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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716

[귀주대첩] (14) 또 하나의 제국, 승리가 초래한 변화 귀주대첩이라는 고려의 완승, 거란의 참패로 끝난 제3차 고려거란전쟁은 잦은 전쟁과 아슬아슬한 평화로 점철한 두 왕조 관계를 재편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질서 또한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로부터 거란이 망하기까지 100년간 이른바 평화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거란의 팽창도 이 전쟁과 더불어 끝이 났다. 정복왕조 거란이 정복을 멈췄다는 것은 현상 유지를 의미하며, 그것은 곧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는 위대한 팡파르였다. 물론 크고 작은 충돌은 없지 않았고, 거란 내부 또한 이런저런 반란 움직임이 없지는 않았지만, 종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위대한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 이 평화의 시대는 고려가 피로써 이룩한 것이었다. 거란은 이 참패를 숨기고자 하고 분식하려 했지만,.. 2024. 2. 25.
한강 용산방수제와 한강교, 을축년대홍수의 유산 한강 방수제와 한강교 준공 한강은 해마다 그 연안에 피해를 입힌 바가 많은 대하천 중 하나로, 특히 경성에 근접한 관계상 일찍이 그 개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925년(大正 14)에는 미증유의 홍수로 용산·뚝섬纛島·영등포 등 연안의 피해가 실로 막심했다. 그리하여 1926년(大正15) 이후 3개년 계속사업으로서 220만 원의 예산으로 용산의 방수제防水堤, 1927년(昭和 2) 이후 120만 원의 공사비로 한강교漢江橋의 가설 공사에 착수했다. 1929년(昭和 4)에 둘 다 준공되어 9월 18일 낙성식과 도교식渡橋式을 거행하여, 경성 교외에 훌륭한 경관을 더하게 되었다. 방수제는 신·구新舊 용산을 둘러싼 것으로 총연장 8,000m, 한강교는 총연장 441.6m, 유효 폭 9.1m에 달하고 있다. [636].. 2024. 2. 24.
조선어장려수당을 지급한 조선총독부 조선어장려수당 언어는 쌍방이 의사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에 일상에서 민중과 접촉하는[324] 일본인 관리 등이 조선어를 잘 아는 것은 민의 창달을 도모하는 데 중요하다. 또한 각종 정책을 실행하는 데에 이로운 점이 많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에 별도의 항목에서 기재한 바와 같이 한편으로 조선인들에게 국어(일본어)의 보급을 장려하는 동시에, 총독부는 종래 총독부 및 소속 관서에 근무하는 내지인 직원, 특히 늘 인민을 접촉하는 지방청 직원을 대상으로 조선어 학습을 장려해 왔다. 그러나 관제 개혁 후 이를 한층 더 장려하기 위해 1921년(大正 10) 5월 '조선총독부 및 소속 관서 직원 조선어 장려규정'을 발포하고 동시에 대우 직원 및 고원雇員에 대해서도 같은 규정을 준용했다. 이로써 시험 .. 2024. 2. 24.
[귀주대첩] (13) 노복 터진 강감찬 강감찬은 빌빌 쌌다. 948년, 고려 정종定宗 3년에 태어난 그는 빌빌 싸다 서른여섯 중늙은이가 다 된 983년, 성종成宗 2년에야 최승로崔承老가 시험감독관 총대장이 되어 실시한 과거 시험 갑과甲科에 강은천姜殷川이라는 본명으로 등단해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나이에 견주어 출세는 굉장히 늦어 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주장하는 조정 대세에 맞서 홀로 몽진을 주장해 관철함으로써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래도 계속 빌빌 쌌다. 이렇다 할 요직을 지낸 적도 없다. 이런 그가 역사의 주역으로 등단하기는 제3차 고려거란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전운이 한창 감돌던 그 무렵, 현종은 지난날 몽진, 곧 일단 튀고 보자 전법을 제시한 강감찬을 기억하고는 그를 서경유수로 임명하고, 나아가 서북면을 지키는 총.. 2024. 2. 24.
[귀주대첩 spinoff] 요사遼史 이국외기二國外記가 적록한 귀주대첩 원나라 때 편찬된 요사遼史는 24사 혹은 25사 중에서도 그 졸속성이 가장 심각하다는 비판을 듣거니와, 실제 내가 통독해 봐도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이상 가는 거란 통사는 지구상에 없다. 이 요사는 외국열전이 독특해서 유독 고려와 서하西夏 두 나라는 이국외기二國外記라 해서 별도로 독립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만큼 거란 국제교류사에서 두 왕조가 차지하는 위치가 막강한 까닭이다. 물론 거란한테 가장 중요한 이웃 왕조는 宋이었지만, 그 송은 본사가 따로 있으므로, 이렇게 두 왕조만은 따로 독립해서 이렇게 특기한 것이다. 이 이국외기 중 고려를 보면, 두 왕조가 전쟁을 비롯해 교류한 역사를 편년체 식으로 정리했으니, 그 요긴함이야 일러 무엇하겠는가? 이에는 당연히 우리가 흔히 귀주대.. 2024. 2. 24.
[요사遼史 서하西夏 열전] (1) 요사에 대하여 요사遼史는 원나라 때 탈탈脫脫이 주도해서 편찬한 거란 요나라 시대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로 이른바 “24사二十四史” 중 하나로 들어간다. 지정至正 3년, 1343년 4월에 편찬이 개시되어 이듬해 3월에 완성되었으니, 불과 1년 만에 편찬이 되는 바람에 여러 모로 결점이 많은 사서로 분류된다. 탈탈脫脫이 편찬책임자인 도총재都總裁를 맡은 가운데 철목아탑식鐵木兒塔識과 하유일賀惟一, 장기암張起岩, 구양현歐陽玄, 게해사揭奚斯, 여사성呂思誠이 총재관總裁官이 되고 염혜산해아廉惠山海牙 등이 수사관修史官을 맡았다. 전체 116권이요, 개중 황제 편년체인 본기本紀가 30권, 각종 제도사인 지志가 32권, 표表가 8권, 열전列傳이 45권이다. 기타 특이하게도 거란어를 풀이한 〈국어해國語解〉가 1권을 이룬다. 요遼 태조太祖 야..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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