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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는 정부인가? 사실 이 문제부터 엄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이 타당한 것이냐, 임시정부가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느냐 이런 것이 아니다. 필자도 임시정부의 대의, 그리고 해방전 가장 중요한 독립운동단체의 하나로 가장 오래 버티고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한다. 해방 이후 한국의 성립에도 임시정부의 기여가 가장 큰 부분의 하나였다는 점도 수긍한다. 그런데-. 임시정부는 '정부'인가? 이게 뭐가 중요하냐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문제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에게 미국독립전쟁 당시 'Continental Congress'와 같은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가? 임시정부와 대륙회의는 둘 다 독립전쟁 중 출현했기 때문에 그렇게 볼 .. 2023. 9. 5.
관종을 응시하는 침묵하는 시선 관종의 시대에 주시할 것은 좋아요 숫자가 아니요 어머 이뻐요 어머 슬퍼요 하는 영혼없는 댓글이 아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시종 나를 응시하는 시선이다. 이는 감시이기도 하며 질시이기도 하며 야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언제나 내 뒤통수를 치는 건 이 침묵하는 시선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침묵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 읽어야 할 것은 어머 이뻐요 뒤에 숨은 야유이며 어머 슬퍼요 뒷면을 도사리는 저주다. 이 이면을 읽어내지 못하면 나는 창녀요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2023. 9. 5.
뒤집어보는 세계도, 정통성을 묻는다 내 몸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상이 필요할까? 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8대조부, 조모는 모두 256분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잊는다. 세계도에는 항상 8대 조부로부터 가지를 치고 뻗아 나오는 자손들의 모습만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부터 본다면 결국 나는 8대 조부, 조모가 256 분이 필요한 것이다. 이 256분의 조상님들이 골고루 기여해야 내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른바 정통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2023년 현재의 한국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 안에는 독립투사도 있고, 평범한 시민도 있고, 또 친일파도 있다. 이들 다양한 집단과 사람이 교류하면서 만들어낸 것이 지금의 한국인 것이다. 이 모든 기여 인자를 무시하고 오직 하나의 조상만 인정해 달라는 것이야말.. 2023. 9. 5.
독립군 (광복군)은 Militia인가 Continental Army인가 한국의 독립군과 광복군은 미국독립전쟁에서 본다면 militia에 가까운가 아니면 continental army에 가까운 것인가. 미국 독립전쟁 발발 당시 식민지의 군사 무력은 militia에 백프로 의존하고 있었다. 독립전쟁이 계속 진행됨에 따라 이 militia를 식민지의 군대로 삼자는 의견도 나왔는데, 식민지의 대의기관이라 할 continental congress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대신 continental army를 만들어 이를 대륙의회의 통제하에 두었다. 사실 militia나 continental army나 결국 영국군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militia 출신의 민병들과 영국군에서 전투 경험이 있는 식민지 장교출신들이었으므로 어느 쪽이 되건 그 구성원은 그 사람이 그사람이었다는 것은 변함없.. 2023. 9. 5.
제8회 런던아시아영화제 공식 포스터 제8회 런던아시아영화제 공식 포스터 2023.10.18-10.29 LEAFF 렌즈를 통해 준비한 올해 아시아영화들은 우리를 좀더 스스로 들여다 볼수 있는 인간의 심연에 대한 고찰이다. 런던에서 만나요!! *** 저 영화제 위원장 전혜정 선생 소개다. 2023. 9. 4.
강화도 묘지사터 발굴현장에서 by 정학수(인천문화재단) 작년과 올해에 걸쳐 강도江都시기 묘지사 터로 전하는 곳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강화도서 쫓겨나고서 잽싸게 국립서울문화재연고소로 개칭-편집자)가 발굴했고, 조사를 마치고 유적 설명회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이름으로 지난 주에 했다. 전 묘지사터는 마니산이 바라보이는 초피봉 남사면에 있다. 화도면 사기리 이건창 생가에서 멀지 않다. 1264년 고려 원종이 마니산 정상에 올라 참성단에서 초제를 행하기 전에 묘지사에 묵었다는 기록이 에 있는데,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터에는 온돌 구들과 고래, 부엌의 아궁이 등 난방/취사시설 유구가 담당 연구사의 설명에 따르면 대표 유적으로 봐도 손색 없을 정도로 아주 잘 남아 있었다. 고려후기 이전의 전면 온돌 유구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터는 마니산 정상을 정남향(정서향 아닌가 한.. 2023.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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