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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288

작은아버지에게 쫓겨난 대우황자大友皇子의 노래 두 수 667년, 한반도가 신라에 의한 반도 통일 전쟁으로 요동을 치던 그 시절. 신라가 당군을 끌어들여 동맹국이라 할 수 있는 백제를 멸한 것이 그로부터 7년 전인 660년. 망가진 백제 사직을 돌려놓겠다며, 왜의 여주(女主)로서 아들인 中大兄황자에 의해 두 번째로 왕위에 옹립된 이가 제명(齊明. 사이메이) 천황. 제명은 두 번째 재위 5년째인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자, 이듬해인 661년(제명 7년), 군대를 이끌고 한반도로 진군하겠다며 아들 중대형과 함께 서울을 떠나 츠쿠시(축자. 筑紫)에 집결한다. 하지만 항전을 기다리던 제명이 츠쿠시에서 사망하자, 이에 中大兄이 재위에 오르니 이가 천지천황(天智天皇. 텐치천황)이다. 실제 그의 즉위는 661년이나, 즉위 원년은 이듬해로 삼는다. 이는 前王 재위 말년과 .. 2018. 2. 27.
경복궁(景福宮)과 경복전부(景福殿賦) 지금까지 만난 한문 원전 텍스트 중에 나를 질려버리게 하고, 나 스스로는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내 머리가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가 라고 의심케 만든 두 부류가 있다. 1. 최치원 사산비명(四山碑銘)이니, 최치원이란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 안 해도 알 터이고, 사산비명이란 치원이가 왕명을 빙자해 돈 받고 이 인간은 매우 매우 훌륭하다고 선전해 준 비문을 말하는데, 당시 신라 저명한 고승이 죽은 다음에 그 비명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써준 것이 바로 사산비명이라. 이들 비명이 각각 자리잡은 곳이 네 山이라 해서 저리 일컫는다. 한데 이 사산비명은 문체가 사륙변려문이라. 이거 한문 시간에 한 두 번 잠깐 보고는 지나치기 마련인데, 사륙변려문이란 4글자와 6글자가 세트가 되는 것은 물론 그런 세트와 세트끼리로 照.. 2018. 2. 27.
쇠돌 엄마 기슈? 서가를 채운 책 중에는 대학시절에 사서 모은 게 일부나마 남아 있으니, 며칠 전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서가 한 켠에 저번 이삿짐 싸서 이곳으로 옮겨올 때 뭉탱이로 묶인 그 빛바랜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하도 먼지가 덕지덕지 끼어 있어 작심하고 책을 닦았다. 잦은 자취생활, 1986년 서울 유학 개시 이후 언젠가 내가 이사한 횟수를 헤아려 보았더니 18 비스무리한 숫자가 나오더니, 그처럼 잦게 주거를 전전하는 동안에도 용케도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는 빛바랜 책들이다. 지금은 헌책방에나 가야 재수 좋게 만나게 되는 것들인데, 개중 한 책을 보니 1985년 글방문고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글방문고’ 시리즈 중 하나인 ‘동백꽃’이라는 단편소설집이라. 금광에 미쳐 요절한 강원도 춘천 출신 소설가요, 내 .. 2018. 2. 26.
술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술을 끊었더니 중국 북송(北宋)시대를 살다간 광세(曠世)의 박학이요, 절세(絶世)의 천재로 심괄(沈括·1031~1095)이란 괴짜가 있었으니, 왕안석(王安石)이란 사람이 일으킨 일대 국가개혁 프로젝트인 변법(變法)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참여한 그가 저술한 문헌으로 지금도 전하면서 널리 읽히고 있는 명저로 《몽계필담》(夢溪筆談)이 있을 지니라. 내 오늘은 이 땅의 주당(酒黨)들에게 이 책 한 구절에 수록된 어떤 고주망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하노라. 본론에 들어가기 전, 내 주위로 아래에서 말하는 주당과 비슷한 부류가 많으니, 폭탄주에 찌들어 사는 원시인들이 아직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더러 포진하고 있을 지니, 이 자리에서 내가 선배가 대부분인 그들에게 이제부턴 인생 똑바로 살라고 훈계는 더 이상 못하겠노라. 대신 나.. 2018. 2. 26.
완당 김정희가 돌아가시매 : 조희룡의 만가 완당학사(阮堂學士)는 壽를 누리기를 71세이니 500년만에 다시 온 분이라네. 천상에서는 일찍이 반야(般若)의 業을 닦다가 인간세(人間世)에 잠시 재관(宰官)의 몸을 나셨네. 하악(河嶽)의 기운 쏟은 적 없으나 팔뚝 아래 금강필(金剛筆)은 신기(神氣)가 있었네. 무고무금(無古無今)한 경지로 별스런 길 열었으니 정신과 재능의 지극함이요 모두 종정운뢰(鍾鼎雲雷)의 문장이라네. 글씨 때문에 문장이 가리운 왕내사(王內史), 그와 천고(千古)와 같은 경우라네. 그 글씨의 흉중(胸中)의 구파(九派)와 교룡(蛟龍)의 노숙함은 주옥 같은 전분(典墳)과 진한(秦漢) 문장의 온축이라네. 승평(昇平)의 시대를 문채나게 함은 응당 이유가 있었으니 어찌하여 삿갓에 나막신 차림으로 비바람 맞으며 바다 밖의 문자를 증명했는가? 公.. 2018. 2. 26.
조희룡이 증언하는 김홍도와 그의 아들 조선후기 최대 화가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 하지만 그 일생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가장 신빙성 있는 기록이 아래에 소개하는 조희룡이라는 당시 사람의 증언이다. 조희룡(趙凞龍·1789~1866)은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라는 사람과 친분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는 조희룡의 문집 중에 '김홍도전'(金弘道傳)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김홍도(金弘道)는 字가 사능(士能)이요 號는 단원(檀園)이다. 아름다운 풍채와 태도에 마음은 활달하고 구애됨이 없어 사람들이 신선세계에 사는 인물이라 했다. 그가 그린 산수(山水), 인물(人物), 화훼(花卉), 영모(翎毛)는 묘함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특히 신선(神仙)을 잘 그렸다. 준찰(?擦), 구염(句染), 구간(軀幹), 의문(衣紋)을 앞 사람들에게..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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