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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87

국민국가는 그냥 오지 않는다 일본에서 메이지시대는 국민국가라고 부른다. 우리도 비록 식민지시대에서 맞이하기는 하지만, 20세기 초반 1910년대에 이미 식민지형 국민국가의 형태가 완연하다. 이 변화가 얼마나 극적인가 하는 것은 삼일운동이 일어난 시점, 1919년에서 불과 200년만 시계를 거꾸로 감아 1719년이 되면향촌사회에 노비를 수백명씩 거느린 양반들이 즐비한 시기였다.앞선 글에 김단장께서 양반 하나에 노비 여섯을 말씀하셨지만, 사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노비 여섯 정도 거느린 양반이란 사실 양반중에서는 극빈층에 해당한다. 18세기 초반만 해도 동네마다 수백명의 노비를 거느린 대농장 소유자가 수도 없었던 탓이다. 한 사회가 소수의 지배층과 빈약한 평민, 그리고 다수의 노비=노예가 존재하는 사회가 어떻게 그 전체를 하나의 국민국.. 2026. 7. 27.
17세기는 18-19세기와 다르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사는 필자가 누차 여기에 썼지만, 17-19세기를 하나로 뭉뚱그려 대충 얼렁뚱땅 상황을 기술하는데, 예를 들어 이렇다. 조선시대 상품화폐경제, 자본주의 맹아 등을 이야기 하면서 17-19세기로 뭉뚱그려 쓰면서실제 증거는 19세기 것을 들이 미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17세기부터 시작된 것처럼 기술한다. 필자가 각종 일기를 본 바로는, 우리나라 17세기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이 시기는 좋게 포장해서 선물경제, 물물교환이 대부분으로돈이 돌지 않던 시기였다. 이 시점은 18-19세기와 함께 묶어서는 안된다.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조선후기의 분기, 기점은 17-19세기를 한데 묶어서는 안되고, 18세기 중반 이후를 따로 뗴서 앞과 분리해서 설명해야 하고, 그 기점이 이 언저리라는 것.. 2026. 7. 27.
반일종족주의 친일종족주의 다 좋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앞뒤는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호적 일기만 들여다 봐도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소리를 하는데생각은 비우고 따라 하는 것도 유분수지. 필자가 이 문제에 관심이 있고 목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에게 한 가지 조언 하자면, 조선시대 호적 일기 한 번 펴보지도 않고 이차 사료도 아니고 남들이 써 놓은 이야기 인용에 인용에 인용이런 책을 읽고 목소리 높여 논쟁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가끔 이 문제에 끼어 드는 이들 중 학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조선시대 호적 한 번 일기 한 번 보지 않고 끼어든 것이 아닌가의심스러운 사람도 많다. 필자도 굳이 지금 여러가지 학계에서 주장 되는 논의 중친일적 조류가 있는 이야기를 애써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만, 최소한 무슨 이야기를 하던간에 앞.. 2026. 7. 27.
조선후기의 촛점은 민족모순인가 계급모순인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은 80년대에도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화두였다. 한국이 이렇게 비실거리는 것은 식민지-혹은 반식민지 수탈 때문인가, 아니면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 때문인가,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한국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이외세를 몰아 낼 것인가, 정품 노동운동인가로 나뉘어지고, 그에 따라 소위 말하는 NL과 PD가 분기하였다. 둘 다 한국이 어차피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꿈깨라. 어차피 한국은 좀 있으면 망하는데 식민지이기 때문에 망하느냐, 아니면 노동자가 억압되는 문제로 망하는가 하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으로, 이 사이에 논쟁이 바로 유명한 사회구성체 논쟁이 되겠다. 이 사회구성체 논쟁이란 것은 필자가 여러 번 썼지만, 한국사회를 분석하여 어떻게 혁명을 할 것인가를 논쟁.. 2026. 7. 27.
한국사 주인공으로 한 번도 등장해 본 적 없는 노비들 필자가 아는 한 노비들은 우리나라 역사 기술에서 과거는 포함 심지어는 21세기까지도 한 번도 역사의 주체로 설명되고 기술되었던 적이 없다. 필자가 기억하는 바 노비가 우리 사회의 화제이자 스폿라이트를 받던 적은 딱 두 번 있었으니, 웃기게도 둘다 소위 K 드라마 관련이라, 한 번은 바로 "추노" 두 번째는 바로 "미스터 선샤인"이다. 이 두 드라마의 주인공 언저리에 있던 인물들이 바로 노비로 이것도 드라마라 한때 화제가 반짝 일었을 뿐,전 국민이 우리 조상만큼은 양반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 그런지 그 후에도 노비는 한때 전 국민의 절반에 육박하는 인구수를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제대로 스폿을 받은 바가 없다. 로마시대는 노예가 굴렸다고 전해지는 바, 그 당시에도 노예의 비율은 전체 인.. 2026. 7. 26.
17세기 조선시대 호적은 국비로 인쇄해야 한다 17세기 우리나라 조선시대 남아 있는 호적은국비로 인쇄하여 무료로 전 국민에게 배포하여 뿌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는 우리 조상이 양반이라는 사람들이 전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모순, 조선후기를 "민중사"로 봐야 한다는 막장 주장, 한국사는 일찍부터 "민족사"였다는 엉터리 주장이 발 붙일 곳 없어지며, 17세기에는 이미 자본주의 맹아가 싹텄다는 엉터리 이야기, 지주전호제 소작제가 이미 그 당시 성립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발 붙일 곳 없이 사라지게 된다. 한 마을에 몇 안 되는 양반이 수백 명 끝없이 이어지는 노비를 한 집에 거느리고, 그 많은 사람이 "양반 1 호"로 편제되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글 보는 분들 절대 다수는 그 조상이 18세기에 노비 혹은 잘 해야 평민이었지.. 2026.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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