의 아버지 김반굴金盤屈, 그의 할아버지 김흠춘金欽春에 이르는 3대에 걸친 가문 전기물이다. 물론 주인공은 김영윤인 까닭에 그의 아버지와 조부는 간략히 생애가 언급된다. 하지만 비록 짧은 분량에 지나지 않으나, 이를 통해 반굴과 흠춘에 대한 생애의 몇 가지 중요한 단락을 우리는 보충한다. 먼저 김영윤을 본격 다루기에 앞서 등장하는 반굴과 흠춘은 행적이 다음과 같다. “김영윤은 사량沙梁 사람으로 급찬 반굴盤屈의 아들이다. 할아버지 각간 흠춘欽春[혹은 흠순欽純이라고도 한다.]은 진평왕眞平王 때 화랑이 되었는데 인덕이 깊고 신의가 두터워 뭇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장성하자 문무대왕이 발탁하여 재상으로 삼았는데, 임금을 충.. 2023. 12. 27.
묵자가 필요한 시간, 그 짙은 아쉬움 한 가지 어제 기차깐에서 꺼내 읽기 시작해 절반 가량 독파했다. 제목이 원서랑 차이가 있는데 중의성을 유발한다. 묵자가 생소한 사람들은 The time or period that mukja needs 라 생각하겠지만 The time when we need mukja 다. 묵자 개설서로는 훌륭하며 묵자 사상 요체를 잘 정리했다. 나로선 아쉬운 대목은 묵자야말로 동아시아 최초의 교단 창설자라는 것이며 아울러 그 교의와 교단 체계는 고스란히 도교로 계승되었단 것이거나 이 부분이 누락됐단 사실이다. 묵자교단은 놀랍도록 도교와 흡사하다. 그 대표격이 하우에 대한 짙은 숭배다. 고대 전설시대 제왕 중 유독 우임금을 숭배한다. 묵자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오두미도 태평도로 계승되었다. 중국이 끊임없이 자기변신을 꾀한 힘은 묵자.. 2023. 12. 27.
[거란의 치맛바람] (3) 성종의 두 황후, 죽쑤어 개준 소보살가蕭菩薩哥와 그를 죽인 검은 황후 소누근蕭耨斤(1) 요나라 태평성대를 열었다는 제6대 황제 성종聖宗(재위 982~1031)한테는 50년에 달하는 집권 기간 내내 황후는 오직 한 명이었으니, 인덕황후仁德皇后 소씨蕭氏가 그라, 어릴 적 이름은 보살가菩薩哥였다. 시어머니로 바로 앞선 황제 경종景宗의 비 예지황후睿智皇后 동생인 소외인蕭隗因의 딸이다. 시어머니한테는 며느리이기도 하지만, 조카딸이었다. 한데 역사에서는 성종의 황후를 두 명이라 한다. 재위 기간 내내 황후가 쫓겨난 적도 없고, 남편이 죽을 때도 황후였는데, 어찌하여 둘이 되는가? 바로 이에서 피비린내나는 황실 암투를 조우한다. 보통 이런 황실 쟁투는 후사를 두고 발생하는데, 특히 정부인한테서 아들이 없고, 후궁한테서 태어난 아들이 보위를 이었을 때 일어나니, 성종의 경우가 딱 이랬다. 요사遼史 권63.. 2023. 12. 27.
하우夏禹, 묵자墨子, 도교道敎, 그리고 김유신金庾信 오두미도와 태평도가 대표하는 2세기 무렵 초기 도교 교단 특징 중 하나를 보면 강렬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농민 혹은 수공업자 중심 군사조직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유가가 요순을 이상적인 제왕으로 제시한 데 맞서 시종일관 하우를 그에 대항하는 성군의 이상형으로 내세운다. 왜 하우인가? 우임금의 행적 중 단연 압권은 치수다. 그는 범람하는 황하와 쟁투했다. 왕위에 있은 8년을 오직 황하와 대전투를 벌여 마침내 승리했다. 터지는 황하를 막고자 그는 맨발로 튀어나갔다. 집엔 들러지도 않았다. 아니 들를 틈이 없었으니 얼마나 사투를 벌였는지 정갱이엔 터러기가 날 겨를이 없었다. 사서엔 정갱이라 했지만 그는 겨털도 없었고 거시기 털도 없었다. 이 눈물겨운 투쟁을 오직 백성을 위해 벌였다. 이런 그를 묵자 교단이 추앙.. 2023. 12. 27.
[거란의 치맛바람] (2) 북송을 직접 정벌한 경종비 소작蕭綽 요遼나라 제5대 황제 경종景宗 야율명의耶律明扆(재위 969~982) 정비 예지황후睿智皇后는 거란 모든 왕비족이 그렇듯이 소씨蕭氏이며 이름은 작綽, 어릴 때는 연연燕燕이라 일컬었으니, 북부재상北府宰相 소사온蕭思溫의 딸이다. 야율명의가 황제가 되면서 귀비貴妃가 되었다가 황후로 책봉되어 훗날의 황제 성종聖宗을 낳는다. 두 모자, 곧 예지황후와 성종을 우리가 특히 더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고려거란전쟁을 도발한 직접 당사자들인 까닭이다. 남편 경종이 죽자 아들 야율문수노耶律文殊奴(972~1031)가 즉위하니 이가 훗날 성종聖宗이라 일컫는 거란 제6대 황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문수노는 982년 즉위 당시 12살 꼬맹이였다. 윤석열 나이로는 두 살 깎여 만 10살에 지나지 않았다. 동아시아 전통 왕조 시대는 ..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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