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5586 다양한 입춘첩 입춘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만 쓰는 줄 아는데, 이 문구로 굳어진 건 오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전에는 시를 지어서 붙이는데, 1구와 2구는 대문 밖 좌우에 3구와 4구는 대문 안쪽 좌우에 붙였다고 한다. 미암 유희춘은 그의 일기에 지은 문구와 붙인 위치를 정확히 써 두었다. 어떤 이는 주련을 입춘마다 바꾸기도 했더라. 전근대시대 문집에 남은 수많은 입춘첩이 그것들이다. 권근(權近, 1352~1409)이 세상을 떠나던 해인 1409년 1월 12일 입춘에 지은 입춘첩은 이 궁벽한 곳에 딱 맞기에 인용한다. 〈입춘 첩자(立春帖子)〉-기축년 1월 12일- 북두성 자루 처음으로 돌아와 北斗星初轉 동풍에 봄기운이 이미 새롭네 東風氣已新 하늘은 후하고 박함이 없어서 天心無厚薄 촌구석에도 푸른.. 2024. 2. 4. 성당시대 지배층 여성 설유순薛柔顺 석관 벽화묘 서안서 출현 서안西安 당唐 설유순薛柔顺 석관벽화묘石棺壁画墓는 서안시西安市 행복림대幸福林带 동쪽, 북령장락동로北邻长乐东路에 위치하며 2023년 섬서성고고연구원陕西省考古研究院이 신성구新城区 장락동로长乐东路区 개발구역을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이 무덤은 무덤 안쪽으로 비스듬히 파고 들어가는 출입시설인 사파묘도斜坡墓道를 갖추고 묘실 지붕에 3개 뚫음이 있는 삼천정三天井에 묘실은 하나인 단실单室이며 재료로는 벽돌로 쌓은 전실묘砖室墓에 속한다. 이미 도굴 피해를 봐서 석문石门과 묘실墓室 천장은 파괴됐고 묘실 내 유물로 대부분 도굴당해 겨우 소량 도기陶器 조각들만 건졌을 뿐이다. 묘도 양쪽에는 두 개 벽감壁龛이 있으며, 그 내부에는 닭、개、낙타 등 동물용动物俑 70여 건을 그나마 건졌다. 묘실 서쪽에서 석관 1구가 발견.. 2024. 2. 4. 낙양 북망산에서 출현한 위진魏晋시대 고위 관료 가족 공동묘지 https://haokan.baidu.com/v?pd=wisenatural&vid=8905354517960629528 낙양洛阳 맹진구孟津区 송장촌送庄村 동남쪽 지구에서 3개 묘장墓葬을 남북 방향으로 안치하고서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차례로 만든 위진시대 가족 공동묘지가 발굴됐다고 낙양시고고연구원洛阳市考古研究院이 최근 발표했다. 이들 무덤은 모두 시신을 묻는 공간인 묘실墓室은 북쪽에 두고 그 반대편 남쪽에다가 묘실 안쪽으로 통하는 출입구인 묘도墓道를 설치했다. 이번 발굴 책임자인 연구원 부연구원副研究员 유빈刘斌에 의하면 낙양에서 발견된 위진시대 묘장은 매우 드문 상황에서 고위 관료를 역임한 가족 공동묘지가 처음으로 낙양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조사단은 이들 무덤에 대해 각각 M1、M2、M3라는 구별 명칭을 .. 2024. 2. 4. 나말여초 문단 거물 최언위와 그의 네 아들(1) 나말여초 문단을 호령한 인물로 최치원崔致遠(857~?), 그리고 견훤을 섬긴 최승우崔承祐(?~?)와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 같은 경주최씨로 그보다는 열한 살 어린 최언위崔彦撝(868~944)다. 치원과 언위 둘은 당나라 유학파로 그에서 급제한 인생 행로가 아주 비슷한데, 또 세트로 움직이기도 했으니, 다만, 최치원은 나말에 해인사로 은거한 뒤에는 행적이 묘연한 데 견주어, 최언위는 달라서 오래산 까닭도 있지마는 고려가 건국한 다음에는 아예 주거지를 경주에서 개경으로 옮기고, 고려 조정에서 문한을 담당한다. 고려사 열전이 정리한 그의 행적을 보면 초명初名이 신지愼之라 했으니, 이는 삼가고 삼갈지니라 하는 뜻에서 취한 이름이라, 다만 그 바꾼 이름 언위彦撝는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내가 아직 추적하.. 2024. 2. 4. Best of best, 수선전도首善全圖의 수선首善 조선시대 도성都城이라 하면 글자 그대로 성곽으로 두른 도읍을 의미했으니, 구체로는 현재 우리가 한양도성이라 일컫는 나성羅城이 둘러친 공간 구역 안쪽을 말한다. 이곳이 서울이라 지금의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가 본래는 엄격한 의미의 도성이며, 이곳이 바로 서울이다. 이 도성은 조선 왕조 건국 직후에 이미 둘러치기 시작해 후대에 끊임없는 보수가 있었지만, 그 공간 구역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조선왕조 오백년 내내 저 구역은 그대로였다. 물론 도시 구역이 성밖으로 계속 확장해가기는 했지만, 한양도성은 죽죽 그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제작한 도성지도란 곧 저 한양도성 안쪽 지도를 말한다. 실제 그런가는 차치하고 생긴 모양은 천상 자궁 딱 그것이다. 조선시대, 특히 그 후기 도성을 .. 2024. 2. 4. 시루는 똥구멍 숫자도 중요하다 시루 똥꾸멍 숫자 변화로도 사상 변화를 감지한다. 어느 시대까지는 똥꾸멍 숫자에 법칙성이 없어 지 맘대로 뚫는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 이후엔 정합성이 있다. 음양오행설은 시루 똥꾸멍에서 탄생했다. (2016. 2. 3) *** 시루 똥구멍 숫자에 어느 시기부터 정합성이 생기는 거 아는가?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고고학도들은 앞으로 살펴 보기 바란다. 어느 시기에 시루 똥구멍에 혁명이 일어난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시루는 똥구멍이 중요하니 박물관 종사자들은 유념해서 전시해 주었으면 한다. 서울대박물관만 해도 십년 전엔 저리 전시했다가 권오씨 집권기에 와서 똥구멍을 감춰 버렸다. 권오가 닭대가리 계수호에 정신이 팔려 k컬처 선두주자인 시루를 등한히 한 까닭이다. 2024. 2. 4. 이전 1 ··· 1894 1895 1896 1897 1898 1899 1900 ··· 426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