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87 일제시대 족보가 갑을이 바뀐 이유 일제시대 대동보 기사를 옛날 신문에서 찾아보면그 시절에도 대동보는 만드는 과정에서 시끄러워서 대동보를 둘러싸고 소송전과 상호비방이 있던 기사를 보게 된다. 일제시대 들어오면서 족보의 규모가 이전보다 더 커져서그야말로 수십만의 종원을 거느리는 거질의 족보로 확대되고 이전과는 달리 족보를 만드는 측과 들어가는 쪽의 갑을이 바뀌게 되었는데이렇게 공수전환이 된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구한말 이후 호적이 혁파되면서 근대적 호적 기록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죽어라고 족보에 들어가려고 애쓸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는 데 있겠다. 조선시대만 해도 호적은 군역과 관련이 있고, 호적을 바꾸려면 족보부터 바꿔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족보에 이름을 올리려 하고 있었지만, 20세기 들어오면서 호적이 지금의 모양으로 바뀌면서 족보에 .. 2026. 7. 30. 족보의 팽창은 결국 양반수의 급증을 반영한다 우리나라 족보를 보면, 예를 들어 안동권씨 성화보, 문화유씨 가정보의 경우 이 족보들이 조선 전기에 나온 것임에도 권질 분량이 상당하다. 그 이유는 이 족보에는 자신들의 부계 직계만 수록한 것이 아니라, 사위 쪽 계보 등 자신의 부계 친족과는 무관한 사람들까지 몽땅 실어놨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이 지나면 부계 족보가 비로소 출현하기 시작하는데이 시점이 되면 우리가 아는 족보의 모양, 딸은 출가하면 사위 이름만 적고 그 이후 계보는 생략해 버리는 형식의 족보가 나오기 시작한다. 따라서 임란 직후의 부계 족보를 보면그 이전의 족보보다 권질이 훨씬 줄어든다. 특히 지금 후손 수를 많이 거느린 문중의 경우, 지금보다 훨씬 적은 분량의 족보를 꾸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부계만 담은 것도 있지만 지금은 같.. 2026. 7. 30. 족보는 어느 정도로 맞을까? 우리나라는 집집마다 족보를 들고 있다. 이것, 어느 정도로 맞는 이야기일까? 왠만큼 유명한 집안의 검증된 후손이 아니라면 누구든 지니는 의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좀 써 보면, 결론은 천차만별이라고 하는 게 옳다. 한국의 족보와 호적을 연구한 일본 연구자가 있었는데, 그 양반 왈 한국의 족보, 호적과 대조해 보니 의외로 정확하다. 이건 호적에 나와 있는 사람의 족보를 찾아 추적하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필자도 몇몇 경우 살펴 보았는데 호적에 사족으로 기재된 경우족보를 대조하면 거의 비슷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았으니. 그런데 문제는-. 호적에는 사족으로 기재된 사람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이 문제겠다. 예를 들어 170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남아 있는 호적에서 사족 숫자. 그렇게 많지 않다.우리나라는 180.. 2026. 7. 30. [배째!] 일제시대 족보 편찬 흔한 풍경 일제시대 일기를 보면, 그 당시 족보를 만들던 정황이 적혀 있어 흥미를 끈다. 모 집안에서 족보를 만들던 시점은 1930년대 중반-. 일제시대는 이전에 목판으로 찍던 족보가납활자로 전환하였던 시기이다. 인쇄가 깨끗하고 제본 등이 폼 나는 대신에, 가격이 많이 상승한 것 같다. 그 당시 족보를 만들던 정황이 일기에 적혀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 집안은 족보를 만들 때 비용이 넉넉치 않았던 것 같다. 가장 문제는 수단收單 작업에서 명단을 보내 오고는, [수단이란 단자를 거두어 들인다는 족보 용어다.]납부해야 하는 비용을 내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참 난처하겠다. 명단이 왔으니 뺄 수도 없는데 나 돈 몬냅니다 하고 뒤로 자빠진 것이다. 그래서 일기를 적은 이가 대금을 받기 위해 후손들을 만나.. 2026. 7. 29. 우리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영조대왕 우리 역사를 보면 일반적인 평판보다 별로 볼 것이 없는 양반도 있고,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도 있다. 대표적으로 퇴계, 율곡, 다산 등 성리학자들은우리가 아는 것 만큼 학문의 영역에서는 대단한 양반들이 아니다. 성리철학 등에서는 중국 북송대 학자들의 이야기를 하드카피하다시피한 것이 많고, 소위 실학자들도 독서의 범위가 넓지 못해 동시기 일본보다도 뒤쳐진 양반이 대부분이다. 그에 반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양반도 있다. 영조대왕 같은 양반은 명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양반이다. 이 양반의 치세에 조선사회의 근본 틀이 바뀌었다고 해도 되고, 영조의 치세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며, 이러한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 2026. 7. 28. 국민국가는 공동운명으로 묶인 사람들의 결합체 국민국가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설명이 있겠지만 단순화하여 설명하면공동운명으로 묶인 사람들 결합체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정부의 성공에 일본 열도에 사는 사람들 생사가 달렸다고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겠다. 만약 18세기 초엽, 노비가 바글바글하던 시대의 조선에 노비더러 양반이 너하고 나는 공동운명체라고 해 보자. 노비가 뭐라고 생각할까? 아, 내가 노비이긴 하지만 외적은 먼저 물리쳐야 하지요, 하고 나서는 것이 일반적일까. 이것을 일반적으로 놓고 당연하다고 본다면, 그 안에 국민국가로 가는 과정을 진지하게 고찰할 동기는 사라진다 하겠다. 한국사에서 보면, 18세기 초엽까지는 도저히 공동운명으로 묶일 수 없는 이들이 살던 나라에, 1919년, 같은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사람.. 2026. 7. 27. 이전 1 ··· 4 5 6 7 8 9 10 ··· 9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