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87 우리나라 족보에는 왜 이렇게 파가 많을까? 물론 오래된 집안이이 파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세기 이후 양반집 족보들이 권질이 엄청나게 팽창해서 그렇지 지금 수십만을 거느리고 있는 집안도 17세기까지만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권질이 매우 소략한 경우가 많다. 지금 수십 개 파가 존재하는 집안도 17-18세기 족보를 보면 그 안에 파가 몇 개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새로운 파가 유입되어 늘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족보에 끼어들어올 때 개인이 족보를 사거나 위조해서 들어오는 것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족보의 권질이 팽창하는 과정을 보면 이렇게 한두 명 끼어 들어오는 것보다.거의 하나의 문중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다른 집안 족보에 새로운 파로 끼어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오.. 2026. 8. 6. 선불로 준 양반의 특권 조선시대에는 양반은 군역을 지지 않았다. 주의할 부분은 양반이 군역을 안 지는 것은 양반이라 특권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래는 조선은 양천제로서, 양반이 군역을 지지 않는 것은, 사족으로서 과거를 준비하고 급제 후에는 관직을 받아 봉직하니이것으로 군역은 퉁친다는 의미가 강했다. 특히 유학 등 과거 급제 전의 양반 직역자들이 군역을 빠지는 것은, 원래는 이들이 과거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사족에게 배려하는 의미가 컸다는 뜻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 후기가 되면서, 선의를 반복하면 권리인 줄 안다고 했던가, 개꼬리가 몸통을 휘두른다고 원래는 사족을 위한 배려였던 것이 사족의 권리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군대를 빠져야 양반인 것으로 되어 버린 것이 바로 조선후기의 상황인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시대 양반.. 2026. 8. 5. 임란 당시 의병은 원래 관군이어야 하는 사람들 임란 당시 의병이라는 것이의병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는 안 나가도 되지만 대의 명분상 참전한다는 뜻이 있는지라, 그런데 과연 임란 당시 의병이 문자그대로 의병이 맞는 것일까일본의 경우를 보면 땅을 한 조각이라도 받으면반드시 전쟁상황이 되면 수하를 끌고, 혹은 자기 한 몸이라도 무장하고 참전해야 했다. 땅이란 게 전시 참전의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서양 중세도 그렇다. 분봉하고 땅을 받는 대신에전시에 참전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는 호적과 군역이 묘하게 되어 있어, 양반은 군역에서 제외되고, 노비는 양반 수하에 있다 하여, 개인 재산이라 해서 또 제외하고 보니, 남은건 평민인 농민들밖에 없고재수 없이 걸린 하층 양반 찌끄러기들만 정부의 정책이 좀 빡세지만잡혀서 군역을 지는 판.. 2026. 8. 5. 임진왜란 - 의병은 도대체 누구였는가? 학계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게 정말 궁금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은 도대체 어떤 구조였을까? 일견해서는 구한말 의병처럼 국권 상실의 위기에서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임란 당시 조선사회는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한 사회가 아니었다 할 것이다. 전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노비인데,노비하고 양반이 같이 들고 일어나 연대해서 의병을 만들어 싸웠겠는가? 일본도 전국 시대 내내 그렇게 싸움이 있어도 농민들은 무사들 싸움을 구경이나 할 뿐이었다는 것인데, 과연 노비들이 임란 때 왜병이 쳐들어왔다고 우리나라 구하자고 양반 모시고 같이 의병을 했을까? 국민국가라는 것이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내가 사는 나라가 내 나라라는 의식이 있어야 하는 바, 임란 당시에는 그런 것이 가능한 사회.. 2026. 8. 5. 1930년대 구경조차 힘든 양계장, 박정희 시대 와서야 비로소! 일제시대 신문기사를 보면 양계장은 식민지시대 초기에도 거의 안 나온다. 그러다가 1930년대부터 양계장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이 운영되고 있는 양계장에 대한 기사가 아니라, 해외 양계장 견학, 양계를 하는 기술에 대한 교육 기사 등이 대부분이라, 한글 신문이 모두 폐간되는 1940년까지도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 조선시대처럼 닭을 마당에 놔서 기르고, 닭둥지를 시렁에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닭을 대량으로 키우기 시작하는 양계장은 1930년대에 비로소 태동을 하다가, 해방 때까지도 그런 지지부진한 상태로 제대로 양계장을 운영하지 못한 채 끝난 셈이 되겠다. 양계장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그 중에서도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1960년대 잘살아보세 소리가 농촌에 높던 시기이다. .. 2026. 7. 31. 신문, 일제시대-조선시대 일기에 해당하는 사료 일제시대 조선시대 일기에 해당하는 사료가 일제시대 일기일까? 아니다. 일제시대가 되면 조선시대 처럼 일기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이번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료가 따로 있다. 바로 일제시대 신문이다. 이 신문이라는 녀석은 심지어는 광고까지도 당시의 상황을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일제시대를 이해하는데 틈나는 대로 당시 신문을 보는 것 처럼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편집자주]***특히 1920년대 나란히 창간한 조선 동아는 당대 실록이다.두 신문 식민지말 상황이 맘에 안든다고 해서 황국신문이니 어쩌고해서 갖은 욕을 퍼부어대나 그런 시기까지 그 시대를 오롯이 담아내는 실록이다.지들 맘에 안드는 논조편다고 없어져라 저주하는 이가 많은데 실록 절반을 잃는 일이다.한겨레 오마이뉴스로 당대를 읽는다?.. 2026. 7. 31. 이전 1 2 3 4 5 6 7 8 ··· 9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