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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Puyi와 그의 첫 번째 아내 완룽Wanrong 푸이는 두 살에 황제가 되었다.그리고 어른이 되기 전에 모든 것을 잃었다.푸이는 1906년에 태어나 1908년에 즉위하여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하지만 1912년, 청나라는 막을 내렸다.신해혁명으로 제국 통치는 종식되었고, 중국 황제는 명목상 황제일 뿐 실권은 없는 어린아이가 되었다.1922년, 겨우 열여섯 살이었던 푸이는 완룽 황후와 결혼했다.그녀는 교육을 잘 받았고, 현대적인 감각을 지녔으며, 유력한 만주족 가문 출신이었다.그들의 결혼식은 성대했지만, 허무했다.그들은 명목상의 황제와 황후였을 뿐, 이미 붕괴 직전인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1924년, 그 환상마저 깨졌다.그들은 자금성에서 쫓겨났다.황좌도, 조정도, 제국도 없었다.세상은 이미 그들을 잊고 흘러가 버렸고, 두 젊은이는 그저 살아.. 2026. 5. 10.
영남 사족의 기원[5] 길재 이후의 듣보잡이었던 도통 요즘은 사림을 설명하면서 정몽주, 길재에서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로 이어지는소위 사림의 도통에 대해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하니 우리는 이 양반들이 원래부터 대단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영남 사류들이 유종으로 들고 나온 정몽주, 출발은 별볼일 없었지만 훈구파의 시대에 이미 불사이군의 상징으로 추앙된 길재와는 달리 그 이후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등은 도통을 이었다고는 하지만 이 양반들은처음 이 주장이 나왔을 당시만 해도 조선의 중앙 정계의 사류들이 볼 때는듣보잡 아니면 평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 길재까지야 어떻게 봐 줄 수 있다 해도그 아래 학맥은 영남의 사류들이 주장하듯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지반신반의하거나 백안시하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은위로 정몽주, .. 2026. 5. 10.
앤 불린은 헨리 8세를 유혹한 무모한 십대? 혹은 성숙한 30대? 위키피디아 앤 불린Anne Boleyn 영문 표제 항목 기술을 보면 그녀의 출생 시기가 요상하게 다음과 같이 표기된다.c. 1501 or 15071501년 무렵 혹은 1507년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 두 가지가 대립한다 할 수 있거니와, 고대 인물도 아니요, 역사 기록이 풍부한 근대 초기 인물이요, 무엇보다 일국의 왕비를 역임했는데도 이런 현상은 왜 빚어질까? 1507년 출생은 오랫동안 많은 역사가가 반복했다.이 시점은 주로 1600년대 초 고대 유물 연구가 윌리엄 캠든William Camden의 주장에서 비롯한다.문제는 캠든이 앤이 죽은 지 한참 후에 글을 썼고, 볼린 가문에 대한 그의 정보 중 일부는 이미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이다.현대 역사가들은 이제 대부분 1507년이라는 날짜를 부정한다.줄리아 폭.. 2026. 5. 10.
영남 사족의 기원[4] 문묘종사를 공략하라 영남사족이 조선전기의 고립을 벗어나 중앙정계로 진출하게 된 데는문묘종사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가 되면 문묘종사는 그야말로 정권의 승패를 결정하는 사족들의 트로피가 되어엄청나게 중요한 존재로 부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조선전기만 해도 문묘종사는 대단한 것은 맞기는 하지만, 그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조선이 건국했을 때 고려왕조 당시 문묘에 종사된 사류는 딱 세명 있었으니, 설총, 최치원 그리고 안향 (안유)이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한 후 권근을 종사하자, 도은을 종사하자하는 논의도 있었지만, 전부 나가리 되고 중종 때까지도 추가로 문묘에 종사되는 이 없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바라보는 것 같은데, 만약 조선전.. 2026. 5. 10.
영남 사족의 기원[3] 길재와 정몽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남 사족들의 경우, 다른 지역과 달리 이 지역에 고대국가가 성립한 이후 큰 변화 없이 향촌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어 조선 전기까지 내려왔을 것이라 하였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역에 성립한 고대국가가 삼국통일을 하고, 후삼국 쟁패기에 최후 승자인 기내 지역의 고려왕조에 요즘으로 친다면 우호적 합병 (friendly M&A)을 한,간단하다면 간단한 두 번의 정치적 계기에서 보여준 이 지역의 선택은 소백산맥을 경계로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적 고립과 함께 정치적으로도 장기간에 걸쳐 향촌 지배체제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내려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조선 전기를 보자. 조선 전기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기전지역의 사족이 우위를 점하여 성립한 정권인데, 고.. 2026. 5. 10.
영남사족의 기원[2] 그 많은 분급 하사 토지는 어디에서 왔을까? 영남사족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자면빼 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지역은 외부에 의해 해체된 역사적 계기가 이천년래 한 번도 눈에 띄지 않는 점이라 하였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생각해 보면 이렇다. 당장 삼국 통일 이후 통일신라는 어쨌건 제쳐 두고라도, 고려 전기 전시과제도, 조선전기의 과전법 체제두 체제 모두 국가가 사실상의 소유권과 수조권을 모두 쥐고 있는 땅이 반드시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 같다. 한 나라가 건국한 후 이런 식의 공전에 기반한 토지분급제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예를 들어 고려의 전시과 제도-. 도대체 무슨 땅을 가지고 전시지를 나눠주겠는가 말이다. 특히 우리는 고려 전기만 해도 호족의 연합체제로 국가의 권력이 향.. 2026.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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