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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616

묵재일기에 보이는 문정왕후 섭정 당시의 동향, 율곡의 출가 묵재일기에는 문정왕후 섭정 당시의 동향이 보인다. 특히 이 당시 승과 설치와 보우의 활약 등 불교 복구의 움직임이 향촌 사회에까지 침투한 정향을 엿볼 수 있다. 이 당시 멀쩡한 사족이 느닷없이 출가를 한다던가, 매달리는 처자를 뿌리치고 승려가 되는 사례도 적어 놓았는데, 조선 건국이후 불교가 향촌사회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어이 부분에는 사족들도 예외가 없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시점이 무려 16세기 중반인데, 이 당시까지도 묵재의 집안인 성주이씨는 영당을 절에 두고 조상 초상을 모시고 정기적으로 재를 올리고 있었던 정황이 있다. 이 당시 주자가례를 사족들 사이에도 관철하는데 애를 많이 먹고 있었는데, 그런 정황을 이 일기에서도 볼 수 있겠다 할 것이다. 한마디 첨언하면, 율곡도 젊은 시절 어머.. 2026. 8. 20.
박, 수박, 오이, 동아(동과), 호박 자, 이제 박, 수박, 오이, 동아(동과), 호박의 생물학적 관계를 알아보자. 식물에는 박과 식물이 있는데, 그 박과 식물 아래에 박, 수박, 오이, 동아(동과)가 한데 모여있고, 이와 떨어져 호박이 있다. 박, 수박, 오이, 동과는 서로 형제격이 되고, 호박은 이들의 사촌격이 되는 셈이다. 이 중에 호박은 우리나라에 도입이 늦어 17세기나 되야 제대로 재배가 시작되지만, 박, 수박, 오이, 동과 등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박, 수박, 오이, 동과 중에 박과 동과는 현재 거의 재배되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며, 수박, 오이만이 남아 우리 식탁을 지킨다. 오늘날 우리는 수박, 오이에는 익숙하지만, 박과 동과 맛은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 이지만, 대체로 박과 동과는 수박의 빨간 부분 말고 흰색 껍질 맛.. 2026. 8. 20.
당연히 16세기엔 없는 호박, 그 자리를 차지한 동과 16세기 일기를 보면 흥미롭게도, 우리들이 요즘 즐겨 먹는 호박이 없다. 당연한 것이 호박은 17세기 경이 되어야 우리나라에 도입된다. 임란 이전 일기에는 당연히 호박이 없는 것이다. 반면에 호박을 대체할 만한 것이 뭐가 있는가 하면, 동아 (동과)가 요즘 호박만큼 자주 소비된다. 요즘 동과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임란 이전만 해도 호박 만큼이나 자주 먹던 채소다. 16세기에는 고추도 없으니, 요즘 우리가 아는 농산물과는 많이 다르다 할 것이다. 아, 수박은 많이 나온다. 수박은 심사임당의 그림에도 이미 나오니, 당연한 이야기겠다. 2026. 8. 19.
"소금에 절인"은 생선에 반드시 부기한 묵재일기 묵재일기에 보면 흥미로운 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무대가 경상도인 때문인지 청어가 많이 나오는데, 과메기가 이미 이 일기에는 나온다고 쓴 바 있다. 당연히 과메기라면 말려 건조한 생선일진대, 묵재일기에는 소금에 절인 경우에는 그 생선 이름 앞에 염장했다는 이야기를 꼭 적어 둔 것 아닌가 싶은 느낌이 있다. 다시 말해 말려 만든 건조 생선이 아니고 염장한 경우에는 소금에 절였다는 이야기를 꼭 적어둔 것 같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판관이 소금에 절인 은어 20마리를 보냈다"와 같은 식이다. 반면에 말린 것이 분명한 생선은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아, 염장한 것과 건조한 생선은 분명히 구분해 썼다는 생각이다. 필자의 느낌이로는 큰 크기 생선은 염장을 잘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예를 들어 묵재일기에는 ".. 2026. 8. 19.
양반은 쌀을 먹어야, 실제는 잡곡 소비가 많아 일본에서 전통시대 쌀에 대한 집착은 대단해서, 사무라이들의 경우 녹봉도 쌀로 받지만, 실제로 먹는 밥상도 거의 잡곡을 섞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사무라이는 밥은 쌀밥을 올리지만 다른 부식이 거의 없어, 비타민 결핍으로 각기병을 앓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우리나라에 일본 사무라이에 대응하는 계급이라면 결국 사족들인데, 이들은 일본 사무라이보다는 잡곡을 더 먹은 것으로 보이니, 필자가 행한 안정동위원소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 사족들은 일본 사무라이에 비해 잡곡을 더 먹고, 단백질도 더 섭취한 것으로 확인한 바 있다. 그렇다면 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밥 안에 꽤 많은 잡곡이 섞여 있었을 것이라 보지만, 훙미롭게도 우리나라 사족들 일기에는 서로 간에 선물로 주고 받는 물품 목록을 보면, 쌀.. 2026. 8. 17.
낙방한 시험지는 아무나 보는 조선시대, 폐지 혹은 이면지 활용 조선시대는 종이가 귀한 시대다. 필자가 어렸을 때도 그랬다. 필자 어렸을 때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재생지인 갱지를 한 장에 얼마, 이렇게 계산해서 팔았다. [이른바 마분지 계통 종이다. 섬유질이 그대로 남아서 참 자연적이었다...편집자주] 돈이 생기면 이걸 사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고 하면서 놀았다. 조선시대는 종이가 더 귀한 시대인지라,특히 지필묵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족들은 종이가 더 중요했다. 묵재일기에는 묵재가 종이를 조달하는 방법이 다른 일기보다 더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그 자세한 내역은 나중에 써보기로 하고, 그 중 흥미로운 것을 보면, 향시가 끝난 후 그 시권을 그 동네 사족들에게 쓰시라고 나눠주는 것이다. 물론 낙방한 시권이다. 이 시권을 한 뭉치 받아서 묵재는 빈 부분을 잘라내 쓰.. 2026.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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