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723 sky goddess 누트Nut는 낮 하늘도 지배했나? 람세스 6세 무덤에 있는 인간을 감싼 하늘의 여신 누트와 그 안에 포진한 인간들 형상. 누트 몸엔 별 표시가 촘촘히 박혀 있어 그가 하늘을 지배하는 신임을 암시한다. 이로써 보면 흔히 누트를 고대 이집트 하늘의 여신 sky goddess 이라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가 지배하는 하늘은 밤하늘이 혹 아닐까? 음양설에 익숙한 우리네 관념에 의하면 태양이 이글거리는 낮 하늘은 남성신이 지배해야 한다. 이집트 하늘도 밤과 낮에 따라 분할지배가 있지 않았을까? 짧게 살핀 누트는 대개 밤과 연동해서다. 이 분야는 깊이 파보지 아니하고서 일단 던져서 대가의 질정을 기다린다. 2024. 7. 9. 안데스 산맥을 넘지 않은 잉카제국 마지막 판도 The Inca Empire at its greatest extent in 1532 곧 1532년 현재 잉카제국 최대 판도라 해서 소개하는 지도인데 위선 지도가 참 예쁘다는 말을 해 둔다. 저 지도에는 잉카 제국 간선도로가 아울러 표시된다. 1532년이 왜 중요한가 하면, 그 이듬해 잉카제국은 그 마지막 왕 아타후알파Atahualpa가 끝까지 스페인 군대에 저항하다 사로잡혀 사형당하면서 종말을 고하는 까닭이다. 저 지도를 존중한다면 잉카제국은 태평양을 접한 안데스산맥 동쪽 연안을 따라 분포했으며 저 혐준한 안데스는 결코 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넘을 필요가 없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긴 넘고 싶다 해도 어디를 어떻게 뚫을 것인가? 이문도 남지 않을 뿐더러 저 너머 세계엔 뭐가 있는지도 몰랐을 가능성이 .. 2024. 7. 9. 야니폼janiform한 칼로스kalos가 있는 아리발로스aryballos 이게 뭔가 하겠는데 그 명세서를 추리면 이렇다. Janiform aryballos (520–510 BC), with kalos inscription Artist/Maker Skythes (?), potter & Epilykos Class Ethiopian's head and female head, with a kalos inscription. Attic janiform red-figure aryballos, ca. 520–510 BC. From Greece. Dimensions H. 11.3 cm (4 ¼ in.) Credit line Purchase, 1898 Location Department of Greek, Etruscan and Roman Antiquities, Denon, Sully, firs.. 2024. 7. 8. 꿀이 된 태양신 Ra의 눈물 고대 이집트 신화를 보면 태양신 라Ra가 눈물을 흘렸고, 그의 눈물이 땅에 떨어져 벌로 변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이러한 맥락에서 벌은 어떤 비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땅(그리고 인간)을 향해 눈물처럼 떨어지는 신들의 사자로 여겨졌다. 벌들은 벌집을 만들고 꿀과 밀랍을 생산했다. 이러한 이유로 꿀벌은 이집트 사회의 경제와 복지에 대한 생산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꿀벌에게 귀중한 측면을 준 Ra 자신의 신성한 선물로 간주되었다. 앞 사진은 고대에는 우자트Udjat라고 불렀다. 보통은 라의 눈[Eye of Ra] 또는 호루스의 눈[Eye of Horus]으로 불리며 이집트 매의 신 호루스의 오른쪽 눈을 나타내며 태양신 라와도 연관된다. 아마도 눈물 또는 벌이 나온 곳일 터다. 또 다른 전설.. 2024. 7. 8. 올리브를 따는 사람들 올리브 오일에 대한 이야기는 기원전 6000년 무렵 지중해 동부 사람들이 야생에서 자라는 올리브 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시작한다.기원전 5000년 무렵이 되면서 그 야생은 과수원에서 재배했다.올리브 오일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빠르게 변화를 불러왔다. 램프를 밝히는 연료로 소비되었고, 음식을 더 오래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특히 요구르트와 치즈와 같은 유제품을 보존했고, 광범위한 요리가 번성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지중해 식단'으로 알고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저 암포라는 그리스의 올리브 수확을 묘사한다. 한 사람은 나무에 올라가서 열매를 따고 있고, 그 아래서는 수염이 난 두 사람이 막대기로 나무를 때려 열매를 따며, 다른 한 사람은 땅에 떨어진 열.. 2024. 7. 8. 돈 때문에 상여짓 공동재산 관리로 간 조선사회 상여는 본래 한 번 쓰고는 태우거나 묻어버려야 한다. 이에 배반하는 전통이 우리네 상여집이다. 내 고향에서도 이 상여집이라는 것이 어릴 때까지 있다가 사라졌다. 이 상여는 마을 공동재산이었다. 그 상여집은 보통 동네 무미진 계곡 골짜기에다가 만들었다. 그 골짜기는 귀신 나오는 데라 해서 가는 일이 드물었다. 동네 초상이 날 때마다 이 상여집에서 상여를 꺼내어 시신을 무덤에 매장하는 데까지 옮기고는 도로 거두어 상여집에 넣었다. 조선시대가 왜 이 시스템으로 갔는가? 간단하다. 돈 때문이다. 죽을 때마다 상여를 새로 만들어 태우다 보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나아가 무덤 구조도 상여 공동재사용 재산 관리에 한 몫을 했다. 조선 무덤은 왕릉까지도 그런 상여를 시신과 함께 넣어 매장할 공간이 없었다. 무덤 .. 2024. 7. 8. 이전 1 ··· 107 108 109 110 111 112 113 ··· 45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