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2370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 (5) 만성한묘滿城漢墓, 산을 뚫어 만든 저승의 지하궁전(1) 내가 만성한묘를 찾기는 2010년 10월 10일이다. 고고학계 인사 3명과 북경을 찾은 나는 그곳 북경 수도박물관에서 막바지에 이른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성립 60주년 성과 특별전을 관람하다가 모형으로 전시한 만성한묘滿城漢墓를 보고는 하도 독특한 데다 마침 북경에서 그리 멀지 않아 현장을 찾기로 한 것이다. 일행 중에 이곳을 다녀온 이가 있기는 했지만 그쪽 지리에 밝은 것도 아니어서 일반 관광객을 상대하며 생계를 꾸리는 조선족 운전사가 만성한묘를 들어봤을 리 만무했다. 그리하여 지도에만 의지해 만성한묘를 찾아나섰다. 이렇게 해서 북경과 중국 남부 대도시들인 광주廣州와 주해珠海를 연결하는 경주고속도로京珠高速公路를 달려 만성한묘를 찾아 나섰다.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죽 남쪽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를 따라 .. 2023. 6. 16.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4) 마왕퇴에서 생각한 위만의 무덤 2006년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봉직하던 최몽룡에게는 회갑인 해였다. 그는 본교 제자도 많았지만, 고고학 전담 교수가 없는 다른 대학에서도 지도한 외곽 제자도 만만치 않았으니, 백제를 필두로 하는 역사 전문 출판사인 도서출판 주류성 사장 최병식도 그런 사람에 해당한다. 백제에 미쳐, 특히나 그 마지막 왕 의자의 신이 강림했다고 믿는 최병식은 형제들이 모두 박사학위가 있는데 장남인 자신만은 없다는 점을 못내 한스러워해 50대 늦깎기로 두 대학에 석박사로 등록해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이 과정에서 불과 5살 정도 많을 뿐인 최몽룡의 제자 그룹에 들어간다. 최몽룡이 환갑을 맞은 그해 9월, 최병식은 선생의 환갑 선물로 중국 여행을 준비한다. 기간은 대략 4박5일 정도 되었다고 기억하.. 2023. 6. 15.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3) 위만은 산중에 묻혔다 광동성 광주에서 내가 남월국을 통해 투영한 위만조선은 다음과 같다. 아니 다음과 같아야 한다. 이는 언명이다. 첫째, 완연한 중국풍이다. 둘째, 위만을 비롯한 지배층 무덤은 산중山中이다. 광주 일대에서 출현한 남월국 궁서 유지와 조타의 아들인가 손자인 2대 문제 무덤, 그리고 광명시장 지하에 출현한 수갑 유적 등을 종합하건데, 이들은 주인공이 남월국이라는 증거가 없었으면 모조리 진한대 유적 유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남월국 문화 곳곳에는 낙양과 장안 중심 중국 문화가 짙게 침투해 있었다. 만세萬歲 와당? 장안長安에 갖다 놓으면 그대로 진한대 유물이다. 곡수연曲水宴? 이게 남월국 궁서 유지 한복판에서 출현했다. 문제文帝 무덤? 전실前室 후실後室 이실耳室 갖춤 기본 구조는 동시대 중원이랑 다를 바 없.. 2023. 6. 15.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2) 상처가 된 낭비대첩 7세기 한반도는 사생결단하는 전쟁의 시대였다. 삼국이 서로, 혹은 밀착하고선 그 외부 세계까지 끌어들여 어느 하나를 종말하고자 하는 시대였으며, 그 궁극하는 귀결이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백제 함몰이 있기 전 신라는 고구려와 대판하는 전쟁에 돌입하곤 했으니, 7세기 전반기 낭비 대전娘臂大戰은 개중에서도 양국이 전력을 투입한 총력전이었다. 이 전쟁은 신라에 의한 도발이었다. 즉위 50주년을 몇 년 앞둔 건복建福 46년, 서기 629년 스산한 가을 기운이 한반도를 감돌기 시작한 그해 8월, 이 작전을 치밀하게 준비한 신라왕 김진평은 마침내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발동한다. 신라가 이 전쟁을 어찌 생각했는지는 그 화려한 수뇌부 진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총사령관에는 이찬.. 2023. 6. 15.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2) 내가 광동성으로 간 까닭 내가 처음으로 광동성 광주로 남월국 유적 답사를 가기는 2007년 무렵이 아닌가 하는데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내가 이곳을 찾은 까닭은 그 직전 요서 지역 탐방에서 감발한 바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양에서 출발해 오한기 적봉을 거쳐 산해관에 이른 이때 탐방에서 나는 말로만 듣던 진황도와 인근 수중현 일대 소위 진·한秦漢 시대 진시황·한무제 시대 행궁行宮 유지를 둘러봤다. 금산취며 흑산두 일대에서 중국 고고학이 찾았다는 이들 행궁 유적을 보니 내가 놀란 점은 첫째, 그들 행궁이 조영·운영된 시기가 위만조선과 거의 겹치고, 둘째 그 위상이 행궁이라는 말에 어울리게끔 높았으며, 셋째 유구·유적이 소위 현지의 토속미를 풍기기는 했지만 완연한 진·한의 소위 중국풍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넷째.. 2023. 6. 14. 친일 논쟁이 은폐한 언어의 마술사 이인직(2) ### 기다리는 것이 있으면 세월이 더딘 듯하나 무심중에 지내면 꿈결 같은 것은 세월이라. 철환보다 빨리가는 속력으로 도르래 돌아가듯 빙빙 도는 지구는 백여 도 자전하는 동안에 적설이 길길이 쌓였던 산과 들에 비단을 깔아놓은듯이 푸른풀이 우거지고 남산 밑 도동 근처는 복사꽃 천지더라. ### 칼끝은 춘천집의 목에 꽂히고 칼자르는 구레나룻 난 놈의 손에 있는데, 그놈이 그 칼을 도로 빼어들더니 잠들어자는 어린아이를 내려놓고 머리위에서부터 내려치니 살도 연하고 뼈도 연한 세 살 먹은 어린아이라 결좋은 장작 쪼개지듯이 머리에서부터 허리까지 칼이 내려갔다. 이인직 《귀의성》 하편 *** 왜 이인직을 일러 언어의 마술사라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터 친일이라는 딱지 이젠 걷어내야 한다. 이인직을 그대로 대면할 때다. 2023. 6. 14. 이전 1 ··· 225 226 227 228 229 230 231 ··· 39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