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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구 때려 부수고 루마니아 국보 강탈 네덜란드 아센서 대여 전시 중 발생 아주 근자인 2025년 1월 24일, 도적님들이 네덜란드 아센Assen에 있는 드렌츠 박물관Drents Museum 입구를 폭파하는 전대미문하는 방식을 통해 박물관에 침투해 각종 보물을 털어가셨다고.도난품 중에는 2천500살 되신 코쇼페네슈티Coțofenești 황금 투구를 필두로 같은 시대 황금 팔찌 golden bracelets 4점이 포함됐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루마니아에서 대여 전시 중이었던 것들로 모두 다키아 왕국 유물이다. 헬멧은 여러 신화 속 생물과 단검을 들고 숫양을 제물로 바치는 남자를 묘사한 고대 다키아 문명 유산이다.이 헬멧은 루마니아에서 가장 중시하는 국보 중의 국보인 까닭에 그 충격이 양국에는 더할 듯하다.저들 유물이야 하도 유명세를 탄.. 2025. 1. 29.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6)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소지왕비 앞서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삼국사를 논할 때 모두가 동국통감을 읽었다 했거니와, 그런 까닭에 신라사를 논할 적에 이 사금갑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그네들 모두가 내전분수승과 불륜하다 들켜서 복주된 비처왕 곧 소지왕의 여인을 왕비로 보았지, 후궁 중 한 명인 궁주宮主로 보지 않았다.왜 그런가 하면 삼국유사에서는 궁주라 했지만,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에서는 아예 왕비로 못을 박은 까닭이다.나아가 이 사건이 발생한 날짜가 삼국유사에서는 언급이 없지만, 정월 15일로 이해한 것 또한 절요와 통감에서 비롯한다는 말을 했다.조선후기 안정복이 동사강목이라는 대작을 기획하면서 소지왕 10년, 서기 488년을 기술하면서 아예 저 사건으로 복주된 여인이 당시 소지왕비 선혜善兮라고 못을 박은 까닭이 바로 이에서 말미암는다. 왜 .. 2025. 1. 29.
[외치이야기-17] 미라의 저주? - 2 미라의 저주는 외치의 경우에도 유명하다.외치의 발견 및 조사와 관련된 7명이 짧은 기간 동안 모두 비명에 사망했기 때문이다.이를 외치의 저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간단히 살펴보자. 참고로 외치가 발견된 것은 1991년이다.   • Rainer Henn. 64세에 사망. 인스부르크대 법의병리학자. 당시 외치를 조사하던 책임자였다. 초기의 외치 연구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학회 참석차 이동 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 (1992년). • Kurt Fritz, 52세에 사망. 산악가이드. 외치가 발견되었을 때 얼굴을 처음 확인한 사람이라고 한다. 외치를 알프스 산에서 헬리콥터로 들어 내리는 작업과 관련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눈사태로 사망 (1993년).  • Rainer Hölz, 47세에 사망. 외치가 발견 당시.. 2025. 1. 29.
[외치이야기-16] 미라의 저주? - 1 외치가 순동시대 사람임을 처음 밝힌 콘라드 스핀들러는 비교적 일찍 사망하였다 (2005년).그의 죽음을 미라의 저주와 연관시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도 사실 이 일을 하다 보면 꼭 미라의 저주 이야기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글쎄. 필자의 기억으로는 지금까지는 미라의 저주라고 부를 만한 일이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것 같다.하지만 미라 보고가 워낙 센세이셔널 한 뉴스이다 보니미라와 관련된 언론 보도가 나가는 날은 하루종일 뭔가 뒤숭숭한 것은 사실이다.미라의 저주는 서구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거리이다. 아마도 미라의 저주에 관련하여 가장 처음 나온 이야기는 투탕카멘 왕릉을 발굴한 카터 발굴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카터 발굴단 사람들은 발굴 직후 비명에 간 사람이 꽤 있다.이를 호사가들은.. 2025. 1. 29.
[외치이야기-15] 사기극 소동 외치와 관련하여 잊지 못할 일은 이른바 “가짜 미라” 소동이었다. 외치의 발견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자 어느 언론사 모 기자는 느닷없이 외치는 사실은 이집트 미라인데 명예와 부를 탐한 사람들이 알프스 산 꼭대기에 이를 옮겨 놓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리고 그 근거의 하나로 “왜 하필 저 유명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그 부근을 그날 어슬렁 거리고 있었는가.메스너가 다른 사람들과 짜고 이집트 미라 하나 산꼭대기로 옮겨 놓은거 아닌가”라는 주장을 했다.  메스너야말로 외치 발견사에서 가장 초연한 입장에 있었던 사람의 하나인데 느닷없이 유탄을 맞은 것이다. 메스너로서는 황당 무계하고 억울한 사건이겠지만 어쩌면 이 사건으로 그는 외치의 저주를 액땜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메스너와 함께 이 주장으로 맘 고생을.. 2025. 1. 29.
[외치이야기-14] 불거지는 소송 외치가 처음 발견되어 인스부르크로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이 발견이 순동시대 미라를 발견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이 사건은 평범한 조난자에 대한 사망조사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이 사건이 무려 5천년 전 미라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많은 사건이 터졌다. 그 중 몇 가지 이야기만 해보자.  우선 외치가 유럽 순동시대 미라라는 것이 알려진 후 이 미라가 실제로 엄청난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 후 많은 분쟁이 뒤따랐다.이 미라를 처음 발견한 독일인 부부는 죽을 때까지 미라를 발견한 보상금에 대한 소송으로 세월을 보냈다.  미라를 처음 운반해 간 북 티롤과 남 티롤 지역도 외치 소유권 문제를 놓고 한판 싸움을 벌였다.남티롤 지역 주장은.. 2025.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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