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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616

조선시대 자주 먹은 국수 흔히 조선시대는 국수가 귀한 음식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말 그런가? 조선시대 일기 보면 국수, 필자보다도 자주 먹는 것 같다. 일기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왠만한 일기 보면 다 그렇다. 틈만 나면 먹는다.물론 국수의 재료가 밀가루일지 메밀일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조선시대 일기 보면, 국수가 귀한 음식이었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이다. 잔치 때나 먹던 음식이었다는 말도 근거가 없고, 잔치와는 무관하게 자주 일기에 등장하는 음식이다. *** [편집자주] ***헐벗고 주린 사회 특징이다.근대기 수제비를 떠올리면 된다.간편성 때문이다. 2026. 8. 16.
묵재일기의 특이한 점 : 육류 유통의 경우 묵재일기는 식생활과 관련하여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비망기 삼아 써둔다. 1. 연어가 나온다.구체적으로 강원도 간성에서 온 이가 말린 연어를 묵재에게 준다. 연어가 나온 것은 함경도 지역에서 연어를 잡던 부북일기 빼고는 처음인 것 같다. 강원도 간성 즈음에서도 연어를 잡아 내륙으로 들고온 사례가 되겠다. 2. 청어 과메기:16세기 중반 일기에 이미 청어 과메기가 상당량 선물로 유통되고 있다. 과메기 말고도 청어는 아마도 가장 자주 나오는 생선이 아닌가 싶다. 자세한 것은 통계를 돌려봐야 하긴 한데, 다른 일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조기 이상 나오는 듯하다. 경상도 지역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3. 꿩보다 닭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닭이 꿩과 거의 비슷하게 나오는 것 같다. 필자가 섭렵한 조선시대 일기 .. 2026. 8. 16.
조선시대 일기는 다이어리다 조선시대 일기 중에는 일부러 멋을 내어 여러 가지 감회나 심지어는 시까지 적어 놓는 경우도 보는데, 이런 부분은 사실 적어도 필자에게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없다. 정말 중요한 부분은 이 일기를 남긴 분의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100년, 200년, 300년이 지나면 사료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은작심하고 쓴 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의 노동을 기록해 놓은 다이어리, 바로 그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렇다. 조선시대 무슨 무슨 문집 남긴다고 목판을 10000장씩 파서 그나마 얼마 없던 조선 산의 나무를 작살 내는 것보다는 소박하게도 쓰던 종이 모아 공책을 만들어 적어 내려간 일상의 다이어리 이것이 더욱 소중한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 2026. 8. 15.
마누라한테 인분을 먹인 돌팔이 묵재 이문건의 의술 (1) 묵재는 자신이 이른바 유의儒醫로, 의학을 독학한 양반인 바, 한의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던 듯 하다. 때문에 하루 일기는 오늘 약 먹었다로 시작하며 누구누구 이 약을 줬다 누구누구 저 약을 줬다로 하루 일기가 거의 끝나간다. 이 분은 오랫동안 치질을 앓고 있었던 듯한데이를 치료하는 약도 자가처방하여 이것저것 장기 복용하는 바, 계속 낫지 않고 묵재를 괴롭혔다. 이 분 부인 되는 분은 피부병으로 앓다가 그만 목숨이 경각에 이른 상황까지 몰렸는데, 이 약 저 약 써 보다 마지막에는 묵재가 최후의 수단으로 부인에게 인분을 먹이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이 묵재의 부인되는 분이 여걸이라, 아픈데 이것저것 먹이다 똥물까지 먹인다고 화를 버럭냈는지, 두 분은 이것 때문에 크게 싸운 모양이다. 그래도 부인이 고생하.. 2026. 8. 15.
선물경제의 중심으로서의 관청 16, 17세기 우리나라 경제를 화려하게 수 놓은 선물경제-. 이 선물경제는 자급자족적 경제를 유지하는 개별 호구들이 모자라는 물건들을 폼나게 조달하는 방식으로 서로 선물의 형식을 취하되 실상을 보면 물물교환이라-. 이러한 물물교환의 체계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인데, 예를 들어 소를 한 마리 누가 잡았다, 하면 요즘 같이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선시대 일기 보면 허구한 날 설사한다는 이야기가 페이지마다 나오는 판이니이처럼 설사가 많은 이유 중에는 당연히 상한 음식을 먹어서 그런 것이 가장 이유가 컷을 것이니,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상하기 전에 먹어치워야 하니 선물 형식을 띠고 네트워크를 빠른 속도로 소고기들이 퍼져 나가곤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그 소고기 댓가로 필수품이.. 2026. 8. 15.
양상이 전연 다른 광무호적과 융희호적 흔히 인용되는 자료 중에 융희 4년, 1910년이니 나라가 망할 무렵 내무 경찰국에서 호주 직업을 조사했는데여기 양반이 1.9프로라고 나왔다고 해서 이를 조선이 망할 무렵의 양반 비율이 1.9프로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보는데천만의 말씀이다. 일단 조선시대 호적에도 그 어느 구석에도 "양반"이라고 자기 신분을 적는 법은 없다. 조선시대 호적은 철저히 양천제에 기반하고 있개 때문에 벌열가문의 후손이건 농민인 평민이건 간에 호적에는 철저히 직역으로만 파악된다. 호적에는 위에 쓰듯이 상업, 농업, 공업 이런 것도 없다. 요즘으로 치자면 공무원 자기 직위를 적거나, 아니면 공무원 준비생, 사시 합격생, 사시 1차 합격생, 그리고 나머지는 소총수, 포병 등등 자기 직역을 적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호적 조사.. 202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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