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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3227

[금관총은 자비왕릉] (번외2) 대충대충 아무렇게나 새긴 왕 이름 금관총에서 자비마립간, 곧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글자를 새긴 유물은 현재까지 3점이 알려졌으니, 모두 환두대도라 해서 큰칼 손잡이 끝장식에 저런 식으로 새김했다.개중 하나는 尒斯智王(사진)이라 새기고, 다른 하나는 이사지왕도尒斯智王刀라 해서 이사지와의 칼을 의미하는 글자를 새겼으며, 다른 한 점은 다 부러져 나가고 尒라는 한 글자만 꼴랑 남았다.흔히 좀 아는 체 하는 자들(우리는 이를 고고학도나 역사학도라 부른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같은 칼이라고 은장도 종류 작은 칼knife을 刀라 하고, 장검sword을 검劍이라 한다지만, 다 개소리라, 새겨 들을 필요 하나도 없는 헛소리 대잔치다.저 글자를 새긴 칼은 분명 장검 종류인데 刀라 했으니, 길건 짧건 지 맘대로 도라 하고 검이라 했다.그건 그렇고 내가 .. 2026. 7. 26.
[미천왕 고을불리] (3) 압록강 배로 오가며 소금장사를 하는 고구려 왕자 고구려 군주 미천왕美川王은 즉위 이전에도 그렇고 심지어 죽어서도 갖은 곤욕을 맛본 희유한 사람이다.호양왕好壤王이라고도 하는 그의 행적은 삼국사기 미천왕본기에 비교적 자세하거니와, 그것을 새삼 음미한다.생전 이름이 을불乙弗 혹은 우불憂弗이라고도 하는 그는 고구려 제13대 군주 서천왕西川王(재위 270~292) 손자다.아버지는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라, 비록 왕의 손자라 하지마는 아버지가 왕이 아님에도 왕이 되었으니 일단 이에서 권력투쟁을 의심해야 한다. 돌고한테 불운은 서천왕 맏아들이 아니라는 데서 비롯한다. 그 형이 봉상왕烽上王(재위 292~300)이라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엄마가 달랐는지 어쩐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럴 때 동생이 핍박을 받기 마련이다. 봉상왕은 의심이 많았던 듯, 그런데가 언제건 돌.. 2026. 7. 26.
왕자의 특권을 없애버린 신라의 시스템, 김유신 밑으로 기어들어간 김춘추의 아들들 신라는 여러 모로 훗날 고려 혹은 조선왕조와는 다른 시스템을 구비하는데 개중 하나가 저 왕자 시스템이다.조선왕조의 경우 익히 알려졌듯이 왕과 그 정비 사이에서 난 아들들은 대군大君이라 해서 관위 품계가 없다. 예서 무품계라는 말은 상것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신성 초월이라는 뜻이라, 품계로 따질 수가 없어 정1품 이하 그 어떤 관료들보다 상위에 위치한다.그래서 길을 가다 저런 대군을 만나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야 했다. 공주 역시 마찬가지였다.더 요상한 점은 그렇다고 후궁 자식들은 군君, 혹은 옹주 또한 무품계라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무품계 정점에는 말할 것도 없이 왕과 왕비가 위치한다. 왕이야 언터처블 넘버원이라 그렇다 치고, 그렇다고 해서 대군과 공주는 물론이고 군과 옹주까지 무.. 2026. 7. 26.
[금관총은 자비왕릉] (6) ‘신라왕은 동시에 일곱’이라는 식칼 물고 월하의 공동묘지를 나타난 국립박물관 1921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금관총 발굴 조사에서 수습한 유물 중에 그 환두대도 칼집 끝장식손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긁음 글씨가 확인됐다는 2013년 7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보도자료는 내 아무리 봐도 신라고고학도인 당시 학예연구사 김대환이 대본을 작성하고당시 결재라인을 보건대 학예연구관 홍진근, 그리고 고고역사부장 송의정, 그리고 학예실장 곽동석, 그리고 박물관장 김영나 재가를 받아 배포됐겠거니와, 이후 저 김대환이 저 금관총을 두고서 발표하는 글을 볼짝시면, 저 보도자료에서 단 한 치 어긋남이 없다. 그렇다면 저 보도자료는 무엇이 문제인가?간단히 말하건대 호도糊塗다. 나는 앞서 나 김태식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고, 아는 것만 안다하는 공자형 겸손가를 자처했거니와.. 2026. 7. 26.
[금관총은 자비왕릉] (5) ‘尒斯智王’을 들고 나온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2013년 7월 3일, 느닷없는 보도자료 하나를 언론을 통해 배포하는데 제목이 '신라 금관총 출토 大刀에서 ‘尒斯智王’ 명문 확인'이라, 담당 부서는 고고역사부.담당 부장은 홍진근, 담당 학예연구사는 김대환. 저 중에서도 퇴직하고서 이미 퇴물이 된 홍진근보다는 이 김대환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이 친구가 훗날 계속 이 문제로 걸리기 때문이며, 나아가 근자 신라 금관을 신라왕이 썼네마네 하는 논란까지 이어진다. 금관총은 경주에 있는데, 왜 국립경주박물관이 아닌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저걸 들고 나왔는가?좀 아픈 식민주의 역사가 있다. 식민지시대에 조사한 경주 자료는 당시에도 경주분관이라 해서 훗날 국립경주박물관 전신이 되는 조선총독부박물관 분소가 있기는 했지마는, 찌꺼기 .. 2026. 7. 25.
[금관총은 자비왕릉] (4) 스멀스멀 관 뚜껑 열고 기어나오는 귀신 씻나락 지금의 포항 영일 냉수리 일대 절거리라는 사람의 재산 분쟁과 관련해 당시 신라 조정에서 무슨 판결을 내렸으니 저 일곱 명은 이번 결정에 간여한 당시 신라 왕과 관료들 명단이다.이름이 나오고, 해당 인물 거주지를 밝히며, 이어 그네들 관직 품계가 무엇인지를 밝힌다.보다시피 지도로 갈문왕을 제일 웃대가리로 삼고는 그 아래로 6명이 포진하는데 관품이 6등 아간지 이하다.6등에서 9등까지가 신료 명단이다.저들을 뭉뚱거려서 영일 냉수리 신라비에서는 차칠왕등此七王等이라 했다.이 비문이 1989년인가 출현하자 명색이 한국고대사로 밥 빌어먹고 산다는 자들이 벌떼처럼 달라들어 와 신라에 왕이 일곱이나 있었네? 하고 개사기를 쳤다.나는 그때도 지금도 어찌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저들 일곱이 모두 왕으로 볼 수 있는지 알다가도.. 2026.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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