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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481

사스는 질본을 만들고, 코로나는 질청을 낳았느니 메르스 땜시 보건복지부 열라 터지는 거 같지? 니들 보사부 열라 욕하지? 그럴수록 보사부 열라 좋아한다 질병관리본부 어케 생겼는지 니들이 함 캐봐. 대통령 장관은 유한하나 공무원은 영원해. 그러니 니들이 보사부 진정으로 욕하고 싶으면 칭찬해라. 내 말 알아듣는 이 몇명이나 될꼬? (June 13, 2015 at 8:56 PM) 질병관리본부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하면서 2004년 1월, 국립보건원 조직이 확대 개편하면서 탄생했다. 이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직후 2016년 1월. 그 본부장이 차관급으로 격상했다. 이런 질병관리본부가 코로나19 팬데믹을 발판삼아 차관급 외청인 질병관리청 승격이 예고됐다. 다만, 그 개편안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내용이 바뀔 .. 2020. 6. 13.
춘천은 귀곡산장 깊은 밤 지는 달이 춘천 삼학산 그림자를 끌어다가 남내면 솔개동네 강동지 집 건넌방 서창에 들었더라. 이인직 《귀鬼의 성聲》 첫 줄 *** 어느 때 누구 글인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이른바 친일파 단죄 처단 지향성 글이었다는 기억만 확실하다. 친일 행적이 뚜렷하다고 간주되는 이인직의 그런 행적에 착목한 저자는 이인직이 벌써 소설 제목부터 일본어 색채가 짙다고 공격한다. 예컨대 혈루血淚라 하면 될 것을 일본식 문투 흉내내어 혈血의 루漏로 했다든지, 귀성鬼聲이라 하면 될 것을 귀鬼의 성聲의 성으로 했다든지 하는 사례를 들어 이 놈은 뼛속까지 친일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럴까? 일본문투를 흉내냈다 해서 그것이 친일의 증거가 되는가? 왜 제목을 저리했을까? 나는 신소설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생소함을 주기 위함이라고.. 2020. 6. 9.
冉牟兄 염모형? 서울대박물관이 조사한 아차산 4보루 출토 접시인데, 이른바 고구려 유물이며, 더구나 그 안쪽 바닥에 긁어서 새긴 세 글자가 있어 주목을 받거니와 이 글자를 의문의 여지 없이 冉牟兄 염모형 이라 판독하고, 그런 판독이 의문의 여지 없이 통용하거니와 글쎄다. 아무리 봐도 나한테는 그리 보이지 아니해서 언제나 의문을 표시하곤 한다. 첫 글자도 冉인지 의문이 없지 않다. 마지막 글자를 어찌하여 兄이라 읽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지인이 지적하듯이 亥해에 가깝게 보인다. 저 글자는 그릇을 굽기 전에? 혹은 굽고 나서 긁었는가도 주목할 만하거니와, 굽기 전 흙이 말랑말랑할 때 쓴 게 아닌가 한다. 덧붙여 이런 데 긁어서 쓴 글자를 보면 필순筆順을 명확히 알 수 있는데, 요즘 교육현장에서 가르치는 필순과 상당 부.. 2020. 6. 9.
'安厝登冠大墓 안조 등관 대묘' 무령왕릉 묘권墓券에 등장하는 '安厝登冠大墓안조등관대묘'와 관련해 내가 기존 말도 아니되는 주장들을 일거에 쓸어버린 신설新說을 발표하기는 2009년 8월이었다. (安厝登冠大墓는 安厝 / 登冠 / 大墓 라고 끊어 읽는다.) 당시 나는 이런 새로운 주장을 담은 논문을 라는 제목을 붙여 부산대 중국연구소가 발간하는 기관지 《CHINA연구》 7호에 게재했다. 관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 대묘大墓는 왕릉이 아니라 가족 공동묘지다. 둘째, 따라서 그 앞쪽 등관登冠은 그 공동묘지 이름이다. (그 앞에 붙은 '安厝안조'는 복합동사로 '安置'라는 말과 같다. 따라서 저 말은 무령왕(의 시신)을 당시 백제 왕실 부여씨 가족공동묘지 혹은 종족공동묘지인 등관 이라는 곳에 안치했다는 뜻이다. 조금 전 심심하던 차에 논문검색 사이.. 2020. 6. 8.
세 탑으로 장식한 남조시대 중국 벽돌무덤 남경 강녕 호촌 남조묘 고고발굴 南京江宁胡村南朝墓考古发掘 남경南京 호촌胡村 남조묘南朝墓는 강소성江蘇省 남경시南京市 강녕구江宁区 강녕진江宁镇 호촌胡村 북쪽 진산陈山 동쪽 기슭에 위치한다. 2006년 초, 강녕진江宁镇 陈塘大队轮窑厂가 취토取土하는 과정에서 고대 벽돌묘[砖墓] 1기가 출현하자, 그해 10월부터 12월까지 남경시박물관南京市博物馆 고고부考古部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발굴면적은 대략 50평방미터다. 조사결과 남조시대 전형적인 벽돌무덤으로 드러났다. 전체 길이 7m, 너비 최장 2.24m로 과거 발굴된 동시대 묘장墓葬에 견주어 규모가 비교적 크다. 묘실墓室 후벽後壁 구조가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앞 사진에서 제시한 것처럼 후실 벽면에다가 벽돌을 돌출시켜 양쪽으로 탑 모양을 구현한 다음, 그 양쪽 사.. 2020. 6. 7.
사마왕의 동기동창 도홍경이 증언하는 대묘大墓 남조시대 양梁나라 도사 도경홍陶弘景(456~536)이 찬撰한 《진고眞誥》 권20 ‘진주세보眞冑世譜’는 허장사許長史, 곧 허밀許謐 가문 6世 족보族譜다. 이에는 이런 말이 보인다. “(허밀의) 처妻 대씨戴氏는 지금의 구용현句容縣 안성리묘安成里墓에 (남편과) 함께 장사지냈다. 창조지시刱造之始가 되니, 현縣 사람들이 전하여 일컫기를 ‘허광록묘許光祿墓’라고 한다. 지금 분비墳碑(묘비)가 현연顯然하니, 모두 갑향甲向이다” (妻戴氏, 同葬今句容縣安成里墓. 爲刱造之始, 縣人傳呼許光祿墓. 今墳碑顯然, 幷甲向) 이어 이런 말이 따른다. “구용현 句容縣 북쪽 대묘大墓에다가 (남편과) 함께 장사지냈다” (同葬縣北大墓也) 이로써 대묘大墓가 가족공동묘지임이 명백하다. 같은 도홍경陶弘景 문집인 《도은거집陶隱居集》에는 ‘허장사구관.. 2020.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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