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2400 기원전 338년 8월 2일, 헬레니즘 시대 서막을 알리다 저 알렉산드로스, 곧 알렉산더 대왕은 적지 않은 조각이 전하는데 저 시대야 당대에 이미 저런 조각을 만들 때라 표준영정이 있었던 듯 거의 똑같다.그 넓은 제국에서 모두가 그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니 모형이나 그림으로 이런 모습으로 제작 비치하라는 명령이 내려갔을 것이다.하도 한창 나이에 느닷없이 가서 더 그렇겠지만 저 친구가 인물이 졸라 잘생기게 그려놨다.머리도 언제나 파마를 한 듯 후세 저 헤어스타일은 유행이 된다.알렉산더 세계정복이라 하지만 개소리라 그의 정복은 실제 페르시아 제국 정복 딱 하나다.하나만 멸망케 했을 뿐이다.단 그 페르샤 제국이 하도 컸기에 세계정복으로 비칠뿐이다.폐르샤 정벌에 앞서 그리스 국내를 통일해야했다. 마케도니아는 종래 헬라동맹 맹주들인 아테네나 스파르트에 견주어 북방 .. 2024. 11. 2. 아들을 낳으면 거처가 상승한 고려시대 내명부 여인들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19년(1018) 무오년을 훑으면 이 해 가을 7월정축일에 그리 기다린 후사 이을 왕자가 연경원延慶院에서 탄생하자 형亨이라는 이름을 내려주고 왕자를 생산한 후궁은 거주하는 공간을 원院이라 불렀지만, 이제는 궁宮이라 고쳐 부르게 하는 한편 후한 예물을 내려주었다 丁丑 王子生於延慶院, 賜名曰亨, 改院爲宮, 仍賜禮物.고 한다. 저에서 말하는 연경원延慶院은 중의적 의미가 있다.첫째 장소, 둘째는 그 왕자를 낳은 어머니가 그것이다.따라서 연경원에서 왕자가 태어났다는 말은 연경원이라는 장소에서 왕자가 태어났다는 뜻인 동시에, 그 왕자가 연경원 주인인 후궁한테서 태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왕자 생산과 더불어 그 어미가 신분 상승이 발견된다. 고려시대 왕의 여인들은 궁궐 안.. 2024. 11. 1. 새 대가리 세우테스 칼자루 새 모양 세우테스Seuthes 3세 칼자루 Hilt of sword 금 상감, 기원전 4세기. 세우테스 3세는 기원전 4세기 유명한 트라키아 통치자로 그의 무덤은 무수한 보물을 쏟아냈다. 관련 사항은 아래 글들 참조 트라키아 오드리시아 2천300년 무덤을 박차고 나온 트라키아 세우테스 3세(Seuthes III) 트라키아가 불가리아에 아로 새긴 흔적들 2024. 10. 31. 눈이 뒤집혔을 발굴 2015년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기원전 5세기 어떤 켈트족 왕자 Celtic prince가 소유한 화려한 장식 무덤이라는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 있었다. 문자가 없어 이 왕자 구체적인 신원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장의 호화로운 성격은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암시한다.라보Lavau에 위치한 이 무덤은 고대 켈트 귀족의 부와 권위를 드물게 엿볼 수 있는 놀라운 유물로 가득 차 있었다. 왕자의 매장실에는 전차chariot 한 대 외에도 복잡하게 디자인한 청동 가마솥 bronze cauldron 한 점,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산 도기들, 켈트 왕족을 상징하는 황금 토르크torc 한 점이 있었다.가장 주목할 만한 품목 중에는 뿔이 과장된 것으로 유명한 그리스 강신 river god 아켈루스A.. 2024. 10. 31. 이차돈 할아버지 아시阿時, 신라 중대 정치사의 핵심 키 보명寶明은 아버지가 구진仇珍이다. 구진은 진흥왕 시대에 거칠부와 더불어 장군 중 한 명으로 출전해서 고구려를 몰아내고서 한강 중상류 유역을 신라가 완전히 장악하는 데 힘을 보탠 원훈대신이다. 보명이 진지왕과의 사이에서 두 딸 품명品明과 석명昔明을 낳았다.이 품명이 삼토三免라는 사내한테서 딸 삼품三品을 낳으니, 삼품이 수일水日에게서 품일品日을 낳는다. 황산벌 전투에서 돌격 앞으로 장렬히 전사하는 그 관창의 아버지 김품일이다.김품일은 아버지가 누군지 삼국사기에는 보이지 않으나, 화랑세기와 그 자매편 족도族圖 상장돈장上章敦牂은 아버지가 구진仇珍이다. 석명은 동란冬蘭에게서 석란昔蘭이라는 딸을 낳고 석란은 모종毛宗이라는 남자한테서 모란毛蘭을 낳는다. 보명寶明은 또 진평을 섬겨 딸 양명良明을 낳으니, 이 양명이 보.. 2024. 10. 31. 전차대전 카데시 전투 승자는 누구? 기원전 1274년 이집트인과 히타이트인 사이에 벌어진 카데시 전투 Battle of Kadesh는 여전히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역사상 가장 큰 전차 전투 중 하나였던 이 전쟁에서 양측은 승리를 주장한다. 전투에 대한 설명은 상충되어 역사가들이 진정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퍼즐을 맞추도록 남겨두고 있다. 일부에서는 히타이트족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만, 결국 물자가 부족하여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이 기습 공격으로 전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릴 수 있었다고 추측한다. 카데시 전투의 미스터리는 오늘날까지 역사가들을 사로잡고 있다. 첨부 사진은 아부 심벨Abu Simbel 신전 바위에 깎은 부조에서 람세스 2세 Ramesses II가 다른 적을 짓밟으면서 공격하는 모습을 묘.. 2024. 10. 31. 이전 1 ··· 4 5 6 7 8 9 10 ··· 40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