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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283

윤치호가 말한 '친일파'와 '반일파' 1919. 3. 7(금) 갑자기 승하함으로써 이번 대소요의 실마리를 제공한 고종 황제는 예전에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 단 한마디를 사용하곤 했다. 그건 바로 ‘친일파’라는 단어였다. 조선의 일본인들이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데 편리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반일파'라는 단어다. (김상태 편역, 《윤치호일기 1916~1943 -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본 식민지시기》, 역사비평사, 2001. 2, 85쪽) (2010.03.28 21:08:46) *** 이걸 보면 작금 한국사회에 걸핏하면 통용하는 친일파는 어떤 맥락인가? 윤치호가 말한 딱 그거 아닌가? 돌이켜 보면 친일파 라는 말 만큼 누군가를 규정하는 데 편리한 말 없다. 누군가를 감옥에 쳐넣기 위한 말로 친일파 만큼 유효.. 2022. 10. 12.
한국고전번역원, 한국의 고전을 번역하는 데인가? 한국에서 고전을 번역하는 데인가? 접때 민족문화추진회를 한국고전번역원을 확대 개편하는 움직임이 일고, 그것이 실제화했을 때, 나는 내심으로는 이 한국고전번역원을 '한국의 고전' 번역원이 아니라 '한국'의 '고전번역원'으로 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자로 낙착이 되어 한국에서 발간된 한전만을 사업 대상으로 삼는 기관이 되었다. 내가 저리도 생각한 이유는 한국의 고전이라는 것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고, 그리고 실제로도 중국 고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원천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참았다. 왜인가? 전선을 단순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심각하게 '한국의 고전' 번역원을 '한국'의 '고전번역원'으로 확대개편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중국의 고전과 일본의 고전과 베트남의 고전까지도.. 2022. 10. 10.
고대가 모태신앙, 홍일식의 여정 얼마전 우연히 우리 공장 문화부가 필요한 사람 가져가라 내어놓은 데서 저 책이 처분되지 않고 뒹굴둥굴하기에 집어왔다. 출판사를 보니 고려대학교출판부가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으로 간판을 바꾼 모양이라 저는 말할 것도 없이 자회사로 독립하면서 일찌감치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인지로 갈아탄 서울대출판부 영향이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문재인정부서 문화재청장을 지낸 정재숙 씨 부군이 생평을 봉직한 데가 고려대출판부다. 물론 지금은 정년 퇴직했다. 보통 저런 회고록, 특히 대학총장 같은 교육계 인물들 회고록은 그닥 인기가 없다. 왜 그런가 곰곰 따져보면 대체로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고 시종일관 자기 업적을 과대포장 왜곡하고 선생 특유의 훈시하는 말이 난무하는 까닭이다. 저 양반 제목부터가 딱 반발사기 십상이다. 오직 고려.. 2022. 10. 9.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조선여행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조선여행 야나기 무네요시는 1916년 처음 조선을 방문한 이래 1940년까지 총 21회에 걸쳐 조선을 방문했다. - 출처 : 전시도록(2022.9.14~10.1) / (주최)일본민예관·주일한국문화원 / (후원)국외소재문화재재단·아사히신문/ (학술협력)田代裕一朗, 도쿄예술대 공예사연구실 #야나기무네요시 #柳宗悅 #日本民藝館 *** 이상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강임산 선생 글이다. 2022. 9. 25.
태종무열왕릉은 다른 데다 경주분지 기준 서쪽을 정좌定座하는 까닭에 그 이름을 선도산仙桃山이라 하니, 이는 동아시아 고대가 상상한 서쪽의 산이 곤륜산이며 그 곤륜산엔 서왕모西王母라는 여성 신이 주석하고 그에는 먹으면 장수 혹은 영원불멸을 보장한다는 선도仙桃 복숭아 산지인 까닭이다. 이미 신라 당시에 저와 같은 이름을 얻은 선도산은 그런 까닭에 서악西岳이라고도 하고 서형산西兄山과 같은 이칭이 있었으니 서왕모에 비견하는 여성으로 사소라고 하는 박혁거세 엄마가 신이 되어 주석하는 데라 생각했다. 왜 김유신 누이 보희가 하필 저 서형산에 올라 오줌을 누니 계림이 물바다가 되는 꿈을 꾸었겠는가? 서형산은 신라 건국을 모태하는 자궁子宮이라 그 자궁은 일세의 영걸을 생산하니 저 꿈에서 비롯한 삼한의 영걸이 바로 김법민이라 그가 훗날 죽어 문무.. 2022. 9. 19.
신라 가옥은 7세기까지 굴립주 건물이었다 이는 근자 간행된 신라사학회 기관지 《신라사학보》 37집에 기고한 이은석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실장의 논문 '7세기대 신라 가옥구조에 관한 고찰' 성과 결론이다. 이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저자 말마따나 이에 대한 심각한 고고학적 고민이 없거나 태부족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논문은 의의가 있다. 두번째로 굴립주堀立住 건물이었다는 결론이 미칠 파장이다. 굴립주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별도 기초 시설이나 초석 없이 그대로 나무 기둥을 박아서 만든 집을 말한다. 이런 굴립주 건물은 그 기초가 남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나 경주 분지처럼 잦은 홍수로 가옥 지대가 침수되고, 나아가 그에 따른 재건축이 빈발한 지형에서 굴립주 건물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굴립주 건물은 저런 지형에서는 기초를 남기.. 202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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