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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핵폭탄 던진 중국고고학, 30만년전 목제 도구 발견 운남 간탄칭 유적서 식물채집 도구 35점 무더기 보고 30만년 전 이 목제 도구들은 동아시아 호미닌들이 호숫가에서 계획적으로 채집 여행을 하며 특정 목적에 맞는 도구를 설계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에서 구석기 시대 목제 도구 35개를 발견됐다. 이 도구들은 뛰어난 장인 정신과 고도의 인지 능력을 보여주며, 고대 인류가 무엇을 먹었을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한다. 7월 3일 목요일 사이언스(Science)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30만 년 된 이 도구들은 동아시아에서 기록된 가장 오래된 목제 유물다. 이 도구들에는 소나무와 hardwood로 만든 파기용 막대기digging sticks, 뿌리를 자르는 갈고리hooks for cutting roots, 땅에서 식용 식물을 캐내는 작고 뾰.. 2025. 7. 5.
김홍도 그림의 농민(?) 들 이 그림-. 김홍도의 타작도는 "농민"과 "이를 감독하는 마름"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본다. 이것이 농민과 마름의 모습일까? 필자가 보기엔 이건 주인인 양반과 양반에 귀속된 노비다. 쇄미록에 보면 노비를 들에 일시키고 감독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저 삐딱하게 누워 술 한 잔 걸치며 감독하는 이는마름으로 보기엔 석연찮다. 필자 생각엔 아무래도 주인 양반 같고 타작하는 일들은 노비가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뜻이다. 2025. 7. 5.
1700년대까지도 노비가 생산의 기초 우리나라는 별로 유별날 것 없는 동네의 조선시대 호적을 봐도 1700년대에는 소위 양반에 속할 호주의 아래에 평균 5-6명의 노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8세기 초까지도 노비 비율이 40프로는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필자가 직접 본 어느 동네의 조선시대 호적도 그랬다. 1700년대 초반, 그 동네에는 인구의 상당수가 노비였다. 이 시대가 언제인고 하니 숙종 연간이다. 숙종 임금의 시대까지도 우리나라에는 인구의 상당수가 노비였던 셈이다. 1700년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노비의 숫자가 급감하는 것 같으니대체로 영 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마을의 인구 구성은 급변한 것 같다. 같은 동네의 1800년대 초반 호적을 보면동네가 완전히 달라져 있다. 노비는 거의 유명무실해지고,1700년대까지도 몇 안 되는 .. 2025. 7. 4.
말 5,000마리를 평양에서 키운단 말인가? 남월을 강제 병합한 서한 무제武帝 유철劉徹은 내친 김에 흉노의 왼팔을 잘라버린다는 명분으로 원봉元封 2년(B.C.109), 그 병력을 그대로 위만조선으로 향햐게 하고선 그 정벌에 나섰지만 초반 정세가 호락호락하지 않아 연전연패했다. 결국 양국은 화해 제스처를 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한 왕조에서는 위산衛山이라는 이를 부절로 삼아 강화 담판을 벌이게 한다. 다급하기는 위만조선 실권자 우거右渠 또한 마찬가지라, 적당한 수순에서 항복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공물을 바치는 선에서 강화조약을 체결키로 한다. 이에 위만조선에서는 사절단으로 태자를 보내 들어가 입조케 한다.이 정도에서 대치 정국을 마무리하려 했다. 한 왕조에서도 무리하게 계속 밀어부쳤다가 개망신당할 지도 모르고, 더구나 전선 사정이 좋지도 않는데다.. 2025. 7. 4.
보티첼리 상념하는 이 그리고 서케 르네상스 미술계를 수의계약으로 주무른 저 유메이나 페인터 보티첼리 작이라 세부다.내가 그의 미술을 논하고저 저 초상을 끄집어낸 것이 아니니 바로 본론한다.이저 머리스타일은 이를 부른다.뭐 깨끗하다고? 아름답다고? 개뿔! 중세라 보건상태 개판 일보전이었을 것이니 제아무리 관리한다 해도 이 혹은 서케를 막을 순 없다.보나마나 이가 드글드글했으리라.몸만 씼음 뭐하는가?방구석은 온통 벼룩천지라 유럽은 요새도 재수 없음 벼룩이 간 신세 되기 십상이라 특히 에어비앤비 투숙은 벼룩 조심해야 하니 아예 떠날 때 ddt 준비하는 것도 한 대처방법이다.에프킬라가 벼룩한테도 저승사자인지 모르겠으나 아예 방구석 들어가자마자 소독 쏵 해놓고 나갔다 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각설하고 저 머리카락 말이다.도대체 저들은 이 문제를 어.. 2025. 7. 4.
타지키스탄서 여성 이름이 새긴 2,000년 된 쿠샨 왕조 물항아리 타지키스탄 남부에서 고고학자들이 희귀한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을 지닌 2,000년 된 점토 물항아리를 발견했다. 이 물항아리에는 여성 소유자 개인 이름을 새겼으며, 그 이름은 '사그키나Sagkina'였다. 사르반드 마을 인근 할하자르Khalkhajar 유적에서 발굴한 이 두 개 손잡이 달린 물항아리는 한때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대부분 지역을 지배한 강력한 국가 쿠샨 제국Kushan Empire(서기 1~3세기) 시대 유물이다.타지키스탄 국립 박물관이 발표한 이 발견은 이 지역 고대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돌파구로 평가받는다. "이 물항아리Water Jug는 여성 사그키나의 것이다." 고대 박트리아어에 그리스 문자를 변형해 쓴 이 물병 비문은 다음과 같다. "eiado gō(l)z[o ]sid.. 2025.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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