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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3046

알로타斡魯朵, 황제마다 따로 만든 거란의 궁궐 이 전통을 보노라면, 언뜻 고대 일본을 떠올린다. 이 친구들 역시 걸핏하면 그 역사성은 치지도외하고라도 새로운 천황이 즉위하면 새로운 궁궐을 만드는 일을 능사로 삼으니, 실상 그와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데가 거란이라. 이런 행적은 요사遼史 권31 지志 제1 영위지營衛志 상上에 요약 정리되었으니 이에 이르기를 앞서 본 계절별 행궁行宮 혹은 행영行營을 날발捺缽이라 부르는 데 견주어 상거하는 공간은 알로타斡魯朵라 했다 한다. 날발이건 알로타건 이건 모두 다 거란어를 단순히 음만 표기한 것일 터다. 이에 이르기를 천자天子가 즉위[踐位]하면 궁위宮衛를 두고 주현州縣을 나누며 부족部族을 가르고, 관부官府를 설치하고 호구戶口를 조사하며 병마兵馬를 갖춘다. 천자가 붕崩하면 호종扈從하던 사람과 후비后妃의 궁장宮帳은 그 .. 2024. 3. 11.
遼는 언제부터 강이 되었는가? 거란이 야율아보기 시대에 건국하고서 국호를 대요大遼라 한 것은 분명 요하遼河 혹은 요수遼水라 일컫는 강을 염두에 두었다. 이 요수는 무수한 지류를 끌어들이며 지금의 중국 동북 지역 대평원을 형성하는 젓줄이거니와, 그런 까닭에 이 강은 이 일대를 지칭하는 대명사 같은 위치를 점거한다. 이 강을 일러 遼라 하거니와, 이 요수 혹은 요하 문제는 한국고대사에서는 특히 고조선 위치 관련해서 언제나 중대한 자리를 점거하거니와 예컨대 이미 진한대에 등장하는 요동군遼東郡이며 요서군遼西郡이니 하는 군현 위치만 해도 그 절대의 준거점을 요하 혹은 요수로 잡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데 저 遼가 모름지기 특정한 강을 의미하는가? 이 의문을 아무도(혹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심각하게 묻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을 따지고자 한다. .. 2024. 3. 11.
날발捺缽, 계절별로 달리하는 거란의 황제 거둥 오래다기 보다는 질긴 역사를 자랑하다 야율아보기 시대에는 완연한 정치체로 성장함에 따라 요遼, 혹은 그네들 스스로는 대요大遼라는 왕조 명으로 칭하기도 하면서 그 자체 국가로서 혼용하지만, 거란은 이 국가 체제로 접어들어서도 그 이전 유목 특성을 버리지 않았으니, 그 유목하는 성격을 현격히 드러내는 지점이 황제들이 계절별로 보내는 지점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유목하는 족속과는 달리 정주定住하는 성향이 강한 데서는 그 군주가 상거하는 집이 있어 이를 궁宮이라 하고, 그 궁이 상거하는 집이 되며, 아주 가끔씩 출타를 하기도 하니, 이 출타를 순행巡行 혹은 순수巡狩(巡守라고도 한다)라 하거니와, 이 출타 때 이용하는 집을 걸어다니는 궁궐이라 해서 행궁行宮이라 하고, 가다가 잠시 머무는 데라 해서 행재소行在(所).. 2024. 3. 11.
간에 붙었다 쓸개 붙었다 거란을 갖고 논 서하 송과 거란을 사이에 둔 고려의 양다리 외교를 일러 실리외교라 하며 그것을 지금의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는 소리가 개소리임을 계속 주장하거니와, 그래 설사 그렇다 해도 고려는 동시대 서하에 견주면 암것도 아니어서, 서하는 거란과 송을 들었다 놨다 하며 곶감 빼먹듯 좋은 것만 다 빼먹었다. 요사遼史 권107 열전 제45가 이국외기二國外記라 해서 거란이 교유한 이웃 나라 중에서도 고려와 서하西夏 두 왕조를 특별 취급했다 함은 이미 이야기했거니와, 이 이국 열전에 드러난 서하의 쥐새끼 같은 행태를 추려본다. 애초에 서하는 宋을 섬겼으니, 그에 대한 급부로 송은 그 왕한테다가 송나라 황가 성씨인 조씨趙氏성을 하사한다. 그러다가 요나라 성종聖宗 통화通和 4년(986)이 되자 그 왕 조계천趙繼遷이 송을 배반하고 처음으.. 2024. 3. 11.
[귀주대첩 이후] (1) 파탄난 양다리 외교 대략 30년간 파국을 맞은 고려-거란 관계가 1019년 2월 귀주대첩을 고비로 일단락하면서 두 왕조는 급격히 외교관계를 회복하니 이는 곧 고려와 宋 관계의 재편을 의미하기도 했다. 거란과의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고려는 거란과의 국교 일체를 단절하고서는 일방적으로 송의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종주국을 송으로 바꾼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제 이런 임시방편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고려는 귀주대첩이 있는지 대략 1년 반 정도가 지난 현종 11년, 1021년 6월에 한조韓祚를 우두머리로 삼은 사절단을 송에 보낸다. 이 일이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는 遣韓祚如宋, 遣韓祚如宋, 謝恩, 곧 한조를 송에 보내어 사은謝恩했다 해서 대단히 무미건조하게 적혔고, 이듬해 현종 12년, 1022년 5월 병자일에는 한조가 귀국.. 2024. 3. 10.
[마질차] (7) 마질차 엄마는 김유신의 딸 김유신 자식은 삼국사가 삼국유사에 그 실체가 어느 정도 공개되지만 아들만 실명 공개했을 뿐이요 특히 전자에서는 네 딸을 두었다 했지만 그 넷은 이름도 없고 당연히 행적도 없다. 예서 드는 의문. 김유신 정도 되는 아버지 딸들이 평이한 삶을 살았겠는가? 한데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에는 그 네 딸 이름만이 아니라 그 행적 또한 비교적 소상히 보이는데 예상대로 간단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 네 딸 이름을 진광晉光 신광信光 작광酌光 선광善光이라 해서 첫 부인 령모令母. 소생이라 밝힌다. 이들은 기존에 알려진 김유신 장남 삼광三光과 더불어 모조리 光을 돌림자로 썼다. 이들과 달리 김유신이 환갑에 취한 지소공주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들은 노자의 별칭인 장이長耳만 빼고선 원술元述을 필두로 모조리 元자를 돌림으로 쓴다. .. 2024.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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