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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카이사르에서 시저로, 시저에서 짜르로 우리가 잘 아는 줄리어스 시저는 말할 것도 없이 라틴어가 모국어다. 현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직접 조상이다. 시저 시대 문맹률은 압도적으로 높기는 했지만, 시저를 필두로 하는 식자층은 문자 기록 시대라, 우리한테 익숙한 그 라틴 알파벳으로 편지를 쓰고, 논문을 쓰고, 책을 썼다. 시저 풀네임은 라틴어 표기가 Gaius Iulius Caesar이다. 그가 정복한 땅 중에 Britannia가 있으니, 이는 곧 Britain, 영국을 지칭하는 고전시대 라틴어 지명이다. 나아가 그와 더불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형성한 로마 장군이 있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다. 근자 천병희 선생 옮김 타키투스 《게르마..
기자사회와 골프, 내가 본 꼴불견 나는 골프를 치지 아니한다. 친 적도 없으며 쳐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골프채는 딱 한번 잡아봤다. 1986년인가였다고 기억하거니와 대구 출신 부잣집 아들이 친구라, 그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골프장이 있어 한 번 가서 골프채 한 번 휘둘러봤다.남들 어찌 생각할지 모르나, 나는 골프에 대한 경멸이 있다. 골프 그 자체가 운동 혹은 레크리에이션으로 지닌 고유 가치를 부정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경멸한 것은 그것을 두고 벌어지는 행태였다. 내가 기자 생활 초입 시절, 젤로 꼴뵈기 싫은 놈들 행태가 부장 혹은 그 이상 놈들이었다. 물론 다 그러한 건 아니지만, 상당수 보직 간부라는 놈들이 틈만 나면 의자에서 자빠자거나, 깨어있을 땐 언제나 부장 자리에서 골프 스윙 연습만 했다.그때 나는 저들이 ..
"역사는 자고로 막장드라마여야..." 작년, 아니 재작년 어느날이었다. 아니면 그보다 조금 빠른 시기였을 수도 있다. 김옹 책이 조만간 나오리라 마침내 그날 밥상머리에서 그 마누라한테 처음으로 통보했더니, 아니 이 영감이 탱자탱자 놀더니만, 그래도 책은 썼나 보네? 하면서 이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가 싶더니, 무슨 내용, 무슨 책이라 묻기에 블라블라 했더랬다. 그 말에 마누라가 이내 눈을 부라리면서 일장으로 훈시하기를, "내가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궁중 암투나 여인 질투 같은 주제로 승부를 보라고? 그리도 모르느냐? 역사도 막장이어야 먹힌다는 걸?" 하되, 이내 翁이 밥맛이 떨어져, 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지 않겠느뇨 하며, 슬며시 숟가락을 놓고는 집을 나갔더라.
임금과 신하, 재물과 베품 "천하에 부릴 만한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마라. 그런 그를 알아보고도 부릴 만한 임금이 없음을 걱정하라. 천하에 쓸 만한 재물이 없음을 걱정하지 마라. 재물이 있어도 그것을 분배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음을 걱정할지니라" (天下不患無臣, 患無君以使之: 天下不患無財, 患無人以分之) 管子 牧民篇에서
혼돈에 말뚝박기 : 한문강독을 겸하여 현존 《장자》(莊子)는 내편(內篇) 외편(外篇) 잡편(雜篇)의 모두 3개편으로 구성되어 있음은 널리 알려진 바라. 이런 分章은 진(晉)나라 때 문사인 곽상(郭象. AD 252?~312)라는 자가 그 전대부터 전하는 《장자》 텍스트에 주석을 가한 《장자주》(莊子注)에서 비롯됐다. 이 《장자주》 이전 《장자》는 어떤 외양을 띠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장자》란 모두 이 곽상이라는 사람에게 뿌리를 둔다. 따라서 일반 시중에 선보인 모든 《장자》 텍스트는 편의상 ‘현통용본’이라 할 수 있으니, 실상 현재의 통용본 《장자》는 말할 것도 없이 이 곽상이 손을 댄 《장자주》와 동일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장자》는 도교가 국교가 된 당나라 때는 매우 존숭을 받게 된다. 왜 당나라가 도교..
《自述》6 대한국사 입대하기 직전이었으니 87년 9월 무렵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부천시청 인근 다세대 주택 막내 누나 집에 빌붙어 살았다. 조카딸이 이 무렵 이곳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이곳에서 전철이나 588 버스로 신촌을 통학했다. 번호도 요상한 588번 버스노선은 이 무렵에 생겼다. 이 버스가 부천을 관통해 강서구를 지나 신촌 Y대 앞을 오갔으니, 이 버스는 돌이켜보면 나를 위해 생겨난 듯하다. 지금의 부천시청이 이때 자리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87년 무렵 소재지는 원미동 쪽이었다. 원미 3동이 아니었나 싶은데 기억이 확실치 않다. 당시는 중동 신도시가 개발되기 전이고 이 일대는 온통 복숭아밭이었다. 부천을 복사골이라 하지 않는가? 그 9월 어느 날 나는 신촌이 아니라 부천에 있는데 김천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다..
생존보고 서안西安에서 살아 있음을 보고함
한문과의 만남 돌이켜 보면 내가 한문에 혹닉惑溺이랍시고 한 시절은 중2 무렵이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줄곧 말했듯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엔 책이라곤 교과서와 동아전과가 전부였으니 한문 교재라고 있을리 만무했다. 한데 어찌하여 그 무렵에 이웃집 형이 쓰는 고등학교 한문책(소위 말하는 한문2가 아니었다 한다)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거니와, 한데 또 어찌하여 이를 살피니, 그에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赤壁賦적벽부(전후편 중 전편이다)와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생이 뭘 알겠냐만, 그걸 번역문으로, 그리고 원문과 대략 끼워 맞추어 읽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그날로 단숨에 두 작품을 반복하여 읽고는 전체를 암송해버렸다. 지금은 적벽부라 해봐야 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旣望칠월기망이란 그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