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5579 [1차 고려거란전쟁] (4) 버선발로 뛰어나가 서희를 맞은 성종 일단 한 번 붙어나 보고 강화를 하건 땅뙈기를 떼어주건 하자는 서희의 제안에 순식간에 조정 여론이 바뀌었으니, 민관어사民官御事를 지낸 이지백李知白 또한 서희에 합류해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린 까닭에 이몽전이 돌아갔으니 뭔가 고려 측 움직임을 보고 다음 타켓을 정하고자 한 소손녕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중랑장中郞將인 대도수大道秀와 낭장郞將인 유방庾方을 앞세운 고려군이 거란을 격퇴한 것이다. 중랑장 대도수는 대씨라는 성으로 보아 볼짝없이 발해에서 넘어온 사람이다. 이리 되자 외려 겁을 먹은 쪽은 소손녕이었다. 고려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공략한 안융진에서 패했으니,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때 마침 고려 쪽에서 반응.. 2024. 3. 1. [백수일기] 꽃샘 방황기 백수는 집을 탈출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오늘도 괴나리 봇짐 매고선 무작정 나섰다. 모 박물관으로 행차해 그짝 자료실서 오후를 뽀갤 작정이었다. 한데 버스에서 내려 박물관 가는 길목이 영 이상했다. 문을 닫은 가게가 많다. 여타 날과는 사뭇 다른 풍모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박물관을 들어서 자료실로 향하는데 어랏? 불이 꺼졌다. 안 열었다. 박물관은 열었는데 자료실이 안 열다니? 안내 데스크에 물었다. 오늘 삼일절 공휴일이라고 문을 안 연대나 어쩐대나? 아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 찾아보니 금요일이다. 거기다 빨간날 그래 말마따나 삼일절이다. 터벅터벅 허탈함에 전시 코너 한 군데 돌고서는 나선다. 집에나 가자. 매섭다. 열라 매섭다. 광화문 바람은 언제나 이렇다. 여름이면 찜통이요 겨울이면 오늘 같은 꽃샘.. 2024. 3. 1. [1차 고려거란전쟁] (3) 거란의 고려 공포증을 간파한 서희 소손녕을 만난 이몽전이 귀환할 때 성종은 서경에 머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 회견 내용을 두고 어떤 이가 말하기를 “어가御駕는 개경開京의 궁궐로 돌아가고, 중신重臣으로 하여금 군사들을 거느리고 가서 항복을 청하게 하십시오.”라는 의견이 나온 데서 엿볼 수 있다. 아무튼 저런 안을 비롯해 어떤 방식으로 거란을 달래느냐 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두고 조정 의견은 갈라졌다. 개중에서도 “서경 이북 땅을 나누어서 저들에게 주고, 황주黃州에서부터 절령岊嶺까지 잇는 선을 국경으로 삼음이 옳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데 중론은 결국 저 땅뙈기를 떼어주자는 쪽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이는 그만큼 고려로서는 급박했다는 뜻인 동시에 애초 거란 침입을 개무시하면서 그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못한 혹독한 대가였다. 일단.. 2024. 3. 1. [1차 고려거란전쟁] (2) 거란의 요구를 파악한 서희 뒤늦은 대처에 급조한 군사로 거란을 방어하고자 한 고려 조정이 얼마나 허둥지둥댔을지는 안봐도 비디오라, 그래도 일단 한 번 막는 시늉이라도 해 봐야겠고 해서 고려는 역시나 문관 중심 사령부를 구성하니 시중侍中 박양유朴良柔가 총사령관인 상군사上軍使가 되고 내사시랑內史侍郞 서희徐煕는 넘버투인 중군사中軍使, 문하시랑門下侍郞 최량崔亮은 하군사下軍使가 되어 북계北界에 진을 치고서는 거란을 방어하는 시늉을 한다. 이때 고려 성종은 서경西京에 행차 중이었으니, 전방을 독려하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연례 행사라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왕 나간 김에 안북부安北府까지 가서 전방을 시찰하려 한다. 이 무렵 소손녕蕭遜寧은 이미 봉산군蓬山郡을 공격하여 선봉군사先鋒軍使인 급사중給事中 윤서안尹庶顏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에 이.. 2024. 3. 1. Full of Spring Vibes Plum blossoms have been in full bloom at the historic Buddhist temple Tongsa on Sunday in Gyeongsangnam-do. Spring has finally begun to conquer the Korean Peninsula. 매화(자장매) 만발한 양산 통도사 photo by Seyun Oh 2024. 3. 1. 언론자유라는 측면에서 본 한국사 조선시대, 언론자유가 어딨어? 그 폭압성은 인류 역사 맨 우두머리에 위치해야 한다. 김일손은 사부 조의제문 사초에 실었다가 일족이 목이 달아다고 일단도 일망타진됐다. 다 죽었다. 언론자유도라는 측면에서 조선왕조는 실로 유례없는 폭압정권이었다. 그런 언론자유가 느닷없이 구한말에 찾아든다. 조선총독부시대. 좀 변화가 감지되는데 초기에는 그런대로 언론자유가 보장됐다. 그런 자유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암흑기로 접어든다. 모든 언론이 통제됐고 기사는 사전 검열되었다. 이 시대를 조선시대랑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숨구멍은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언론자유는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물론 상대적이긴 하다만 말이다. 그러다가 유신체제에 들어가면서 다시 억압시대로 갔다. 그런 억압시대는.. 2024. 3. 1. 이전 1 ··· 1842 1843 1844 1845 1846 1847 1848 ··· 426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