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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3160

잊힌 고대 인도 제국, 로마와 교역한 '사타바하나Satavahana 왕조' 1938년 10월, 이탈리아 고고학자 아메데오 마이우리Amedeo Maiuri는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 발굴 현장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바로 정교하게 조각한 작은 상아 여성상이었는데, 거의 확실히 인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오늘날 폼페이 락슈미Pompeii Lakshmi 또는 폼페이 야크시Pompeii Yakshi로 알려진 이 유물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만들었지만, 베수비오 화산 화산재 아래 묻혀 로마 세계 중심부까지 오게 되었다.학자들은 이 조각상이 힌두교 행운의 여신 락슈미를 묘사한 것인지, 아니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자연의 정령 야크시를 묘사한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을 벌인다.하지만 이 조각상이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고대 세계 최고의 문명 두 곳을 잇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연.. 2026. 6. 7.
광개토왕비는 왜 처절한 사료비판을 피해 갔는가? 간단하다. 그에서 민족의 영광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광개토왕비가 말하는 그 침략주의 팽창이야말로 우리가 이상이며, 우리가 꿈꾸어야 하는 주눅들고 쪽팔리기만 한 한국사 굴욕의 한 줄기 빛인 까닭이다. 봐라!저 비문이 말하는 프로파간다 얼마나 폼 나는가? 온 세상이 지꺼라는데, 그리하여 백제도 신라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한민족 철천지원수 왜국도 박살을 냈다는데, 저 언설을 어찌 포기한단 말인가? 광개토왕비가 말하는 저 역사관이 바로 환단고기의 그것이다. 저 광개토왕비가 고구려 남긴 실록이며, 또 그것이 당대에 남긴 기록인 까닭에 그 진위는 따질 필요가 없으니, 우리는 따라만 가면 되며, 따라가며 위대한 광개토왕, 위대한 고구려 제국을 노래하기만 하면 그뿐이다. 왜?그들이 그리 노래했으니, 우리는 그것을 따.. 2026. 6. 7.
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껄인 호태왕비문 입만 벌렸다 하면 거짓말만 하는 놈들 주특기가 방금 전에 지가 한 말도 잊어버리고선 스스로 배신하는 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점이다. 나는 광개토왕비문이 북한의 작금 로동신문과 똑같다 했다.로동신문을 보면 북한 같은 지구상 낙원 없다. 위대하신 령도자 지휘 아래 그 신민은 천국을 구가한다. 하지만 뜯어보면 이를 배신하는 것 천지라, 그런 증거를 다름 아닌 로동신문 구절에서 일일이 찾아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앞서 그러한 명백한 증거로 추모에 의한 고구려 건국 신화를 예로 들었거니와, 개뻥은 이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넘쳐 난다. 비문에 이르기를 "백잔[백제]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屬民이었기 때문에 (죽죽 조공했지만) 왜가 신묘년(391)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을 격파하고 동쪽으로 신라를 … 하여 .. 2026. 6. 6.
사료비판은 아예 시궁창에 던져버린 호태왕비 역사학 출발이 사료비판이라면서 정작 호태왕비 의심하는 역사학도 단 한 놈도 못봤다삼국사기는 그렇게 난도질내기 좋아하는 역사학도들이,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라, 엄정한 사료비판은 역사학 출발이랜다. 그래 그런 놈들이 어찌하여 저 광개토왕비는 단 한 놈도 그런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가?그래 나름 사료비판 흉내를 내기는 하더라만, 삼국사기에 대해 들이댄 그런 '엄정한 사료비판'을 가하는 역사학도를 나는 단 한 놈도 보지 못했다. 당대 기록이라서 그보다 훨씬 후대에 정리된 삼국사기에 견주어 비할 수 없는 정확성이 있어?어떤 개새끼가 이딴 망발을 한다더냐?내가 맨날 드는 보기가 로동신문이라, 그게 당대 기록이라 지금 이 순간순간마다 북한 정권이 써내려가는 실록이라, 어찌 저딴 거지 같은 언동 언설이 당대 북한.. 2026. 6. 6.
[고고논단] 방추차가 어쨌다고? 단 한 놈도 고민 않은 옷감, 특히 그 재료와 제작 공정 그래 또 대뜸 우리가 언제 그랬냐고 목청 높이는 놈 있으리라. 방추차 혹은 가락바퀴라면 고고학과 1학년 생도 아는 너무나 익숙한 도구라 할 것이다. 그래?알긴 뭘 알어?저것이 직조 도구 혹은 그런 도구 부품임은 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저런 유물만 이야기했지, 저런 유물이 말하는 사회문화사를 언제 너희가 제대로 조명한 적 있는가 말이다. 그래 다 좋다. 직조 도구 맞다. 이건 반달돌칼이랑 달리 그 기능 쓰임새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신석기 이래 선사시대 이래 열라 많이 나온다. 얼마나 많이?집집마다 거의 다 나온다 해도 틀린 말 아니고, 적어도 마을마다 하나씩 옷공장 있었음에는 틀림없다. 그 정도로 많이 나온다.문제는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냐는 것.출토 양상을 보건대 섬유산업은 철저한 가내수공업이.. 2026. 6. 5.
반달돌칼 그 백년의 사기행각을 끝장낸다 에둘러 갈까 생각했다가 결론부터 제시한다. 반달돌칼을 곡물 수확용 도구, 예컨대 벼이삭 따기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 해서 이를 곡물수확용 낫이라는 지난 백년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이요, 단 한 군데서도 증명된 적이 없다.그렇다면 무엇인가?직조 도구다! 왜 그런가?나는 이 반달돌칼을 볼 때 세 가지 점을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엄청난 출토량과 그것이 출토되는 지점은 집구석 방구석이고 그와 같이 출토하는 공반 유물이 그것이라, 이 점을 한국고고학은 전연 주목하지 않았다. 그 엄청난 출토량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논리라면 삼국시대 이후 주거지마다 낫이 쏟아져야 한다! 낫이 출토된 사례 무지무지 많을 거 같지? 몇 점 되지도 않는다. 동시대 반달돌칼 만큼이나 엄청난 분량을 차지하는 .. 2026.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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