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2762

알바승과 금수저승, 그 건널 수 없는 간극 비중국권 불교 승려 중국 유학 양태를 보건대 그 머문 기간에 따라 단기 알바승과 장기체류승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예서 그 기점은 대략 10년 안팎이라문화권별 뚜렷한 차이가 있으니 신라가 대체로 장기체류승인 데 견주어 동시대 일본은 단기 알바승이라원광과 의상을 필두로 신라 승려들은 하대 무염에 이르기까지 유학기간 기본이 10년이라이런 사람들 특징이 유창한 중국어였으니 실제 귀국해서도 외교문서 작성에 개입하기도 했으니 원광이 대표적이며나아가 오랜 생활 구축한 인망을 토대로 본국 간첩생활을 하기도 했으니 의상이 그렇다.이들 특징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대재벌가 일원이라는 사실이다.이것이야말로 장기체류 근간이 된다.돈이 있어야 도도 닦고 공부를 할 게 아닌가? 그에 견주어 일본 유학승들은 하나 같이 거지였다.. 2025. 2. 27.
[해혼후묘海昏侯墓] (1) 밤새 짖어댄 마을 개들 2000년대 들어 중국 강서성江西省 남창시南昌市에서 느닷없없이 출현한 이 서한시대 중기 무덤 발굴성과 역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바, 앞선 소개에 이어 이번엔 좀 시간을 들여 상세히 정리한다.이 무덤은 2015년 도굴을 계기로 알려지고 발굴조사가 착수되어 그 전모를 드러냈거니와무엇보다 무덤에 동전만 10톤에 달하는 막대한 양을 쏟아부었으며 뿐만 아니라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금은 6만그램 넘게 현재까지 수습되었다. 이 황금은 상자 안에서 발견되었고 크기는 하나씩 아이들 손바닥만했다. 어떤 상자에는 금병이라 일컫는 금덩이가 적어도 70~80점이 있었다. 다른 칠기 상자에서도 모두 황금만 나왔다. 어떤 것은 말발굽처럼 생겼고, 어떤 것은 사슴 발처럼 정교하게 주조했다. 직전 조사자들은 이 무덤에서 오수전五铢钱.. 2025. 2. 25.
서기 2년 기준 서한 군국별 인구 통계 서한西漢 평제平帝 시기에는 전국에 83개 군郡과 20개 제후국诸侯国이 있어 도합 총 103개 군국郡国과 1천317개 현縣이 있었다. 원시元始 2년(서기 2년), 중국은 이미 매우 규범적인 인구 통계 데이터를 보유했으며, 당시 전국에는 총 1천223만 3062가구와 5천959만4978명이 있었다. 이 데이터는 단지 민간 가구일 뿐이며, 군대의 서역 도호부西域都护府 인구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면 서한 103개 군국 중에서 각각의 인구 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천군颍川郡과 여남군汝南郡에서 인재가 나온다고 하는데, 인구가 가장 많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서한 각 군국 인구를 알아보겠다. 서한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군은 여남군汝南郡으로 259만6148명에 이르며 영천군과 패군沛郡 역시 200만 명이 넘.. 2025. 2. 25.
[해혼후묘海昏侯墓] (1)은행을 발굴하는 사람들 2000년대 들어 중국 강서성江西省 남창시南昌市에서 느닷없없이 출현한 서한 시대 중기 폐제废帝 창읍왕昌邑王 해혼후海昏侯 유하刘贺 능묘陵墓 발굴성과 역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바, 앞서 여러 번 다루기는 했지만 이번엔 좀 시간을 들여 하나씩 단을 지어 정리를 꾀하고자 한다.이 무덤은 2015년 도굴을 계기로 알려지고 발굴조사가 착수되어 그 전모를 드러냈거니와무엇보다 무덤에 동전만 10톤에 달하는 막대한 양을 쏟아부었으며뿐만 아니라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금은 6만그램 넘게 현재까지 수습되었다. 이 황금은 상자 안에서 발견되었고 크기는 하나씩 아이들 손바닥만했다.어떤 상자에는 금병이라 일컫는 금덩이가 적어도 70~80점이 있었다.다른 칠기 상자에서도 모두 황금만 나왔다. 어떤 것은 말발굽처럼 생겼고, 어떤 것.. 2025. 2. 24.
[어숙권](6) 복수심 불타는 상주 앞선 명종실록에 의하면, 이 황당선 표류인 대량 학살 사태는 유충정柳忠貞이라는 사람이 끼어드는 바람에 더욱 확대된 측면이 있다. 그는 현감縣監을 지낸 전직 공무원으로서, 이 사건 당시에는 전前 현감이라 했으니, 퇴직자 신분이었음이 확실하다. 다만, 그가 퇴직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은데, 부모 혹은 조부모 상을 당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그를 상인喪人, 곧 상중에 있는 사람으로 실록이 묘사한 것도 이때문이라고 본다.보통 이런 사람은 삼년상이 끝나면 재임용된다.암튼 마침 이때 저 대량학살이 벌어진 녹도라는 섬에 그는 관재를 구할 요량으로 들어가 있었다. 물론 장례에 소요하는 목재를 구하러 들어가는 길에 혼자 덜렁 들어갔겠는가? 식솔 혹은 일꾼들과 함께 들어갔을 것이다. 한데 재수가 옴 붙었는지, 그가 녹.. 2025. 2. 22.
[어숙권](5) 바다를 배회하는 캐러비안 해적 황당선荒唐船 어숙권이 패관잡기에서 정리한 황당선荒唐船 표류 사건은 명종실록에도 보이는데, 그 1권 명종 즉위년 8월 2일 임진 두 번째 기사 1545년 명 가정嘉靖 24년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전라도 관찰사 심광언沈光彦의 계본에 이르기를  "7월 22일 중국 배들이 녹도鹿島 바깥쪽에 정박하고 있는 것을 만호 장명우張明遇가 이들이 바로 왜인이라고 해서 즉시 군사를 몰아 가서는 92명을 참획한 뒤에 그들이 애걸함에 따라 사로잡은 자가 또한 282명이나 됩니다. 전 현감인 상인喪人 유충정柳忠貞이 덧널[槨]을 만들 판자를 구하러 역시 이곳[녹도-인용자]에 당도했다가 의복과 식량을 빼앗기고는 힘을 합해 서로 싸웠습니다. 율현栗峴 권관權管인 강희姜僖는 배를 타고 쫓아가서 중국인 13인을 베었으며 유충정이 벤 것도 36명.. 2025. 2. 2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