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5586 사무라이 블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870년 당시 호적조사에 의하면 일본 전체 인구의 3.6% 정도가 사족, 다시 말해 좀 폼잡을 수 있는 사무라이 계급이고, 2.7% 정도가 졸족卒族, 다시 말해 아시가루 같은 최하급 무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가루까지 포함해서도 전 인구의 6프로 조금 넘는 정도만이 사족이나 졸족이 되고 나머지는 거의 모두 농민이었던 셈이다. 당신이 일본에 가서 만나는 사람 100명 중 94명은 농민의 후손이고, 그 중 6명이 사족, 그리고 그 여섯 명 중에 또 절반인 3명은 아시가루이니 엄밀히 이야기 하면 사족이라 부르기도 뭣한 계급이었던 셈이다. 근대 일본에서 사무라이 정신 어쩌고하는 것은 그러니까 웃기는 이야기인 것이다. 일본도 "농민정신"이 맞다. 그러니 일본 축구대표팀을 "사무라.. 2024. 2. 4. 바닥부터 재상으로 수직 상승한 왕자지王字之 이름 듣고는 대뜸 대물열전 등판 인물 아닌가 하겠지만, 또 그 후속타를 기대한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니다. 고려 중기 때 인물이다. 그는 이미 궁예 정권 시절 경사經史에 통달했다 해서 출사해 원외랑員外郞을 거쳐 동궁기실東宮記室까지 이르렀지만 궁예가 포악하게 변하자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가 훗날 세상이 격변하고 왕건이 쿠데타로 고려를 건국하자 다시 나와 국가 기밀을 관장하게 된 박유朴儒라는 사람 현손이다. 박씨 집안 직계 후손임에도 왕씨 성을 쓴 까닭은 이미 저 박유가 하도 고려 왕조가 자리 잡는 데 공이 크다 해서 그 할아버지 박유한테 아예 왕실 성인 왕씨를 하사해 왕유王儒로 창씨개명한 데 따른다. 고려사 왕유 열전에 부기된 왕자지王字之 열전에 의하면 그는 자字가 원장元長이고, 어릴 적 이름은 소중紹.. 2024. 2. 3.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 보고서 아래는 충남 부여군 2017년 7월 19일자 보도자료다. 해직 당시인 저 무렵 나는 저 전 5권짜리 단행본 시리즈 중 부여 능산리 고분·사지: 지난 100년의 일기 라는 항목 집필자로 참여했다. 아래 보도자료에서 말하는 △ 5권-능산리고분군과 능산리사지 조사·정비에 관한 취재기록 및 에피소드 가 그것이다. 나 역시 하도 저 자료를 구하기 힘들어 내 기억 환기 차원에서 전재해 둔다. ****************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 보고서」발간 작성일 2017-07-19 10:27:40 부여군은 사적 제14호 부여 능산리고분군 관련기록을 종합 정리한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 보고서」를 발간했다. 부여 능산리고분군은 백제 사비기를 대표하는 왕릉군으로 1915년 이래 여러 차례 조사.. 2024. 2. 3. [해외답사모집] 세계문명탐방 그리스 안녕하세요. 작년에 이집트 탐방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2024년에는 그리스를 향해 떠나려 합니다. 일정은 4월 18일부터 28일까지 확정입니다. 서양문명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그리스로마신화와 성경은 필수죠. 그 두 가지 키워드를 가장 핵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곳. 바로 그리스입니다. 최고의 코스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답사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이직을 하는 바람에 다소 늦었지만 그 사이 근동지방 답사 전문 여행사에서 착실히 모든 준비를 진행하고 있더군요. 저와 같이 그리스문명 탐방에 나설분은 아래 연락처로 메세지 주시기 바랍니다. 딱 10자리 남았습니다. *** 내 친구 춘배 호소문이다. 2024. 2. 3. 동양사에서 귀족제사회의 개념 동양사에서 귀족제사회란 한국사 안에서 귀납적으로 도출된 개념이 아니다. 정확히는 중국사, 그리고 일본사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중국사의 경우 귀족제 사회란 결국 과거제에 기반한 사대부-관료제 사회의 성립 이전, 구체적으로는 당대 이전 사회를 말한다. 당대에 과거제가 작동하기 시작하여 비로소 귀족제사회에서 탈피하여 송대가 되면 사대부 사회가 개화되는 것이다. 일본사에서는 귀족제란 다름 아닌 헤이안시대다. 귀족들이 모든 정치 군사적 권력을 독점하고 번영하다가 무가=사무라이들한테 타도되어 중세가 열린다. 고려시대를 귀족제 사회라고 보는 것은 이 시대를 중국사의 당대 이전, 일본사의 헤이안시대와 같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어떻게 과거제가 식년제로 꼬박 꼬박 시행되고 급제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34명.. 2024. 2. 3. 고려시대 귀족제 설에 대해: 과거제의 관점에서 고려시대는 "귀족제"라고 보는 관점이 아직도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여러 번 이 블로그에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는데, 귀족제라고 보는 근거가 매우 박약하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귀족제로 보는 근거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아마도 음서제라고 생각하는데, 음서제가 어느 정도로 성행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려사회에서 과거제에 의해 출사한 인물들이 어느정도로 정계를 장악하고 있었는가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처럼 식년제 과거로 34명의 급제자를 전 시대에 걸쳐 (무신집정시대의 일부시기를 제외하고) 꼬박 꼬박 배출하고 있었고, 과거제란 귀족제와 절대로 병립할 수 없다. 귀족제라는 것을 인정하려면, 필자 생각에는 이렇다. 과거제를 일체 무시한 출사자들이 정계의 정상부를 차지하고, 그 .. 2024. 2. 3. 이전 1 ··· 1895 1896 1897 1898 1899 1900 1901 ··· 426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