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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934

마왕퇴한묘 马王堆汉墓 馬王堆漢墓(1) 구조 배치 주인공 墓墓坑模型 MODEL OF TOMB PITS OF THE THREE HAN TOMBS AT MAWANGDUT 一号墓 : 南北长 19.5 东西宽 17.8 深 20米 二号墓 : 南北长 11.5 东西宽 8.95 深 16米 三号墓 : 南北长 16.3, 东西宽 15.45 深 17.7米 The pit of Tomb No I measures 19.5m from north to south, 17. 8m from west to west and 20m in depth The pit of Tomb No.2 measures 11.5m from north to south, 8.95m from east to west and 16m in depth. The pit of Tomb No 3 measures 16.3m from nort.. 2020. 10. 4.
여러 《한서漢書》와 《후한서後漢書》 《세설신어世說新語》 제9편은 제목이 품조品藻라 이는 곧 시류별 품평이라는 뜻이니, 이를 영어 옮김 classification according to excellence는 그 의미를 잘 살렸다고 본다. 그 해제에서 김장환은 "본 편에서 실려있는 고사는 부자·형제·동료·친구처럼 서로 관련이 있는 인물이나 기질이 서로 비슷한 사람들을 비교하고 품평하여 그 우열과 고화를 구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이라고 설명한다.(김장환 옮김 《세설신어 中》, 살림, 2002. 2, 초판 3쇄 319쪽) 총 88편이 실린 이 편 첫 화話는 다음이다. 텍스트는 여가석 찬 《세설신어잔소世說新語箋疏》다. 파란 고딕이 유의경劉義慶이 본래 쓴 《세설신어世說新語》 본문이며, 나머지는 유효표劉孝標 주注다. 世說新語箋疏 品藻第九 汝南陳仲舉,潁.. 2020. 10. 4.
성기 노출 농경문 청동기와 나경裸耕 기자가 참말로 환장할 노릇 중 하나가 자기 스스로 깨친 바를 내가 이리 밝혀냈노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점이니, 이 나경이 그러했다. 아래 2005년 내 기사에서 말하는 나경 습속을 《미암집》을 읽어내려가다가 발견하고는 내가 쾌재를 불렀거니와, 이걸 기사화할 뾰죽한 방법이 없었다. 내가 이런 걸 찾고 발견했노라, 이것이 바로 농경문청동기를 이해하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뇌까릴 수도 있지만, 그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할 수 없이 잔머리 굴리고 굴리다 찾은 방식이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동원하자는 생각이었다. 중박관장이라면 그런 대로 있어 보이고, 더구나 당시 이건무 관장은 주된 전공이 청동기였으니, 느닷없이 저 기사에 저리 끌려 들어왔다. 한데 이 양반 반응이다. 나중에 만났더니, 이 기사.. 2020. 10. 3.
같은 말이라도 종회냐 완적이냐에 따라 평이 다른 법 종사계[鍾士季: 종회(鍾會)]가 늘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 글을 한 장 썼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완보병[阮步兵: 완적(阮籍)]의 글이라고 하면서 글자마다 모두 뜻이 살아 있다고 하더니, 그것이 내가 쓴 것임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더군.” 鍾士季常向人道: “吾少年時一紙書, 人云是阮步兵書, 皆字字生義, 旣知是吾, 不復道也.” [《續談助》四] 1. 종사계(鍾土季): 종회(鍾會), 삼국 위나라 사람, 종요(鍾鑑)의 아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지(才智)가 있었다. 사마소(司馬昭)를 따라 제갈탄(諸葛誕)을 토벌하여 정서장군(征西將軍)에 임명되었으며, 촉나라가 평정된 뒤 사도(司徒)에 올랐다. 이는 《속담조續談助》가 인용한 동진 처사東晉處士 배계裵啓 撰 《어림語林》에 보인다. 김장환 옮김을.. 2020. 10. 2.
이여가爾汝歌, 황제와의 야자타임 오吳나라 군주 손호孫皓는 자가 손빈孫賓이며, 손종孫鍾의 현손이다. 진晉나라가 손호를 토벌하여 손호가 진나라에 귀항歸降하자, 진 무제武帝[사마염(司馬炎】가 손호를 귀명후歸命侯에 봉했다. 나중에 무제가 군신群臣과 크게 연회를 벌였는데, 그때 손호도 그 자리에 있었다. 무제가 손호에게 물었다. "듣자하니 오 땅 사람들은 를 잘 짓는다고 하던데, 경이 한 번 지어보시오.” 손호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좋습니다” 하고서, 무제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옛날에는 자네의 이웃이었지만, 지금은 자네의 신하되었네. (자네에게 술 한 잔 올려) 자네의 만수무강을 비네.”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아연실색했으며, 무제도 후회막급이었다. 吳主孫皓, 字孫賓, 卽鍾之玄孫也, 晉伐孫皓, 皓降晉, 晉武帝封皓爲歸命侯, 後武帝大會群臣,.. 2020. 10. 2.
“돈만 주면 잘 써주께”, 공정성 의심받는 역사가 진수陳壽 진수(陳壽)가 장차 ≪삼국지(三國志)》를 수찬하려고 할 때 정양주(丁梁州)에게 말했다. “만약 천 곡(斛)의 쌀을 구하여 나에게 빌려준다면, 틀림 없이 존공[尊公: 정이(丁廙)]을 위해 훌륭한 전(傳)을 지어 주겠소.” 하지만 정양주가 쌀을 주지 않아 마침내 그의 전이 없게 되었다. 陳壽將爲《國志》, 謂丁梁州曰: “若可千斛米見借, 當爲尊公爲佳傳.” 丁不與米, 遂以無傳. [《類聚》七十二] 1. 진수(陳壽); 자는 승조(承祚), 사공(司空) 장화(張華)가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효렴(孝廉)에 천거함으로써 좌저작랑(左著作郞)에 임명되었다. 《삼국지》를 수찬했는데, 당시에 '양사(良史)'라는 칭송을 받았다. 2. 정양주(丁梁州): 정이(丁廙)의 아들, 자세한 행적은 미상, 정이는 자가 경례(敬禮)이며, 형 정의(.. 2020.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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