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3047 어보御寶와 어책御冊, 그 아슬아슬한 관계 "어책御冊은 어보御寶에 대한 주석(annotation)이다" 얼마전 감수라는 되먹지 않은 이름으로 어보 관련 평가서에다가 내가 함부로 썼다가, 이건 아무래도 생각을 다시 해봐야겠다 해서 빼버렸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다. 한데 이 말 맞는 거 같아. 명언 같아. (2016. 1. 3) *** 내 말 틀린 거 봤어? 맞어. 어보와 어책 이 둘 관계를 제대로 의심해본 사람이 없다. 어보가 추상이라면 어책은 그 추상을 해체한 구상이다. 그것을 풀어쓴 것이 바로 어책이다. 어보건 어책이건 신주神柱와 더불어 신위神位를 구성하는 삼두마차다. 실제 종묘 각 신실神室은 이 셋을 모름지기 세트로 안치 봉안해서 모신다. 2024. 1. 3. 중앙이 와해하자 시詩가 전성을 구가했다, 당시唐詩의 경우 우리가 아는 당시唐詩, 그것이 극성을 구가한 때가 정확히 절도사 시대의 개막, 혹은 그 본격적인 전개와 궤를 같이한다. 중앙이 파열음을 내지 않았으면, 절도사가 없었으면 이백도 없고, 두보도 없으며 한유도 없고 유종원도, 백거이도, 원진도 없었다. 중앙이 해체되어야 하는 이유다. (2016. 1. 3) *** 우리가 아는 당시唐詩란 정확히는 이백 두보의 시대 이후를 말한다. 이두만 해도 그들 자신은 불행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위대한 문학의 자양분은 안사의 난이었다. 이 난리통이 없었으면 이두는 없다. 문학은 고통이 배양한다. *** 절도사들이 구축하는 번진의 시대를 어찌 봐야 하는가? 절도사들이 구축하는 번진의 시대를 어찌 봐야 하는가?우리가 배운 역사에서 이상형은 언제나 철저한 중앙집권이었다. 이기백이.. 2024. 1. 3. 돌궐 와해가 불러온 춘추전국시대 북방의 패자 돌궐이 와해하자 당 왕조는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그 기쁨은 너무나 찰나였다. 돌궐이 물러난 자리에 회흘이 들어섰다. 서남쪽에서는 토번과 토욕혼이 비대해졌다. 안사의 난에 진압군으로 참전한 회흘은 그 대가를 요구했다. 황제의 딸을 데려가고, 비루한 말들을 고가로 사달라고 요구했으며 장안을 방문한 회흘 사신은 위수지역을 벗어나 장안 거리를 활보하며 깽판을 치고 사람을 죽여도 중국의 황제는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토번은 장안을 점령하기도 했다. 짠보가 중국의 황제를 우습게 보는 시대였다. 동아시아 역사를 통괄하면 늘 이러했다. 우리는 중국의 팽창에 박수를 보냈지만, 그 박수는 돌이켜보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일전에 만난 어느 몽골 친구의 말이 뇌리를 때린다. "몽골 인구가 천만이 되면 중국.. 2024. 1. 3. [거란의 치맛바람] (8) 아들을 낳지 못한 도종道宗의 두 번째 황후 소탄사蕭坦思, 그 비참한 최후 조강지처 의덕황후懿德皇后 소관음蕭觀音이 궁중 가수랑 바람 났다 해서 자진케 하고선 도종道宗은 새로운 황후를 들이게 되는데, 그가 소탄사蕭坦思다. 부마도위駙馬都尉 소하말蕭霞抹의 여동생으로 태강大康 2년(1076), 재상宰 야율을행相耶律乙이 추천해 액정掖庭에 들어왔다가 합격점을 받아 그해 6월 황후에 책봉됐다. 야율을행이 누구인가? 의덕황후 사통 사건을 조사해 사실이라 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킨 사람이다. 그가 정국을 틀어쥐었으니, 아마도 그가 그의 오빠 소하말이 자기 사람이라 해서 그 누이를 궁중에 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소탄사는 문제가 있었다. 황후가 된지 몇 년이 지나도 아들을 낳지 못한 것이다. 황후로서도 조바심이 못내 일 수밖에 없었으니 그에 따른 기상천외한 비상책을 쓴다. 그의.. 2024. 1. 2. [거란의 치맛바람] (7) 궁중 가수와 바람피다 죽임 당한 절세 미색 황후 소관음蕭觀音 도종道宗은 거란 제8대 황제요 흥종興宗의 장남으로 일찍이 태자에 책봉되었다가 중희重熙 24년, 1055년 8월에 아버지가 붕어하자 제위를 이었다. 재위 기간은 수창壽昌 7년(1101)까지 근 반세기에 달한다. 그의 재위 기간 쓴 연호가 하나가 아니다. 청녕淸寧(1055~1064)을 필두로 함옹咸雍(1065~1074)과 태강太康(1075~ 1084), 태안太安(1085~1094)을 거쳐 수창壽昌(1095~1101)에 이르기까지 5개나 썼다. 꼭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한 황제는 하나의 연호를 쓴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또 연호는 보통 국가의 대사大事에 즈음해 그것을 기념해 바꾸니, 이는 거꾸로 보면 그만큼 저 긴 치세 동안 적지 않은 정치 곡절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긴 극성을 구가.. 2024. 1. 2. 백제 후손일 듯한 협비원례荔非元禮는 안사의 난 최고 스타 이광필의 오른팔 당 현종 시대, 특히 안록산 사사명 반란에 즈음해 자주 보이는 협비원례荔非元禮는 백제 유민 후손이라는 심증이 강하게 든다. 협비荔非가 복성일 텐데, 저런 성씨를 쓰는 동아시아 국가는 백제밖에 없다. 협씨荔氏는 백제 대성 8족 중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마도 백제 멸망 즈음해 그 일족 일부가 당으로 넘어가 그쪽에 정착하면서 저런 식으로 성씨를 바꾸었을 것으로 본다. 신구당서에는 그의 열전이 없지만, 그의 행적은 아래 사전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를 보면 안록산 사사명의 난이 낳은 투톱 스타 곽자의郭子儀와 이광필李光弼 중 협비원례는 이광필의 오른팔이었음을 본다. https://zh.wikipedia.org/zh-tw/%E8%8D%94%E9%9D%9E%E5%85%83%E7%A6%AE 荔非元禮.. 2024. 1. 2. 이전 1 ··· 297 298 299 300 301 302 303 ··· 50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