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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 2일 오후 2시.
당시 문화재관리국이 어디 있었는지 자료는 찾아봐야겠거니와
그 회의실에서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 제7차 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록에 의하면 참석자는
문화재위원으로
조명기·손보기·최희순·정인국·임창순·이기백·김원용·김유선이었으며
전문위원 1명이 배석했다.
기타 참석자로
정재훈·백동호·김상봉·장경호 사무관·김선배·정기영이 보인다.
사회는 조명기, 간사는 장인기, 서기는 김재겸이었다.
이날 두 번째 보고 사항으로 다음이 있었다.
문화재 보수 설계검토
나, 공주 공산성 고분군 보수공사
1)심의 결정: 원안대로 가결함
2) 보수내용 :
(1)5.6호분 봉토 해체 강회 다짐
(2) 5,6호분 배면 암거
(3) 6호분 석축 개축
(4) 6호분 조명
이 공사를 통해 그 다음달 그 배수로 현장에서 무령왕릉이 발견된다.
저 공사를 대서특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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